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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강국 대한민국, 이젠 ‘체육’ 아닌 ‘스포츠’를

운동에만 올인하기보다 지·덕·체를 갖춘 스포츠 환경 필요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6(Mon) 17:00:00 |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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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9일 이후,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동계 스포츠 종목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이 됐다. 김보름과 박지우의 국가대표 박탈과 빙상연맹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은 3일 만에 56만 명을 돌파했다. 이처럼 팀추월 선수들과 연맹이 여론의 공분을 산 데는 이유가 있다. 여자 팀추월 예선 경기 막판에 김보름과 박지우는 팀 동료인 노선영을 남겨두고 결승점을 향해 치고 나갔다. 즉, 팀 경기에서 팀워크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7위라는 나쁜 결과가 나온 것은 노선영의 잘못’이라는 투로 말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에 여론은 ‘왕따’와 ‘파벌’이 이 같은 결과의 이면에 있다고 여겨 분노하고 있다.

 

운동선수와 관련한 인성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도, 또한 빙상계만의 문제도 아니다. 야구계만 해도 지난해 11월 넥센 신인 투수인 안우진이 휘문고 시절 후배를 폭행해 3년간 국가대표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또 한화 출신의 김원석은 소셜미디어(SNS)에서 팬과 대화를 나누며, 구단 치어리더와 이상군 전 감독대행을 비난하고 조롱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한화 구단은 김원석을 방출하며 그 책임을 물었다. 프로야구계에서 SNS 논란은 이 건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KT 장성우 등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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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체육은 다른 말

 

이것은 선수뿐만이 아니다. 특히 아마추어 지도자와 관련한 추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대학과 고교 감독이 선수를 폭행해 각각 자격정지 10년과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처럼 정정당당함과 공정함이라는 페어플레이가 요구되는 스포츠계에서 인성 논란과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스포츠가 아닌 체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스포츠와 체육을 동의어로 쓰고 있다. 하지만 그 근원 등을 살펴보면 의미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스포츠의 어원은 라틴어 데포라타레(deporatare)로,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벗어난 여가나 놀이를 뜻한다. 반면 체육은 일본 메이지 시대에 만든 말로 몸을 기른다, 즉 몸을 단련하는 것을 뜻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 중에 ‘지·덕·체’가 있다. 이것은 지육과 덕육 그리고 체육을 뜻하며, 청소년 교육에 있어 그 본질이라고 한다. 지육은 글자 그대로 지식을 기르는 것이며, 덕육은 도덕을 기르는 것이다. 지육과 덕육이 따로 있는 것은 체육에서는 지식과 도덕(윤리)이 분리된 것을 뜻한다. 체육에서 중요한 것은 몸을 단련하는 것일 뿐이다. 지적 능력의 향상과 습득, 윤리는 따로 배워야 한다. 이와 달리 스포츠는 그 자체로 도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공명정대하게 경기에 임하며, 규칙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즐겁게 경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른바 스포츠맨십이라는 도덕적 요소가 강조된다.

 

현실에서 ‘지·덕·체’는 공허한 외침에 그친다. 지육과 덕육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체육만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가 된다는 것은 학교 교육과는 담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종목이나 연습량이 너무 많다. 여기에 지도자나 부모는 한 가지만 잘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해 시쳇말로 운동에 ‘올인’한다. 심신의 균형 있는 성장이 아닌 머리와 마음은 빈약한데 몸만 커진다. 그 결과, 운동선수와 인성 논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고 있다.

 

또 스포츠는 그 자체에 도덕적 요소가 있다고 해도 여가 활동이다. 그런 만큼 학생의 자발적인 참여로 실행된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대부분 스포츠가 학교를 벗어나 클럽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와 달리 체육은 교육의 일종이다. 교육이므로, 지도자는 선수에게 시키는 것이며, 선수는 해야만 하는 게 된다. 그 결과, 자발성보다 책임과 성실성이 요구된다. 책임과 성실함은 인내력과 예의의 중시로 이어진다. 지도자와 학생 간은 물론이고 학생과 학생(선배와 후배) 간에도 복종을 최우선 덕목으로 삼는다. 그것이 운동부 내 폭력과 폭언 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안우진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자기 기분에 들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한다. 피해자는 참을 수밖에 없다. 그 종목의 세계는 매우 좁아, 반항하거나 불복종했을 때 어떤 피해가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런 폭력을 인내하는 것을 운동선수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 어느 야구 관계자는 “운동선수에게 인성은 인내하는 성격의 줄임말”이라고 말한다. 신인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 팀 관계자는 그 선수의 인성이 좋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여기서 인성은 “성품이 좋다”는 게 아니라 “잘 참으며 상급자의 지시를 잘 따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에서 프로든 아마추어든 스포츠가 아니라 체육을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동업자 정신’이다. 예를 들면 2루에서 수비수를 향한 거친 슬라이딩처럼 위험한 플레이가 나왔을 때, 언론매체나 야구 관계자는 “동업자 정신의 실종”을 개탄한다. 동업자의 사전적 의미는 ‘같이 사업을 하는 사람’ 혹은 ‘같은 종류의 영업을 하는 사람’이다. 야구계를 비롯한 체육계에서 쓰는 동업자는 후자에 해당한다.

