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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베트남 독립항쟁의 ‘씨앗’, 이상설과 판보이쩌우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근대인재 육성 통한 반식민 운동 전개 공통점…해외에 최초로 임시정부 수립한 것도 같아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1(Thu) 14: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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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를 살피다 보면 데자뷰처럼 반복되는 삶이나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제국주의의 침략부터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나라들의 역사를 접할 때 더욱 그러하다. 100년 전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같이 분노하며 공유했던 역사를, 지금이라도 공감과 공존의 가치로 이어갈 수 없을까? 3·1절을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역사의 데자뷰’ 기획연재가 ‘그들과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 연재의 필자인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TV유니온 대표PD)은 KBS 다큐멘터리 전문PD 출신으로 《빅토르 최》·《731부대는 살아있다》·현각스님의 《만행》 등 많은 화제작을 만들었고, 한국방송대상과 방송위원회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근현대사 전문 다큐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항일영상역사재단을 설립하여 영상을 통한 ‘독립정신의 글로벌화’에 힘을 쏟고 있다.

 

 

한겨울 만주 벌판의 추위는 매서웠다. 지난 1월 하순, 나흘간에 걸쳐 중국 지린성(吉林省) 일대의 우리 독립운동 유적지들을 찾아 나섰다. 역사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속한 항일영상역사재단에서는 지난 4년 동안 한국을 비롯해 18개 나라에 흩어져있는 250여 곳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왔다. 어림잡아 일주일에 한 개씩 만든 꼴이다. 우리 재단은 내년 3·1운동 100주년까지 모두 310곳을 촬영해 유적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동영상 지도를 완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사라져가는 선열들의 자취를 하루빨리 기록으로 남기려는 바람이 통했는지 영하 27도의 혹한도 잠시 비켜가는 듯 했다. 

 

촬영 둘째 날. 서전서숙(瑞甸書塾) 옛터를 찾았다. 그곳에는 용정실험소학교가 들어서 있었고, 운동장 한쪽에 서전서숙 기념비와 기념나무, 그리고 6각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현판 아래에는 ‘이상설은 1906년에 자기 재산을 내놓아 이곳에 서전서숙을 세웠다. 서전서숙은 구학서당교육으로부터 신식학교교육에로 첫걸음을 떼였는바 반일민족교육의 선봉이었다’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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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전서숙과 이상설(李相卨, 1870-1917) 선생의 행적을 접할 때마다 필자는 베트남 민족주의 운동의 선구자인 판보이쩌우(潘佩珠, 1867-1940)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조선조 마지막 과거시험에 급제한 이상설과 베트남 향시에 합격한 판보이쩌우. 엘리트 유학자인 이들은 묘하게도 근대 교육의 선각자로 ‘전향’한 공통점을 지녔다. 두 사람은 일찍이 인재양성이 구국운동의 급선무란 점을 깨닫고 청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고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판보이쩌우는 1906년부터 베트남의 청년인재 300여 명을 일본에 유학시키는 동유운동(東遊運動)을 전개했다. 또 일본의 근대교육기관을 모방한 동경의숙을 하노이에 세우게 해서 애국청년들을 양성했다. 이상설 역시 만주 룽징(龍井)에 한인 최초의 해외 사립학교인 서전서숙을 세우고 역사·지리·수학·법학 등 신학문과 항일 민족교육을 시켰다. 이 학교들은 각각 프랑스와 일본의 탄압 때문에 1년도 못되어서 문을 닫았지만 탈식민지 민족교육의 효시가 되었다. 

 

 

같은 해에 망명, 같은 해에 시작한 인재 양성책 

 

베트남은 여러모로 우리의 역사와 닮은 점이 많다. 유교와 한자 문화권으로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 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지배에 놓였고, 독립한 후에 남북 분단과 동족간의 전쟁을 겪은 점도 같다. 프랑스가 침략하자 우리의 의병항쟁과 유사한 게릴라식 무장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1880년대 베트남 전역이 식민지로 바뀌면서 무력항쟁은 약화되었고, 판보이쩌우가 세운 유신회(維新會)가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1905년 일본으로 망명한 그는 이듬해부터 동유운동을 시작했다. 이상설도 같은 해에 중국으로 망명했고, 서전서숙을 설립한 연도도 동유운동이 시작된 1906년과 일치한다. 판보이쩌우는 “낡은 것을 버리고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고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상설과 마찬가지로 근대인재 육성을 통한 반식민 운동을 전개했다. 

