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김태호 PD, 이제 다른 도전이 하고팠을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7 14:03
  • 호수 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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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PD, 그 애증의 13년사 창작자로서 한계 절감 후 하차 선언?

 

과연 김태호 PD는 MBC 《무한도전》에서 하차할 것인가. 국내 예능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되는 《무한도전》과 김태호 PD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최근 김태호 PD가 하차 의사를 밝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한도전》과 함께했던 지난 13년 동안 그는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됐던 것일까. 

 

2010년 10월 방영됐던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에서 김태호 PD는 유재석과 함께 택시 안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자막으로 들어간 “오래오래 해먹어요 우리…”라는 문구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런 자막이 논란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무한도전》 시청자들은 그 문구에 오히려 반색했다. 더 오래 김태호 PD와 유재석이 《무한도전》으로 함께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 사진=연합뉴스

 

“오래오래 해먹어요” 했던 김태호 PD의 변화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김태호 PD가 《무한도전》 하차 의사를 밝히면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2012년 필자가 김태호 PD를 처음 인터뷰했을 때 느낀 건 《무한도전》에 대한 그의 무한한 자긍심이었다. 그는 끝없이 유재석이 얼마나 대단한 ‘도전자’인가를 얘기한 바 있다. 김태호 PD는 당시 F1 특집을 했을 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유재석이 선선히 그 도전을 시도했던 사례를 얘기해 주었다. 당시만 해도 《무한도전》의 도전들은 실로 놀라운 것들이었다. ‘프로레슬링’에 도전하기도 했고, ‘조정’ 같은 쉽지 않은 경기에 여럿이 투입돼 실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을 들여다보면 이런 ‘장기 프로젝트’가 거의 사라진 채, 도전 아이템이 다소 소소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렇게 된 건 출연자들의 변화 때문이다. 《무한도전》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모두가 무명에 가까웠고, 게다가 미혼이었다. 그러니 그것이 심지어 ‘무모한 도전’이라고 해도 이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각자가 저마다 자기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주도할 만큼 유명해졌고, 초창기 멤버들은 모두 결혼해 가족을 꾸린 가장이 됐다. 도전 아이템들이 과거처럼 ‘무한’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창작자인 김태호 PD는 과거와는 달라진 그러한 제한들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프로그램에 미치는 한계에 대해서는 답답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장기 프로젝트’가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부여하는 무게감을 이야기했을 때, 김태호 PD는 그 도전이 과거처럼 쉽게 시도되기 어려운 현실을 얘기하곤 했다.

 

《무한도전》은 김태호 PD의 분신과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또한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과거 김재철 전 사장 이후 10년간 이어진 MBC의 파행 기간 동안 김태호 PD가 가졌던 입장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대중들은 파업에 동참한 김태호 PD가 차라리 MBC를 떠나 다른 곳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방송사를 떠나고 출연자들도 모두 함께 움직인다 해도,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는 MBC 것이어서 가져갈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것은 예능 트렌드의 변화였다. 《무한도전》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2010년 정도만 해도 예능 트렌드의 중심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라 불리는 ‘캐릭터쇼’였다. 그래서 《무한도전》을 본뜬 무수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진 바 있고, 그건 자연스럽게 《무한도전》을 프로그램 위의 프로그램으로 세우게 해 줬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예능 트렌드는 ‘캐릭터쇼’에서 이른바 ‘관찰카메라’로 불리는 ‘리얼리티쇼’의 시대로 바뀌었다.

 

왼쪽부터 《무한도전》 멤버들인 조세호, 정준하, 하하, 박명수, 양세형, 유재석 © 사진=뉴시스

 

‘무도TV’ 꿈꿨던 김태호 PD의 한계

 

《무한도전》도 이런 변화를 감지하며 리얼리티쇼를 지향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그건 노홍철의 “우리의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노홍철의 음주운전으로 인한 하차는 이 모든 변화에 제동을 거는 결과로 이어졌다. 창작자로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은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한계로 다가왔을 수 있다.

 

《무한도전》을 13년간 해 온 김태호 PD로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증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큰일을 해낸 것이지만 동시에 한계를 느끼는 점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본 김태호 PD의 야심은 한두 프로그램의 성공 정도가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김태호 PD는 조심스럽게 ‘무도TV’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건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의 채널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한도전》의 패러디 형식으로 갖가지 뉴스부터 예능, 드라마, 다큐까지를 소화해 낸다는 야심 찬 구상.

 

하지만 이건 한 방송사의 PD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창작자이자 관리자 위치에 서게 된 그로서는 이 ‘무도TV’ 구상을 다른 차원에서 시도할 수도 있게 됐다. 최승호 사장의 말대로 그가 크리에이터로서 MBC 예능 프로그램 전체의 다양한 시도들을 마치 ‘무도TV’를 하듯 해 나간다면 그건 《무한도전》은 물론이고 MBC 전체 예능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인터넷방송 같은 대안적 방송이나 극장판 콘텐츠에까지 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든다면 그건 또 다른 사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게다.

 

그렇지만 이건 김태호 PD의 이런 야심 찬 구상들이 MBC라는 방송사와 맞아떨어졌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요즘처럼 다채널 시대에 《무한도전》과 얽힌 족쇄를 과감히 끊어낼 수 있다면(물론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의 선택지는 말 그대로 ‘무한’해진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무한도전》을 온전히 떠나 ‘무한한’ 자신의 길을 넓혀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끝까지 《무한도전》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자신이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나갈 것인가. 어떤 길이든 그 선택이 만들 파장은 향후 예능가 전체에 미칠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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