 

결국 동업자 정신은 같은 종류의 영업을 하는 사람끼리 지켜야 하는 정신이 된다. 야구선수끼리 지키는 정신이라는 특수성이 강조된 말이다. 반면 스포츠맨십은 보편적이다. 정정당당함과 상대의 존중, 규칙 준수 등은 스포츠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나 분야에 적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체육이 교육의 일종이라면, 스포츠는 스포츠맨십을 통해 사회화를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과 관련해서도 특정 선수의 인성을 언급한다. 한 경기에서 나타나는 짧은 순간을 보고 어느 선수의 인성을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궁예처럼 ‘관심법의 대가’가 아닌 이상, 작은 행동을 확대해석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쉽게 볼 수 있다. 스포츠맨십이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도, 동업자 정신이나 인성을 거론한다. 그것은 스포츠가 아니라 체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육에서 인내를 중시하는 것은 근성론으로 이어지기 쉽다. 근성론이란 곤란에도 좌절하지 않는 정신(근성)이 있으면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으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력 만능주의다.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며,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그런데 야구든 사업이든 그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은 노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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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올인, 그 위험성

 

넥센 서건창은 육성선수의 신화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육성선수로 프로에 뛰어들어, 방출의 아픔을 이겨내며 KBO리그 최고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2014년 KBO리그에서 유일하게 한 시즌 200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인터넷매체 OSEN과의 인터뷰에서 육성선수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열심히 준비하고 끝까지 버텨야 한다. 책에서 본 문구인데, ‘저 모퉁이만 돌면 희망이 있을 것이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언젠가 되겠지’의 그 ‘언젠가’가 당장 내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마냥 장밋빛 이야기 같다. 열심히 해라? 다 열심히 한다. 그런데도 기회가 안 오는 선수들도 있다. 운이 크다. 나 역시 운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남의 인생에 대해 무조건 버티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가혹하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 운이라는 것은 서건창 개인의 생각일까. 그렇지 않다. 로버트 H 프랭크 미국 코넬대 경제학 교수는 저서 《성공과 운》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을 가르는 요소는 재능과 노력이 아닌 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운은 태어난 환경 등을 포함한 의미다. 스포츠계에서 성공한 이들에게는 뛰어난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이 있다는 신화는 뿌리 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타 플레이어의 발이나 손 사진만 해도 그렇다. 최근에도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선수인 이상화의 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스케이트와 발을 최대한 일체화하기 위해 양말을 신지 않고 맨발로 스케이트를 신고 연습과 경기를 소화한다. 그 결과, 이상화의 맨발은 온통 굳은살이 가득하다. 또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린 LG 김현수의 손바닥도 그렇다. 물집과 상처 등으로 울퉁불퉁하다. 이들이 엄청나게 노력한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스케이팅 선수나 야구선수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발과 손도 상처투성이다.

 

퓨처스에서 뛰는 선수보다 1군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더 노력한다는 것은 선입견에 불과하다. 연습 시간만 본다면, 오히려 퓨처스가 더 길다. 왜냐하면, 1군 선수는 몸 상태 등을 경기에 맞추므로 연습량 자체가 많지 않다. 퓨처스에서는 경기보다 연습에 중점을 둔다. 1군 선수와 퓨처스 선수를 가르는 요소는 서건창과 프랭크 교수의 말처럼 재능이나 노력이 아닌 운이다. 예를 들면, 올해 롯데와 NC는 포수 자리에 공백이 생겼다. 지난해까지 주전으로 뛴 롯데 강민호는 삼성으로 이적했고, NC 김태군은 경찰청에 입대했다. 주전 선수의 부재는 후보 선수에게는 기회다. 다른 팀에서 후보로 뛰는 포수들은 롯데와 NC에 있는 포수들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기회라는 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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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물론이고, 성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운을 내 편으로 할 기회를 얼마만큼 많이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기회가 많은 만큼 운이 따를 확률도 높아진다. 한 번 운이 따르지 않아도 다음이 있다. 그런 점에서 야구를 비롯한 운동에 ‘올인’하는 것은 기회를 줄이는 것과 같다. 어릴 때 야구를 시작해 고교나 대학까지 오로지 야구만 한 선수가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설령 프로 지명을 받았다고 해도 2~3년 만에 방출당하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야구만 했으므로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야구나 운동만 할 것이 아니라 학업과 병행할 필요가 있다. 또 유소년기에는 친구를 사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다양한 활동을 했을 때, 심신이 균형 잡힌 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인성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 지금이라도 체육이 아닌 스포츠가 필요한 때다. 야구의 시작을 알리며 주심은 플레이볼을 외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워크볼(Work Ball)로 들리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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