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 “절친 3명 하늘로 떠나보낸 뒤 한동안 칩거했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haha@seoulmedia.co.kr)
  • 승인 2018.02.22 14:16
  • 호수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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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3년 만에 새 앨범 ‘꽃’ 들고 컴백한 부활 김태원

 

고백하건대, 김태원은 기자가 편애하는 인터뷰이(interviewee)다. 그와의 대화는 간결하지만 깊고 진하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게 7년 전 즈음일 게다. 다시 만난 우리는 호들갑스러운 인사도, 분위기 좋은 인터뷰를 위한 ‘전초전’도 없었다.  

 

© 사진=서울문화사 제공

 

한동안 칩거했지요.

 

“2014년 즈음, 되는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안 한다는 건 심경이 무너져 있는 것을 의미하죠. 보컬 정동하가 탈퇴하면서 심적으로 힘들었고, 건강도 악화됐지요. 그래서 집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2014년 말에 새 보컬 김동명을 영입하면서 싱글을 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무너졌죠.”

 

 

대중의 평가에 초연할 것 같은데….

 

“어렵게 낸 음반이 사랑받지 못할 때는 몇 년이 힘듭니다. 돛이 없는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돛이 있으면 바람으로라도 움직이고, 노가 있으면 노라도 젓는데 그런 것들이 아예 없는, 그저 떠 있기만 한 상태였죠. 저는 대중의 반응에 아주 예민한 사람입니다.”

 

 

새 앨범 ‘꽃’이 나왔습니다. 어떤 곡인가요.

 

“지난 30년간 내가 살 수 있었던 이유들이 은유돼 있습니다. 그 시간을 되돌아보니 내가 나를 스스로 살리는 경우가 없었고, 위기 때마다 누군가에 의해서 늘 구해졌어요. 저는 방치해 두면 사라질 확률이 높은, 스스로에게 잘 지고, 포기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음악을 할 경우에는 목숨을 걸고 만듭니다. 신곡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할게요. 작가의 변이 부질없으니까요.”

 

 

왜 음악을 하나요.

 

“사랑을 받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대중의 반응에 초월했다고도 하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건 관객을 무시하는 겁니다. 저는 제가 무너질지라도 대중의 사랑을 기대합니다. 대중은 진정성을 정확히 압니다. 인기를 끌기 위해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사와 멜로디는 대중이 압니다. 그냥 내 소울 그대로 쓰면 됩니다. 나의 이야기인데, 그의 이야기도 될 수 있는 이야기요. 근데 어찌 그게 쉽겠습니까. 그만큼의 고뇌, 고통, 갈등, 고독이 포함돼 있겠죠.”

 

 

음악 작업을 하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진 않나요.

 

“거의. 제가 모가 난 면이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불편해한다는 걸 느껴요.”

 

 

스스로 불편한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허튼소리를 하는 술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술이 들어가지 않아도 끝까지 흥미로운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술이 이야기하는 듯한 자리, 그런 만남은 두 번 이상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점점 안 만나게 되지요. 유머라도 깊이가 있는 유머를 좋아하고. 음악 얘기를 하면 그 누구보다 깊이 들어가죠.”

 

 

편애하는 술친구가 있나요.

 

“몇 사람 있었는데, 몇 년 사이에 돌아가시고…, 그렇죠 뭐. 전화가 하루에 한 통이 안 오고, 한 통을 안 걸지요. 전화하는 사이가 4명 있었는데 3명이 떠났습니다. 몇 년 사이 제가 완전히 멈춘 이유 중 하나도 친구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신해철씨도 그중 한 명이었죠. 지금은 방송국에서 음악감독 하는 30년 지기 친구가 유일합니다.”

 

 

죽음, 늘 생각하는 테마죠….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습니다. 산울림의 《독백》이라는 노래처럼, 헤어지는 게 두려운 것이죠. 제가 워낙 험하게 살았습니다. 오래 살 욕심도 없고, 그저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음악을 만들고, 또 가족을 위해서 산다는 생각입니다.”