 

독립투쟁을 인재양성에서 점차 무장항쟁 노선으로 전환한 점도 같다. 1909년 러시아로 망명한 이상설은 만주와 연해주에 흩어져있는 의병들을 ‘13도의군’으로 통합하여 국내진공을 준비했다. 한일병탄 후에는 권업회(勸業會) 의장에 올라 사관학교를 창설하고 광복군을 육성했다. 판보이쩌우도 중국에서 무장조직을 만들고 네 차례에 걸쳐 무력항쟁을 시도했다. 특히 1916년에는 베트남 황제를 왕궁에서 탈출시키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황제는 폐위되었고, 프랑스당국에 의해 아프리카의 외딴 섬에 유배되었다.

 

해외에 최초로 임시정부를 수립한 것도 비슷하다. 이상설은 191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일병탄 이후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를 조직하고 수장인 정통령(正統領)에 선출됐다. 판보이쩌우도 일본에서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끄엉 데(疆柢 강저) 왕자를 앞세워 일종의 항불(抗佛) 망명정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의 행적도 닮은꼴이다. 판보이쩌우는 프랑스와 조약을 맺은 일본의 강제퇴거명령으로 태국으로 쫓겨났다.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국 광둥으로 가서 1912년 베트남 광복회를 조직하고 반식민 투쟁을 계속했다. 이상설도 일본과 동맹을 맺은 제정 러시아가 한인지도자 체포령을 내리자 중국 상하이로 피신했다. 그 곳에서 신규식·박은식 등과 1915년 신한혁명단(新韓革命團)을 결성하고 투쟁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은 식민본국의 압력에 의해 망명지 정부로 부터 추방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망명지를 옮겨가면서 국권회복운동을 계속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 필자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점이다. 20세기 들어 한국과 베트남에서 왕정복고는 더 이상 국권회복의 주된 노선이 될 수 없었다. 공화정이 대세였다. 무능하고 자신의 배만 불리는 왕조와 봉건체제는 민중들에게 오히려 타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판보이쩌우는 베트남 왕자를 일본으로 망명시켜 왕정복고와 입헌군주제의 독립방략을 밝혔다. 이상설은 고종의 밀명으로 헤이그 만국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고, 러시아에서 고종의 망명을 추진했다. 더구나 그가 설립을 주도한 신한혁명단은 고종을 당수로 추대하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했다.

 

두 사람은 결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니었다. 판보이쩌우는 유교와 한학을 배웠지만 량치차오(梁啓超)·캉유웨이(康有爲) 등 중국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들과 교류했다. 이상설 역시 성균관 교수를 지낸 당대의 유학자였지만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독학으로 근대 학문을 섭렵한 인물이다. 이처럼 빼어난 선각자인 두 사람이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공화제 대신 입헌군주제를 표방한 점은 무척 아이러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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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두 망명객, 독립항쟁의 씨앗을 뿌리다

 

《월남망국사》로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잘 알려진 판보이쩌우는 1939년에 발행된 《한국혼》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한국과 우리 월남은 아시아 형제국으로 인종과 학통이 같더니, 이제는 고통마저 같구나.”

 

망국과 망명의 고통을 함께 한 두 사람의 말년은 어땠을까.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이상설은 끝내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1917년 망명지인 러시아에서 48년의 길지 않은 삶을 마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유언했다.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날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 

 

중국 각지에서 항불(抗佛)투쟁을 지휘하던 판보이쩌우는 1925년 상하이에서 프랑스 관헌에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되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그는 국내외의 사면 요구로 석방되어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다. 1940년 9월, 그가 해방의 동지로 그토록 믿었던 일본군이 또 다른 정복자로 베트남에 발을 디뎠고, 한 달 뒤 그는 숨을 거뒀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비운의 정객이었다. 이들이 활동한 시기는 러일전쟁·한일병탄·신해혁명·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전대미문의 격동기였다. 일본·러시아·프랑스·영국 등 제국주의 세력 간에 동맹과 조약이 맺어지고, 식민지를 둘러싼 ‘거래’가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힘없는 식민지 망명객들의 활동은 어쩌면 ‘예견된 실패작’이었는지 모른다. 인재양성·무장투쟁·망명정부 구성 등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펼친 국권회복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간단(間斷)없는 투쟁’은 결국 두 나라 독립항쟁의 소중한 ‘씨앗’이 되었다. 서전서숙과 동경의숙이 폐숙된 후 북간도에서는 명동·창동·정동·길동학교 등이, 베트남에서는 매림의숙·옥천의숙이 잇달아 문을 열어 두 학교의 민족정신을 계승했다. 이상설의 신한혁명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으며, 판보이쩌우의 항쟁은 고향 후배인 호찌민의 독립 쟁취로 그 열매를 맺게 되었다. 

 

두 분의 삶은 만추가경(晩秋佳景), 늦게 피는 꽃이 더 아름답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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