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역고소’ 허용 법이 성폭력 피해자에 재갈 물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7 17:11
  • 호수 148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미투' 운동에 힘 보태는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장…“성폭력 관련 대규모 실태조사 시작할 것”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가 ‘미투(me too) 캠페인’의 문을 열었다. 최근에는 미투 움직임이 법조계를 넘어 학계와 체육계, 문화계까지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성폭력이 비단 어느 한 분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님을 알리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용기 있는 폭로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힘을 보탰다. 이를 계기로 사회 곳곳에 만연한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와 직장 내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성폭력과 관련한 대규모 실태조사를 역점 사업으로 삼아 사회 개선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조현욱 여성변호사회장은 미투 캠페인이 한국에서 뒤늦게 확산된 이유가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는 문화적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봤다. 특히 ‘역고소’를 허용하는 법이 한국에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이기도 한 조 회장은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고소할 수 있는 법조항은 개정돼야 한다”며 “이번 일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도록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여성변호사회 차원에서도 조만간 대대적인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현욱 여성변호사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역시 검찰 내 성추행 폭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엄정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드러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서 검사의 폭로가 없었다면 사람들이 검찰 내 성폭력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검사도 이런 일을 겪을 것이라고 일반 국민들이 상상이나 했겠나. 여성 변호사들 중에서도 혹시 피해를 당하고도 드러내지 못한 채 고통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 실태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변호사뿐 아니라 전문직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피해 설문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여의사회의 동의를 받았고, 다른 여성단체들도 동참할 의사를 비쳤다. 설문을 통해 실태조사를 한 후 결과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심포지엄 등을 개최해 입법 방향도 제시할 예정이다. 형사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이 있다면 그에 맞는 조치를 해야 하고, 그 정도 사안이 아니더라도 남성 중심 직장 문화를 철폐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한국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늦게 확산됐다는 지적도 있다.

 

“비슷한 폭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전에도 문화계 내의 성폭력 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지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잔잔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뀔 때까지 지속돼야 한다. 이번에는 법조계를 넘어 문단, 연극, 영화계, 대학 등 다양한 곳에서 피해 폭로가 지속되는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것은 누구도 용기 있게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는 문화적 영향이 컸다. 조직의 기관장들은 대체로 기관 내부의 치부를 가리는 데 더 관심이 많고, 일이 터지더라도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넘어가기를 바란다. 누군가가 직장 내의 불법행위를 폭로하면 그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기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불량한 존재로 취급한다. 음란성이 섞인 유머나 언행을 웃고 넘어가주면 성격이 원만하다고 생각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유난스럽고 까칠하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보는 잘못된 시선도 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 내용을 발설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에도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이 있었지만 솜방망이 처벌로 끝난 적이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그동안 검찰 내 성폭력 관련 사건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가벼운 조치로 끝났다고 들었다. 심한 사건이라면 징계를 하지 않고 사직 처리를 해 사건을 묻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퇴직한 가해자 중에는 변호사 개업을 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회식을 하면 2·3차는 당연히 가야 하고, 스킨십을 문제 삼으면 조직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을 밖에 나가서 말하면 조직문화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보는 이상한 문화도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실제로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금세 잊어버리고 별다른 걱정 없이 살고 있는데, 잘못이 없는 피해자는 많은 시간 고민을 해야 하고, 심지어 잠도 못 잔다. 정신적 후유증을 입기도 한다. 이번에도 피해자가 당한 피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여러 가지 2차 피해가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폭로하기 전에 ‘폭로를 하면 그 이후 어떤 불이익과 왕따를 감당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공개된 서 검사의 일기를 보면, 피해사실을 드러내기 전에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직을 떠날 각오를 하고 폭로하는 사람들도 있고, 폭로 후에 어쩔 수 없이 그 직장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꼼수가 있어서 피해를 폭로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성폭력 의도가 없었다고 부인하는데.

