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업무량’에 다 타서 재만 남은 간호사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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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1명에 환자 40명…“갈굴 수밖에 없는 구조”

 

#1.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입사 4개월 차인 신입 간호사 A씨가 새벽 5시에 출근을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전날에도 같은 시간 출근해 꼬박 16시간을 일했다. 일반병동에서 근무하는 A씨가 담당하는 환자는 16명. 환자들 식사와 약을 챙기고 대소변을 체크하다보면, 화장은커녕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A씨는 오늘도 16시간을 서서 일하고 밤 9시에 퇴근해 제대로 된 첫 끼니를 먹었다.

 

#2. “룸 여자 같다.” 입사 2년 차 간호사 B씨가 수쌤(수간호사)에게 들은 말이다. 통화를 하는 B씨의 목소리를 지적하는 말이었다. 중환자실에서 6명의 환자를 돌보면서 잠도 4시간밖에 못잔 B씨는 이 말을 들으니 눈물이 났다. ‘이러려고 간호사 됐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들어온 지 넉 달 된 새내기 간호사가 환자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을 봤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B씨는 후배에게 “제대로 하라”며 소리치고 차트를 내던졌다.

 

2월15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신입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간호사 내 속칭 ‘태움’ 문화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태움’​이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가 후배를 엄격하게 교육하는 관행을 말한다.이런 가운데, 간호사들의 열약한 업무 환경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와 업무 시간이 과중해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간호사의 과도한 업무 시간과 환자 수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사진은 지난해11월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7 간호정책 선포식'에서 전국의 간호사들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간호사 수급 불균형 해소'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모습.

 

1인당 환자 40명 맡는데도 임금은 적어

 

간호사 A씨와 B씨는 일주일에 두 번은 16시간 넘게 일한다. 기본 근무시간 외 업무 인수인계를 받고 환자 차트를 정리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흐른다. 모두 업무 시간으로 인정받을 수도 없다. 기본 8시간에 초과 1시간만 인정되고, 나머지는 ‘자발적 근무’로 산정된다. A씨는 “억지로 잡혀있는 게 아니라 내 할 일을 다 못 해서 못 가는 것”이라며 “눈치 보여서 항의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조성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가 국회에서 열린 ‘간호사처우개선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들은 평균 10시간을 근무하고 시간 외 근무로 2시간을 더 일한다. 그 중 식사와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은 평균 21분에 그쳤다. 그마저도 약 39%가 “식사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앉을 새도 없이 돌봐야 하는 환자는, 병원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40여 명이다. 조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43.6명이다. 미국(5.3명)의 8배가 넘는다. 

 

그런데도 임금은 적은 편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간호사 활동현황 실태 조사(2014)에 따르면, 신규 간호사 초임 연봉은 일반 병원 2506만원, 종합병원 2748만원, 상급종합병원 3286만원이다. 조성현 교수는 당시 토론회에서 “종합병원 간호사의 임금 수준은 평균 근로자 임금의 89%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스트레스의 대물림에 ‘태움’ 악순환

 

업무가 과중하다 보니 간호사들이 도중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속출한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해 8월, 2016년 “간호사 이직률은 15.7%”라고 발표했다. 그중 신규 간호사는 35.3%에 달했다. 2011년 30.3%였던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오히려 5%포인트 증가했다. 이는 전체 산업별 이직률에 비해 8.2배 높은 수치다.

 

신규 간호사를 교육시켜야 하는 프리셉터(선배 간호사)도 고통을 느낀다. 입사 2년차 간호사 B씨는 “환경 자체가 태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실수하면 환자가 죽어나가는 마당에 신입에게 예민해지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에 40명씩 환자를 돌보면서 기껏 가르쳐 놔도 그만 두는 경우가 다반사”라면서 “그러면 또 교육을 시켜야 한다. 끔찍하다”고 말했다.

 

출처: 대한간호정우회 '간호사 인력 수급 현황과 대책' 자료집 제공


 

“근무시간·환자수 법제화 필요”

 

‘태움’ 문화는 업무 스트레스를 후배에게 전가하면서 생겨나는 악습인 셈이다. 신입 간호사 A씨는 “생명을 다루는 일인데다 선배들도 힘들다 보니 히스테리를 우리에게 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태움’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서 “근무시간과 환자수를 줄이는 법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A씨의 제안과 같은 내용의 청원 글이 100개를 넘어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서 ‘간호사’와 ‘법’을 검색한 결과, 133건이 검색됐다. 그 중 ‘간호사 1인당 담당환자수를 법으로 제한해주세요’라는 글은 2월20일 오전 11시 기준 1만1085명의 청원을 받았다.

 

지난 1월20일에는 광화문에서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간호사연대NBT, 전국간호대학생연합은 “문재인 정부는 간호인력 확충을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 포함시켰지만, 구체적 행동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와 함께 의료계의 열악한 실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호인력 양성과 처우개선을 위한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은 1월28일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 개선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제정안에는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개선 종합대책 수립 ▲간호인력지원정책심의위원회 구성 ▲간호인력 표준 보수지급 기준 마련 ▲간호인력 공제회 설립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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