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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 내도 손가락질만"…일반인 '미투'의 그림자

"차라리 가해자가 유명인이었으면 좋겠다" 한숨

김경민 기자 ㅣ kkim@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3(Sat) 20: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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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에 용기 내어 개인 SNS에 해시태그를 달고 나의 이야기를 올렸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직장 선배의 성추행 얘기였다. 가슴 속에 담아왔던 얘기를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후련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 후련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가해자였던 선배는 비밀 쪽지를 보내와 사과와 함께 글을 내려 달라 했다. 곧 사내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내가 그 선배를 꼬시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여자로 돼있었다. 많은 동료들이 이미 내 미투 글을 본 후였지만, 내 편은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내내 직장인 김아무개씨(34)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그의 마음 속 감정은 슬픔과 분노, 억울함과 두려움이 혼재된 감정이리라, 기자는 다만 추측할 뿐이었다. 끝내 눈물을 참으며 이야기를 마친 그는 "차라리 그 사람(가해자)가 유명인이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유명인이 가해자면 사회적 파장이 크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공개적 망신도 당하고 이로 인해 부당하게 누리고 있던 지위도 상실하기도 한다.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피해자에 사과도 하고 회사 차원에서 조치가 취해진다. 그런데 저같은 일반인은 미투를 해도 소용 없다. 나만 사장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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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 Too·나도 당했다)​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는 올 초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공개 미투 이후 사회 각계각층의 태풍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연출가 이윤택, 시인 고은, 영화배우 조민기 등 문화예술계 원로 및 유명인사에 이어 종교계·체육계·​언론계·​교육계까지 일파만파 퍼져가고 있다.

 

미투 운동에 힘입어 '일반인 미투'도 확산되고 있다.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역시 유명하지 않은 주변의 인물로부터 당했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개인의 SNS 혹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공간에 공개하는 것이다.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 공간엔 이처럼 '해시태그(#) 미투'를 달고 자신의 경험을 적는 미투 글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올라온 많은 미투글은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의 공감을 사며 응원과 지지를 받고 있다. 

 

 

 

피해자 신분만 공개, 뒷감당은 미투 공개자의 몫

 

이런 가운데 일반인 미투에 대한 자조적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일반인 미투글은 글을 올리는 피해자의 신분과 정체는 공개되지만 가해자에 대한 정보는 숨겨져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대의 명예훼손과 역고소를 우려해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만 알아볼 수 있거나 이조차도 완전히 가린 상태로 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성폭력 피해 사실을 입은 피해자에게만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정아무개씨는 지도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10년 전 이후 또다시 심한 우울증 증상이 찾아왔다. ​그는 올1월 페이스북 개인 계정을 통해 과거 직장 상사로부터의 성폭행 피해사실을 공개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피해를 입었던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SNS 상에서 그가 묘사한 자극적인 성폭행 부분만 떠돌아다니며 그에게 2차 고통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저기 퍼나른 내 글에 달린 댓글은 사실상 '사이버 윤간'이나 다름 없는 수준"이라며 "가해자에게 심리적 보복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만 또 한번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글을 올린 것을 후회했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 '잘했다' 다독인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제약도 일반인 미투를 어렵게 한다. 일반인이 일반인을 상대로 미투를 하면 그 뒷감당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직장내 미투일 경우 그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회사 내에서 괜히 문제를 일으켜 잘릴까봐''문제아로 찍힐까봐''다음인사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등의 이유로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성추행 및 성폭력이 권력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반인 미투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한 뒤도 문제였다. 용기내어 미투를 외쳤지만 정작 돌아오는 건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과 동료들의 외면인 경우도 많다. 언론에 보도된 ‘한샘 성폭력 피해자’도 '꽃뱀'이라는 대중들의 질타에 2차 피해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가해자 처벌 뿐만 아니라 피해자 치유에도 관심 가져야

 

미투는 이미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그 흐름이 보편적으로 확산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인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적 시스템을 지적한다. 현재 미투 파문이 주로 유명인인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2, 3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피해자 치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한국정신보건연구회는 "현재의 미투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의 용기에 그저 환호하기보다는 미투 운동과 같은 캠페인이 없이도 약자가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이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도록 고민해야 한다"며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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