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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러시아 바르드가 부르는 광활한 땅의 노래

근현대사 거치며 러시아 정체성 대변하는 음악으로 성장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11(Sun) 18:01:00 | 1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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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시들을 걷다 보면 거리 한편에서 으레 음악가들이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마이크를, 누군가는 각종 악기를 들고 땀 흘려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들 말이다. 한국의 도시에선 이 같은 모습들이 법적 규제나 부정적 시선 등으로 인해 흔치 않다가, 약 7~8년 전부터 일부 관(官)에 의해 ‘허가된’ 공간들을 중심으로 늘어가고 있다.

 

좁은 의미의 무대를 넘어 거리경관 속에 소리를 풀어놓는 이런 음악가들은 세계 역사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존재해 왔다. 대중매체가 제한되던 시절의 이들은 뉴스의 전달 및 풍자, 혁명의 기능까지도 수행하곤 했다. 중세 유럽의 종합 유랑 예술가를 일컫는 트루바두르(troubadour)나 민스트럴(minstrel), 지난 회에 다루었던 동유럽 역사 속의 시각장애인 유랑 예인들을 가리키는 말 코브자르(kobzar) 등이다. 한반도 곳곳에 여러 장르의 민속악을 울려내던 위대한 직업 연주자들과 소리꾼들, 연행집단인 남사당패 등도 떠올려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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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에 자부심 커

 

거리의 음악가들을 지칭하는 현대의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한 인기 밴드의 이름 덕에 익히 알려진 외래어 ‘버스커(busker)’일 듯하다. 한국에서 역시 밴드 이름으로 알려진 ‘바드(bard)’라는 단어도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것 같다. 바드는 일반적으로 서유럽, 특히 아일랜드 및 웨일스 등의 직업적 음악연행자(演行者)를 일컫는 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 살펴볼 음악가들은 거기에서 동쪽으로 수천km 떨어진 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드, 아니 그들 특유의 발음으로 ‘바르드’라고 부르는 현대의 예인들이다. 아주 긴 역사를 지니진 않았으나, 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현재까지 러시아의 언어 및 문화 정체성을 대변하는 음악으로 여겨지게 된 ‘바르드 음악(bardovskaya muzika)’ 얘기다.

 

바르드 음악은 다른 말로, 영어의 ‘작가(author)’와 그 뿌리를 같이하는 단어를 포함한 ‘작가의/작가주의적 음악(avtorskaya muzika)’이라고도 불린다. 이 표현에서 느껴지듯, 바르드들은 연행자의 이미지보다는 글을 쓰는 문학가의 정체성으로 비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점에 가면 시집의 형태로 출판된 바르드들의 작품집이 음악이 아닌 시 코너에 꽃혀 있으며, 작곡가를 뜻하는 캄포지타르(kompozitor) 대신 시인을 의미하는 단어(포엣·рoet)로 분류된다. 바르드들은 그러니까 ‘시 같은’ 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들인 셈이다.

 

러시아 친구들을 만나보면 푸시킨으로 대표되는 유구한 러시아어 문학의 전통에 큰 자부심을 표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바르드 음악은 이러한 러시아 시문학 역사의 한 자랑스러운 부분인 셈이다. 어떤 경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던 이오시프 브로드스키(Ioshif Brodsky)와 같은 시인들의 글이 바르드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불리기도 했다.

 

내 영혼은 지치지 않고

어둠으로 서둘러 가며

다리 위를 스쳐 지날 것이네

페트로그라드의 안개 속에서

사월의 부슬비 속에서

눈은 머리 아래 있고,

목소리 하나가 들릴 것이네.

- 바르드들의 노래로 불려온 브로드스키의 시 《스탄시(stansy)》 중 ‘벗이여, 안녕히’

 

 

 

바르드 음악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바르드 음악이 독자적인 장르로 대두된 건 20세기 중반의 일이다. 민족음악학자 제임스 도트리(James M. Daughtry)에 따르면, 혹자들은 러시아 땅에 존재해 오던 ‘노래시’의 형태와 바르드 음악의 기원을 연결 짓는다. 또 다른 이들은 ‘로만스(romans)’와 같은 고유 장르들이 20세기 중엽 서구에서 유행한 기타 중심의 작가주의적 음악과 만나 태동한 일종의 국제적 현상으로 여긴다. 어떤 이들은 바르드 음악이 스탈린 시대 집단수용소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부른 노래들에서 기원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2차대전 후 소련 인텔리 젊은이들의 하위문화에서 바르드 신(scene)이 태어났다고 여긴다.

 

 

바르드 음악의 기원 두고 의견 분분

 

바르드가 자유·비판·젊음의 하위문화와 연관된다는 시각은, 블라디미르 비소츠키(Vladimir Vysotskii)나 한인의 피가 흐르는 율리 김(Yuli Kim) 같은 대표적 바르드들의 노래 속에 있는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그들의 저항운동가로서의 행보들을 보면 수긍이 간다. 실제로 대부분의 바르드 음악들이 1980년대 개혁·개방 이전까지는 비공식적으로만 유통되었으며 여러 핍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별과 땅에 대한 애착, 민족애 등 다양한 소재들이 다루어지기에, 바르드 음악을 저항과 휴머니즘이라는 특정 소재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다. 그보다는 러시아 시의 문학적 관습이 깊숙이 반영된 가사 쓰기와, 7현 기타 전통에서 나오는 특유한 화성과 멜로디에서 바르드 음악의 특징을 찾는 것이 보다 합당한 것 같다.

 

거리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그에 대해 노래하는 가사인 불랏 아쿠좌바(Bulat Okudzhava)의 《아르바트의 노래》로 끝을 맺어볼까 한다. 아르바트는 음악가들, 화가들이 늘 모여 자신을 표현하는 이른바 예술가의 거리로, 구소련의 큰 도시들마다 있다. 물론 이 노래의 아르바트는 그의 고향인 모스크바의 거리일 터다. 예술가로서 자신들의 거리를 무한히 사랑한다는 표현을 이리도 아름답게 할 수 있나 싶은 노래다. 한국에 점점 많아지는 거리의 예술가들도, 또 지나는 청자(聽者)들도 계속 이렇게 자신의 공간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네 사랑으로부터 나을 길이 없네

사천 개의 다른 거리들을 사랑하더라도

아아, 아르바트, 나의 아르바트여

너는 내 조국

절대 너를 끝까지 지나갈 수 없으리.

- 불랏 아쿠좌바 《아르바트의 노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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