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취재] ‘세월호 기울기 원인’ 네덜란드서 찾는다
  • 네덜란드 에데(Ede)= 이용우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8.02.20 10: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19일 시뮬레이션 진행…2차 실험에선 30분의 1 모형배로 침수 원인 규명

 

세월호 시뮬레이션 화면이 50도 이상 기울어지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차마 이를 보지 못한 채 다른 곳을 바라봤다. 4년 전 배 안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바라봤을 세월호 사고 당시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자 눈시울이 붉어진 탓이다. 정성욱 세월호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고(故) 정동수군의 아버지)은 화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반대편 벽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담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라고 말한 그는 “진작 했어야 했던 실험을 이제 와서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100km 떨어진 바헤닝언에 있는 해양연구소 마린(MARIN)에서 2월19일 세월호 시뮬레이션이 진행됐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체조사위)가 네덜란드 마린과 지난 1월 진행한 1차 자유항주실험을 토대로 진행됐다. 선조위는 1차 실험과 2차에 진행한 시뮬레이션과 침수 실험, 3차 자유항주실험을 통해 세월호 사고를 설명할 수 있는 복원성과 기울기값을 찾아낼 계획이다.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의 느낌이다.” 이번 모형실험에 함께한 김광배 유가족 대표(고(故) 김건우 아버지)도 세월호 시뮬레이션을 보고 난 뒤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가 느껴진다”며 “100%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눈앞에 저런 식으로 바다가 보였을 텐데”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세월호 조타실을 재현한 시뮬레이션의 창문 밖에는 수평선이 빠른 속도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오른쪽에 보이던 병풍도를 표현한 섬들은 밑으로 쏟아지듯 사라졌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 직원과 유가족들이 2월19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마린에서 진행된 세월호 시뮬레이션에 참가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 실험 통해 세월호가 사고 당시 어땠는지를 밝힐 수 있을 것”

 

이번 시뮬레이션은 세월호 조타실 크기로 재현된 모형실에서 사람이 직접 배의 속도와 타각을 변형시키며 진행됐다. 기존에 데이터를 입력하고 작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배의 진행 방향을 살펴보는 것과 달리 사람이 세월호의 기울기를 확인하며 타 각도를 변형했다. 권영빈 선조위 1소위원장은 “사람이 직접 배에 올라타는 기분으로 타를 움직이고 세월호의 기울기와 속도, 항로를 느낄 수 있는 실험이다”라며 “이를 통해 세월호가 사고 당시 어땠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세월호 시뮬레이션은 9회에 걸쳐 진행됐다. 선조위는 세월호의 복원성 지표인 GM(횡메타센터 높이)값을 5가지로 설정해 지난 1월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길이 170m, 너비 40m, 깊이 10m 크기의 대형 수조에서 세월호 자유항주실험을 진행했다. 마린은 세월호 실제 크기의 25분의 1로 축소한 모형배를 실험에 사용했다. 이때 얻어진 횡경사각과 급선회 항로 정보를 바탕으로 사고 당시와 가장 근접하다고 판단한 GM값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이번 세월호 시뮬레이션 총괄책임자인 행크 봄 마린 대표는 “보통 시뮬레이션은 새로운 항구에 안전하게 배를 정박하기 위한 실험이나 새로운 항로에 필요한 실험이지만 세월호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며 “(급선회를 위해) 타를 이렇게까지 썼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온 실험과 많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이번 실험도 보통 수준의 GM값과 낮은 수준의 GM값을 적용했다. GM은 배의 복원성의 척도가 되는 값이다. 배의 복원성은 좌우로 기울어진 배가 넘어지지 않고 스스로 원래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이다. GM값이 높을수록 세월호의 복원성이 좋다는 뜻이다. 

 

세월호 시뮬레이션에서 사용된 조타기 앞의 세월호 항해 정보. © 시사저널

세월호 시뮬레이션에서 선체가 약 38도 기울기를 보이고 있다.

 

24일까지 모형실험 통해 세월호 침몰 원인 밝힌다

 

하지만 이번 시뮬레이션 실험도 난항은 있었다. GM값을 낮게 유지해도 기존 세월호가 사고 당시 보인 급선회 구간을 벗어나 회전했기 때문이다. 화물 영향을 배제하고 타 각도를 25도 우현 변침하면 최대 기울기가 55도까지 나오지만 여전히 기존 사고 항로를 약 300m가량 벗어난 채 회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선조위 관계자는 “당시 조타수가 5도 변침한 것으로만 나오지만 그 진술을 모두 신뢰하기 어렵다”라며 “기존 AIS 항적도 오류가 많은 항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행크 봄 마린 대표는 GM값을 낮게 설정한 것에 대해 “기존에 이렇게 낮게 GM값을 가지고 배가 운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보다 GM을 높게 잡아도 잔잔한 바다에서 기울기가 크게 발생했다. 바람이 부는 바다에서 운항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조위와 마린은 결과물들을 가지고 확인·분석한 뒤 이를 3차 모형실험에 적용할 예정이다. 기존 데이터를 잘 활용해 사고 원인을 밝혀낼 계획이다. 마린은 이번 실험을 통해 세월호 GM값이 화물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지, 화물의 움직임이 기울기에 영향을 주는지, 타를 사용했을 때 기울기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한편 세월호 선조위와 마린은 2월20일부터 24일까지 세월호 30분의 1 크기의 모형배로 침수 모형실험을 진행한다. 이번 실험을 통해 기울어진 배의 어느 부분에서 침수가 발생했는지, 세월호가 어떻게 1시간40분 만에 급속히 침몰했는지 조사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