 

“성폭력 사건은 무엇보다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이 중요하다. 남성들 중에서 성폭력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억울해하는 사람도 있다. 추행 의도가 아니었는데 상대 여성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 좋아하는 마음으로 행동했는데 상대방이 추행으로 받아들였다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이성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지만 한쪽은 애정이라 주장해도 한쪽은 아니라면, 당하는 쪽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운 강제적인 행동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법원도 성추행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을 중요한 요소로 판단한다.”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를 고소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보나.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드러내면 거꾸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피해자들은 일단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면 혐의가 없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절차 자체가 피해자를 두렵게 하는 것이고, 결론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너무 힘들다. 우리나라는 사실을 말해도 그 내용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물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그 사실이 진실인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허위사실이 아니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엄히 처벌해야 하지만, 적어도 사실을 말했을 때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될 수 있나.

 

“개인이 조직 내 성폭력을 폭로했을 때 공익적 목적이라는 판단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관해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서 검사가 8년을 참고 있다가 용기 내 폭로한 것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명예가 훼손된 측면이 있다 할지라도 사회의 왜곡된 직장 문화를 바꾸는 공익적인 부분이 인정될 수 있다.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것을 염려해 진실을 드러내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피해자는 피해를 폭로하기까지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많은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심지어 피해자가 미혼이라면 부모들이 조용히 묻어두길 바라는 경우도 있다. 기혼이라면 배우자가 얼마나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2월1일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흰 장미를 던지며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 사진=연합뉴스

 

성폭력 사건에 관해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성폭력 피해는 그 자체로도 험난하지만, 피해자는 그 이후에도 계속 정신적 고통과 후유증을 겪는다. 남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한 일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그 사건을 바라본다. 서 검사의 성폭력 피해 폭로 과정에서도 평소의 옷차림이나 외모를 가지고 비판하거나, 숨겨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입혔다. 피해자를 보듬어주고 정상적인 생활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명에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서 검사 사건’ 등으로 부르는데, 이렇게 피해자를 부각시키는 것도 고쳐야 한다.”

 

 

징계나 조사를 하는 과정에 여성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민국의 많은 회사나 기관 내 징계위원회나 조사위원회에 여성이 참여하는 경우는 극히 적다. 인사위원회를 구성할 때 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특히 성 문제는 조사 과정에서 남성에게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행위를 자세히 묘사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어느 조직이나 고충처리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고, 특히 인적 규모가 큰 조직들은 심리학적 배경을 가진 외부 전문가도 영입해야 한다. 초기에 고충이나 피해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으면 문제가 곪아 터지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 검찰 내 성추행 사건은 문제제기를 할 수 없고 문제제기를 해도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우리 사회나 조직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검찰의 진상조사 및 법무부 대책위원회를 어떻게 보나.

 

“진상조사를 잘할 것이라고 믿고, 또 잘하기를 바란다.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 밝히는 것이 진상조사단의 1차적 의무다. 대충 할 경우에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도 신중해야 하고,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 검사가 피해사실을 폭로하기 전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내 피해사실을 호소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던 부분은 참 안타깝다. 늦었지만 법무부가 성범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니 실효성 있는 결실을 맺기 바란다.”

 

 

이 사건을 비롯해 오랜 시간이 지난 성폭력 사건들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나.

 

“서 검사의 경우 사건 당시 강제추행죄가 친고죄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처벌할 수 있었고, 고소 기간도 6개월이었는데 그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처벌은 어렵다. 하지만 만일 피해자에 대해 부당한 인사이동 등 직권을 남용한 것이 객관적으로 입증된다면, 그 부분은 직권남용죄로 문제 삼을 수 있다.”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이 사회 인식을 바꿔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이번 사건을 통해 조직 내 많은 사람들, 특히 상급자 지위에 있는 남성들이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나 문화 개선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기본적으로 직장 내에서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대우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상대방이 가진 특성과 차이점을 이해하며 배려해야 한다. 이미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것이 있다면 피해자들이 드러내지 않고 고민하기보다는, 이번 일을 계기로 고통을 털어버리고 건강하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길 바란다. 벌써 여러 분야에서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용기 있는 폭로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 차원 더 좋은 사회로 변하기를 바란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