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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내가 바꾼 건 편견과 자신감”

베트남 축구 새 역사 쓴 박항서 감독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0(Tue) 16:14:00 |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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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축구로 연일 국가적 경사를 맞고 있다. 중국 장쑤성 일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 출전한 베트남이 극적인 승부를 거듭하며 동남아시아 국가 최초로 결승 무대를 밟았다.

 

조별예선에서 한국·호주·시리아와 함께 D조에 속한 베트남은 1승 제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예상과 180도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한국과 접전을 벌이고, 처음으로 호주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킨 베트남은 시리아와 비기며 D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8강과 4강에서는 중동 강자인 이라크·카타르마저 승부차기 혈투 끝에 제압했다.

 

젊은 선수들이 기적의 드라마를 쓰자 1억 인구의 베트남은 축구로 붉게 물들었다. 예선 마지막 경기부터 본격화된 단체응원은 이제 길거리 응원으로 번졌다.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거듭 축전을 보냈고, 준결승전부터는 관공서와 기업들로 하여금 경기를 시청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열기를 보는 듯했다.

 

아시아 축구의 변방이 일으킨 돌풍의 중심에 한국인이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기적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수석코치로 보좌했던 박항서 감독(60)이다. 지난해 10월 베트남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을 총괄하는 사령탑으로 부임한 그는 3개월 만에 기대를 초월하는 성과를 냈다. ‘베트남의 히딩크’로 불리며 선풍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베트남 축구의 전설적 지휘자가 된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과의 비교에 “가장 존경하는 감독이고 스승이다. 감히 어떻게…”라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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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결과인데.

 

“선수들이 잘해 줬다. 모든 건 그들의 노력 때문이다. 모두 우리보다 강한 팀이었고,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준 나라들이다. 많은 부분에서 열세였지만 조직력과 정신력으로 이겨낸 것 같다.”

 

 

부임 당시만 해도 비판적 시선과 우려가 많았던 걸로 안다.

 

“일본인 감독이 왔었는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떠났다. 유럽이 아닌 아시아 감독이고, 베트남에 오기 직전에는 내가 실업팀(창원시청)을 맡고 있었던 터라 더 그렇게 본 거 같다. 그런 비판을 의식하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베트남어를 모르기 때문에 여론에 신경 쓰지 않고 소신껏 할 수 있었다.”

 

 

“베트남 축구 장점 살릴 방법 고민했다”

 

그동안 베트남은 잠재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아시아의 잠룡 정도로 평가받았다. 어떤 부분을 바꾼 것인가.

 

“대표팀 감독 협상을 할 때 부회장 2명이 한국으로 왔다. 그들은 베트남 축구가 체력이 약하니 그 부분을 개선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임한 뒤 직접 관찰하니 큰 문제가 없었다. 체력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결과도 좋았다. 체격이 상대적으로 왜소한 데서 오는 편견이었다. 베트남 선수들은 체격은 작지만 근지구력이 좋고 민첩하다. 기술은 한국 선수들보다 나은 면도 있다. 편견을 바꾸고 자신감을 심었다. 이영진 수석코치와 베트남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을 고민했다. 3-4-3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수비 시 5-4-1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베트남 선수들이 한국 선수보다 더 정교한 패스와 슈팅 기술을 보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 23세 대표팀은 베트남 축구계가 기대하는 황금세대다. 호앙안잘라이(HAGL)그룹의 응우옌 득 회장이 축구광이다. 베트남 축구협회도 그분이 지원하고 있는데 그룹 산하의 프로축구팀인 HAGL FC가 아스널과 합작한 유소년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거기서 배출된 선수들이 현재 베트남 최고의 스타다. 개인 기술만 놓고 보면 한국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다. K리그 인천과 강원에서 뛴 우리 팀의 주장 쯔엉(르엉 쑤언 쯔엉)이 대표적이다. 19세 선수도 6명을 포함시켰다. 이 팀이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향후 10년간 이들이 주역이다.”

 

 

토너먼트에 와서 휴식일이 상대팀보다 하루씩 짧았다. 그런데도 놀라운 집중력과 체력으로 승리했다.

 

“휴식에 철저히 집중했다. 다음 경기에 대한 대비를 한다고 분석과 훈련을 늘리면 오히려 경기력에 문제가 생긴다. 경기 다음 날은 철저히 휴식을 취하고, 음식과 영양제 섭취를 통한 회복과 마사지에 중점을 둔다. 히딩크 감독에게 배운 것이다. 전술적 대비는 코치들의 몫이다. 회복 후 하루 이틀 동안 분석한 내용을 중점으로 준비했다.”

 

 

이라크와의 8강전, 카타르와의 4강전은 극적인 승부였다. 패배 위기에서 승부차기로 승리했는데.

 

“끌려갈 때 과감한 전술 변화를 줬다. 이라크전 연장전과 카타르전 후반전에 포백으로 전환하고 공격수 숫자를 늘려 동점골을 넣었다(2002년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연상시킨다). 그런 경험이 내 지식과 노하우의 원동력이다. 히딩크 감독에게 배운 것을 내 자산으로 만들었다. 이영진 수석코치, 배명호 피지컬코치가 함께 있는데 두 한국인 코치의 존재도 든든하다. 한국 축구를 대표한다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일하고 있다.”​

 

 

“히딩크와의 경험이 내 자산”

 

베트남의 축구 열기가 뜨겁다. 한·일월드컵 당시의 한국을 보는 듯하다.

 

“베트남은 축구 잠재력이 큰 나라다. 축구 인기가 높다. 베트남 남자들 3명만 모이면 축구 얘기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경제성장도 빠르고 인구도 많다. HAGL을 비롯한 상위 3~4개 팀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를 제대로 육성할 시스템이 없다. 하지만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한다면 빨리 성과가 날 것이다. 부총리가 최근 정부 차원에서 축구를 육성하기 위한 회의를 한 적이 있다.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그런 분위기 조성을 위한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박항서 감독을 정작 한국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느냐는 지적이 있다.

 

“과분한 평가다. 과거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으며 기회도 얻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최근 한국 축구가 나이 많은 감독에게 기회를 주는 데 인색하다.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상주 상무에서 2년 차 안에 성과를 냈지만 더 높은 곳에서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오지 않았다. 베트남에 감사한다. 실업축구로 가서 동기부여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내게 기회를 줬다. 내가 가진 지식과 노하우가 변변치 않지만 베트남 축구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하고 있다. 선수들도 순박하고 가르치면 잘 받아들인다. 보람을 느낀다.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조국이다. 고향인 경남 산청에는 96세 노모가 있다. 아내와 아들도 한국에 있는 기러기 아빠다. 베트남 축구의 발전을 이끈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그 경험을 활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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