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 기업메시징협회장 “이통사,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6 13:51
  • 호수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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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업체가 일군 기업메시징 시장, 지금은 KT·LG유플러스가 80% 장악

 

어떤 강(江)이 있다. 한 사업자가 운영하는 강이다. 뱃사공들은 여기서 손님을 실어주고 1인당 8000원씩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강의 운영자도 배를 띄웠다. 그는 1인당 7200원씩 받고 손님을 태워줬다.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운영자의 배로 몰려들었다. 비슷한 일이 통신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뱃사공은 강을 떠나면 돈을 벌 방법이 없다. 기업메시징 사업자들도 그렇다. 기업메시징은 ‘○○카드 2000원 사용’ ‘○○계좌로 3만원이 입금됐습니다’ 등 카드사나 은행이 고객에게 전송하는 수많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대신 보내주는 서비스다. 이는 이동통신사의 무선통신망을 활용해야만 한다. 즉 통신망은 기업메시징 사업자에게 ‘강’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운영자인 이통사가 이 강에 직접 뛰어들었다.

 

“상품의 원재료를 독점 공급하게 된 셈입니다. 우리처럼 가격 결정력이 없는 중소사업자는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사저널이 2월5일 만난 장준호 기업메시징 사업자협회장의 말이다. 장 협회장이 이끌고 있는 업체 인포뱅크는 1998년 기업메시징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작했다. 현재 관련시장 규모는 약 1조원으로 성장했다. 


2월6일 오후 경기도 판교 인포뱅크 사무실에서 기업메시징 서비스 시장의 사업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장준호 기업메시징사업자협회 협회장. © 사진=최준필 기자


 

카드 긁으면 날아오는 ‘기업메시지’… “이통사 독과점 시장”

 

원래 기업메시징 시장은 중소업체만의 무대였다. 그러다 2009년 이후 KT와 LG유플러스도 시장에 진입했다. 이들은 카드사나 은행 등 기업과 직접 계약을 맺고, 문자 발신 수수료로 한 건당 7.2원을 받았다. 건당 8~9원을 받는 중소업체는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중소업체는 통신망 이용료로 문자 한 건당 7원을 이통사에 내야 한다. 결국 이통사와 경쟁하려면 1~2원의 마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일까. 이통사가 기업메시징 계약료를 깎아주면, 결국 일반 소비자도 싸게 이용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에 장 협회장은 “같은 환경에서 경쟁하게 해주면 우리가 이통사보다 더 큰 혜택을 소비자에게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후발주자인 KT와 LG유플러스는 기술력이 중소업체보다 떨어진다. 인건비와 홍보비로 나가는 돈도 꽤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점에서 이통사보다 유리하다. 이통사가 원재료값(통신망 이용료)을 현행 7원에서 2~3원으로 낮춰주면, 기업과 소비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자신이 있다. 독점 공급망 뒤에 숨지 말고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는 거다.”



그래도 시장 규모가 커진 데는 거대 이통사의 진출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도 있다.

 

“완전히 부인할 순 없다. 그런데 KT와 LG유플러스가 없었다면 시장 규모가 줄어들었을까. 이통사는 기업메시징 서비스를 싼값에 제공하며 시장을 무섭게 잠식해 나갔다. 100%였던 중소업체의 점유율은 2014년 15%아래로 떨어졌다. 그 사이 중소업체 18개 중 15곳이 문을 닫았다. 우리가 서비스 질로 경쟁할 수 있었는데, 이통사는 그 기회마저 앗아갔다.”

 

 

시사저널이 장 회장을 만난 곳은 경기도 판교에 있는 인포뱅크 사무실이다. 이곳은 상당히 넓었다. 원래 4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자가 사무실을 찾은 오후 2시엔 눈에 띄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강신훈 기업메시징협회 팀장(인포뱅크  경영전략팀장)은 “한때 직원들이 250명이 넘었지만 이통사가 시장에 진출한 뒤로 절반 정도 떠났다”고 했다.

 

장 협회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당국에게 중소 기업메시징 업체들의 어려움을 호소해봤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10년 가까이 얘기해오고 있지만, 정부는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관련 입법을 막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결국 대기업의 입김을 강화시켜준 꼴이죠. 공정경쟁이란 가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통신망에 사용되는 주파수가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정부? 대기업? 둘 다 아닙니다. 주파수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장준호 회장이 직접 도식화한 기업메시징 사업구조. © 사진=장준호 회장 제공



법원, “공정위 과징금 취소해달라”는 이통사 손 들어줘

 

정부가 완전히 손놓고 있던 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2월 “KT와 LG유플러스가 기업메시징 시장에서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총 62억원의 과징금도 부과했다. 하지만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두 이통사가 기업메시징으로 벌어들인 돈은 2013년 총 3397억원으로 추정된다. 과징금이 매출의 2%가 채 안 된다. 

 

심지어 이와 같은 규제마저 무색해질 지경에 놓였다. 공정위의 처분이 나온 이후 KT·LG유플러스는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취소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다. 이후 올 1월31일 고등법원은 이통사의 손을 들어줬다. 상고심에서도 이통사가 승소할 경우, 공정위는 시정명령 철회는 물론이고 과징금에 이자까지 더해 물어줘야 한다. 

 

이번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공정위는 KT·​LG유플러스가 시장지배력을 남용했다는 근거로 “기업메시징 서비스를 통상거래가격보다 싼 값에 공급했다”는 점을 들었다. 사실이라면 공정거래법상 부당거래에 해당한다. 반면 재판부는 “통상거래가격의 산정 기준이 정당하지 않다”고 일축했다. 



시사저널과 인터뷰중인 장준호 회장 © 사진=최준필 기자



“관성처럼 이어져온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이젠 멈춰야”

 

이와 관련해 공정위 송무담당관실 관계자는 6일 “이통사가 제공하는 정보가 제한적이라 거래가격 산출에 필요한 원가구조를 파악하는 게 힘들다”고 했다. 기업의 내부정보를 들여다보기 전까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준호 회장은 “통신업계의 독과점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통사가 기업메시징의 원재료를 독차지하고 있는 이상 처음부터 통상거래가격을 공정히 매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저도 이통사를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들 대기업 덕분에 우리나라 통신업계가 급속도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생각도 듭니다. 대기업이 과거부터 유지해왔던 관성을 멈춰야 한다고. 불공정 행위가 관성처럼 이어지면, 결국엔 경제 구조를 무너뜨리고 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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