 

 

혼술도 하나요.

 

“간혹 와인을 마시죠. 안주는 사과·치즈·땅콩 등등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먹습니다. 안주를 많이 먹진 않습니다. 안주를 많이 먹으면 술이 필이 좋게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죠.”

 

 

《남자의 자격》에 함께 출연한 이경규씨와는 연락을 하나요.

 

“주로 새벽에 연락이 옵니다. 술에 취해서(웃음). 다음 날이 되면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그분도 낮에 정신이 맑을 때는 누구한테도 전화를 안 하는 사람입니다. 술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옛날 사람들 생각이 나는 것이고, 그때 생각나는 사람이 저인가 봐요. 괜찮은 거죠.”

 

 

인터뷰 중간중간 기침을 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모양이다. 

 

 

© 사진=서울문화사 제공

 

필리핀에 있는 가족의 안부도 궁금하네요.

 

“아내와 아들은 필리핀에서 지내고, 딸은 미국에 있습니다. 올해 17세가 된 아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학교 가는 걸 좋아하고 레고·드럼·기타·수영을 좋아합니다. 하루 스케줄이 빡빡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은 어떤가요.

 

“괜찮아요. 그리울 수 있다는 게 좋지요. 물론 저 자신과 늘 싸워야 한다는 단점은 있어요. 그 고독이 지독하긴 합니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많이 썼던 기억이 납니다. 시적인 표현을 일상에서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말만 쓰고 싶어요. 그래야 아름다워지죠. 처음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없어요. 좋은 언어를 쓰고, 좋은 생각을 하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중학교 때 기타를 잡으면서 육두문자도 끊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약속을 한 거죠. 화도 잘 안 나요.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 보니 화낼 일이 없어지더라고요. 화가 나도 과격한 언어로 뱉진 않아요. 순화된 언어로, 날카롭게 말할 뿐이죠. 촌철살인이라고 하죠(웃음).”

 

 

궁금한 게 있어요. 부부싸움은 하나요.

 

“가끔 하는데, 제가 집니다. 져주는 게 아니고 명백히 집니다. 승부는 진정성으로 결정되는데, 저보다 진정성이 강합니다. 그 순간에 이기려고 하는 자가 지는 이치죠.”

 

 

매일 일기를 쓰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제 생각을 기록하는 정도죠. 글을 쓰면 그 글들이 내 머릿속에 누적돼요. 일종의 언어 사전이 됩니다. 각인이 돼 있기에, 적시적소에 튀어나옵니다.”

 

 

예전에 만났을 때 좌우명이 ‘거침없이 가라’였어요. 요즘은 뭘까요.

 

“‘지금 살고 있다.’ 지금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현재와 미래를 계산하지 않고 지금을 맞이하는 것,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살면 좋은 미래를 맞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김태원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얼까요.

 

“평상시엔 오늘처럼 블랙을 많이 입고, 무대 위에 오를 때면 레드·옐로·플라워 프린팅 등 화려한 색을 선호합니다. 그리고 제 키가 175cm 정도 되는데 구두 굽으로 180cm 정도로 맞춥니다.”

 

 

늘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저 도수가 맞는 안경을 맞추고, 색을 넣었을 뿐이죠. 상대방을 자세히 바라보는 것도 에너지 소비가 되더라고요. 빤히 보면 실례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시선을 다른 곳에 둬도 귀만 기울이면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뭐랄까, 시선을 아무 곳에나 둬도 되는 자유.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면 오히려 생각하기 좋아요. 대화할 때도 더 깊게 생각하게 되고, 신중하게 말을 하게 되지요.” 

 

 

그렇게 인터뷰가 끝났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우리는 미세하게 변해 있었고, 그것이 묘하게 서글프기도 했다. 그와의 다섯 번째 인터뷰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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