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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진 美 통상압박 파고, 반도체·자동차도 덮치나

세탁기·태양광·철강까지 속수무책…타 산업도 최악의 상황 대비해야​

황건강 시사저널e 기자 ㅣ kkh@sisajournal-e.com | 승인 2018.02.27(Tue) 14:00:00 |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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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상압력으로 한국 산업계가 숨 돌릴 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새해가 밝자마자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등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면서 국내 산업계에 충격을 주더니, 최근에는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도 고강도 수입규제안을 공개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현재 국내 수출 효자품목인 낸드플래시메모리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발(發) 통상압박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시작부터 국내 산업계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 높은 수준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 1월22일(이하 현지 시각) 결정한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에 따르면, 세탁기 수출의 경우 올해는 120만 대까지 20%의 관세를 부과하고 초과 물량에는 50% 관세를 부과한다. 태양광 셀은 2.5GW까지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고 초과 물량에는 30%의 관세가 붙는다.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압박 수위도 국내 산업계의 예상보다 높았다. 미국 상무부가 2월16일 공개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는 대통령에게 세 가지 수입규제안을 권고했다. 주요 철강 수출국 12개국에 53%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과 모든 국가의 수출 물량을 2017년의 63%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 그리고 모든 국가의 수입 물량에 24%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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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다가온 ‘미국發’ 최악의 시나리오

 

미국 상무부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규제안 가운데 핵심은 미국 주요 철강 수출국 12개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철강제품에 53%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다. 해당 보고서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수입 제품이 미국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내용이다. 미국이 철강 수출국 모두를 미국 안보의 위협으로 지목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12개 국가만 특정해 제재를 가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는 12개국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함께 지목된 국가는 브라질·중국·코스타리카·이집트·인도·말레이시아·러시아·남아공·태국·터키·베트남 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고안을 토대로 어느 방안을 적용할지 여부를 오는 4월11일까지 결정하게 된다. 세 가지 방안 중 무엇이 결정될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다만 국내 철강사들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선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A철강업체 관계자는 “미국 내 철강 수출 물량만 놓고 보면 한국보다 많은 캐나다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우방국인 일본과 독일 등은 이번 제재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아직 최종 결정이 남았지만 세탁기와 태양광 등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는 점에 비춰볼 때 철강업계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12개 국가에 대한 선별적 관세 부과가 최종적으로 결정될 경우 국내 철강업계에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 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수입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국내 제품에 53%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경우 경쟁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높은 미국의 통상압박 수위에 우리 정부도 즉각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 최강대국인 동시에 최대의 소비 시장인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이끌어낼 카드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기존 설득 작업에 추가할 수 있는 대응 카드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미국 상무부 보고서가 공개된 후 WTO에 한국산 철강·변압기 제품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관세가 부당하다며 제소했다.

 

산업계에서는 WTO 제소 역시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WTO에서 무역확장법 232조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1조 안보 예외 조항의 충돌이 예상되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WTO 제소에서 이기더라도 당분간 미국 시장 접근이 어렵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예상이다. B철강업체 관계자는 “철강 수입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 하더라도 특정 국가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결정이 예외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방안이 없는 정부의 역할에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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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음 목표는 자동차·낸드플래시

 

산업계에서는 미국의 다음 목표로 자동차와 반도체를 꼽고 있다. 자동차는 앞서 열린 한·미 FTA 1·2차 개정 협상에서 핵심 사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에 대한 압박은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 ITC는 지난 1월부터 한국과 중국, 대만 등에서 수출된 낸드플래시메모리에 대해 미국 관세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모두 한국 수출의 대표 품목이라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 철강 제품과는 파급력이 다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낸드플래시메모리의 경우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이다. 더구나 반도체는 지난 1996년 체결된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무관세로 거래 중이다. 이번 조사로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낸드플래시메모리 제품 역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 산업계 타격이 예상되는 등 정황상 한국산 낸드플래시메모리에 대한 압박이 쉽지 않겠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이미 태양광이나 철강 제품 등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반도체업체의 한 관계자는 “세탁기와 태양광전지, 철강 제품 등에서도 미국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근거 없는 기대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반도체 사업이 국내 수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정부에서 미리 대응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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