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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한인들의 사랑방 ‘위드 커피’ 성공 스토리

[구대회의 커피유감] 커피로 교민 입맛 사로잡은 김양현 사장

구대회 커피테이너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3(Sat) 18:00:00 |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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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하이(上海)의 한·중 합작법인 델타 익스체인지(Delta Exchange)에 근무 중인 회사원 김영빈씨는 언제나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서너 잔의 커피는 기본이고, 주말이면 아내와 시내의 유명한 커피집을 순례하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주말마다 들르는 곳이 있는데, 상하이 한인들의 커피 사랑방으로 유명한 위드 커피(Wid Coffee)다. 이곳에서 그는 원두를 선택해 마실 수 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즐겨 마신다. 바(Bar)에서 추출해 서빙하는 여느 카페와는 달리 이곳은 주인장이 직접 손님 테이블에서 커피를 추출해 주기 때문에 맛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있다.

 

위드 커피는 상하이 한인들의 커피 쉼터이자 사랑방이다. 전체 손님 중 반 정도가 교민들인데, 대개 남편의 사업과 직장 때문에 이주해 온 주부들이다. 남편들은 주말이면 골프도 치고 종종 술도 마시면서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해소하지만, 주부들은 육아와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다. 기껏해야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과 학교로 간 사이에 집안일을 마치고 잠깐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놓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게 전부다. 위드 커피 김양현 대표 역시 남편의 직장 때문에 상하이로 온 터라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무언가 다른 즐거움과 희망을 줄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놓은 것이 커피 아카데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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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한인들 찾아와 매장 북적

 

김 대표는 2013년부터 한인들을 상대로 커피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땅한 커피 교재를 구할 수 없어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회사에서 컴퓨터 회계 교육 담당을 한 경험이 교재를 만들고 교육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커피협회 강사 교육을 이수하고 커피 라이선스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지금까지 그에게 커피를 배운 문하생은 312명에 달한다. 대부분 적적함을 달래고자 취미로 배우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는 카페 창업을 목표로 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위드 커피는 커피 음료를 파는 것뿐 아니라 수준 높은 바리스타 교육으로도 상하이 한인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다.

 

지금은 223㎡(약 70평)의 카페와 커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집에서 교민들에게 커피 한 잔을 대접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2003년 미국계 회사를 다니는 남편이 해외로 발령이 나면서 가족 모두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소일거리로 집에서 교민들을 상대로 컴퓨터 교육을 했는데 이때 커피를 대접했다.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혼자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지금처럼 신선한 원두가 아니라 마트에서 파는 오래된 원두를 사용했다. 2005년 일본에 갈 기회가 생겨 생전 처음으로 생두를 접했다. 그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일본에서 생두를 사와서 집에서 홈로스팅(Home Roasting)을 시작했다. 역시나 교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006년 남편이 중국 상하이로 발령이 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한국에서 생두를 공급받아 맹렬하게 연습을 했는데 의욕이 앞선 나머지 많은 양의 생두를 태워먹었다. 새까맣게 태운 원두만큼 김 대표의 마음도 타 들어갔다. 하지만 그때 공부가 지금의 김 대표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로스터리 카페에서 파는 정도의 품질은 아니었지만, 볶은 커피를 친구들에게 생두 가격만 받고 팔았다. 김 대표의 원두를 맛본 친구들의 지속적인 러브콜에 드디어 2011년 12월에 지금의 자리에서 카페를 열었다.

 

창업 당시는 지금의 4분의 1 정도 규모였다. 정말 거짓말처럼 손님들이 불어났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양질의 커피를 경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손님이 손님을 데리고 왔다. 2명의 직원은 어느 새 8명으로 늘었다. 이러다 빌딩을 사겠다 싶을 정도로 현금 장사의 재미가 쏠쏠했다. 커피 아카데미를 하기 위해 1년 만에 매장의 규모를 4배로 늘려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본격적으로 카페를 시작하기 전 김 대표는 남편에게 간곡하게 부탁과 협조를 구했다. “당신을 만나 십 수년 동안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당신을 내조했다. 이제는 나도 나를 위해 살고 싶다. 물론 가사에 소홀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를 도와 달라. 그러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힘들다.” 그 후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와 아이들의 이해 덕분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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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에 2호 매장 열기 전 사기 당해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가정과 사업장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순조로웠다. 그때 김 대표는 위드 커피 2호점을 크게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국 중국인 자본가와 동업을 시작했다. 항저우(杭州)의 빌딩 3개 층 660㎡(약 200평)를 임차했다. 2015년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오픈 준비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그는 50만 위안, 한화로 약 8500만원까지 투자했다. 그러나 결국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사기였다. 중국인 동업자가 자기 명의로 매장을 오픈한 것이다. 투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어디에다 하소연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일부 중국인들의 사기를 몸소 당한 것이다. 몇 날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큰돈은 물론이고 자신의 로스팅 노하우와 음료 레시피를 모두 빼앗기고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에 울화가 치밀었다.

 

김 대표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도전, 스태프 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현재 매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은 모두 그녀의 커피 아카데미 출신이다. 7명의 직원들은 향후 카페를 창업하거나 본인이 원할 경우 계속해서 스태프로 남을 수 있다. 그 가운데는 주부들도 있는데, 그들은 이 일을 통해 엄마와 누구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보람을 느낀다. 요즘은 12~18세 청소년을 상대로 부모와 함께하는 커피 세미나를 열고 있다. 커피 로스팅과 커피 추출을 몸소 체험하고 라테 아트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부모와 함께하다 보니 아이들이 그 나이 때 겪는 부모와의 서먹서먹한 사이도 좋아지는 등 관계가 한결 나아진다고 한다.

 

김 대표는 중국에서 믿고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커피를 제공한다는 것과 교민들을 상대로 한 커피 교육을 통해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커피 인생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전 세계 교민들이 찾아올 수 있는 커피집을 만드는 것이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와 더불어 그들이 그곳에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이 그의 마음이다. 누구보다 교민의 고충을 잘 알고 있고 그의 의지가 확고하기에 머지않아 그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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