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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객 만나러 온 일본 원작 콘텐츠들

충무로에 부는 일본 콘텐츠 리메이크 ‘붐’…‘일본 원작=흥행 실패’ 공식 깰지 주목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9(Fri) 15:27:47 | 14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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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골든 슬럼버》와 《리틀 포레스트》 그리고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세 편은 모두 동명의 일본 원작이 있다. 충무로가 일본 콘텐츠를 리메이크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대부분 흥행에 고전하며 ‘일본 원작은 흥행이 어렵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최근 이 공식이 깨졌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 원작인 《화차》(2012)의 흥행(243만 명)과 일본 코미디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2012)의 리메이크 작품인 《럭키》(2016)의 ‘초대박’ 성공(697만 명) 이후 한국영화계가 일본 원작 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과거의 경우 《검은 집》(2007),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 《하울링》(2012), 《용의자 X》(2012) 등 스릴러 장르가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드라마와 멜로, SF 등 다양한 장르의 리메이크가 시도되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리메이크 영화의 시작은 ‘판권’, 즉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허가다. 일본 원작 콘텐츠의 경우 판권 구매 및 영화화 허가 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만화와 소설, 게임 등 콘텐츠 강국답게 다른 국가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리메이크작을 선보인다’는 조건으로 일찌감치 판권을 계약하는 바람에 국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국내 제작자들이 “마음에 드는 원작을 발견하더라도 판권이 묶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푸념하는 이유다.

 

판권 계약이 수월하게 풀린다 해도 영화화하기까지의 시간이 만만치 않다. 《골든 슬럼버》는 ‘영화사 집’이 판권을 구매해 영화로 완성하기까지 총 7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화차》의 경우 2007년 판권 구매 후 영화로 선보이기까지 5년이 걸렸다. 특정 시기에 유행을 타는 소재를 고를 경우, 개봉 시기의 사회 정서와 맞지 않아 고전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시기를 타지 않는 ‘좋은 이야기’를 고르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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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로운 리메이크 불구, 왜 일본 원작인가

 

임순례 감독이 리메이크한 《리틀 포레스트》의 경우 원 콘텐츠는 동명 만화다. 일본에서는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으로 나누어 두 편의 영화가 제작됐고, 이는 한국에서도 개봉됐다. 영화 판권은 원작 만화 출판사가 가지고 있었다. 만화 원작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등 계약 조건이 까다로웠다. 이럴 때 힘이 되는 존재가 양국을 잇는 코디네이터다. 《리틀 포레스트》 판권 문제는 일본 제작사 로봇(ROBOT)의 기획 프로듀서 고이데 마사키가 도왔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이 분야에서 활발히 거론되는 이름이다. 일본 만화와 소설, 연극 등을 한국 제작사와 함께 제작하거나 판권 문제의 원활한 해결을 돕는 게 그의 몫이다. 하반기 개봉을 앞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역시 고이데 프로듀서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 작품이다. 일본의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명문 중학교의 한 남학생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자 같은 반 학생들의 부모가 학교로 소집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판권이 해결되더라도 각색이 남아 있다. 원작의 기본 틀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한국 관객의 정서를 고려하는 것이 관건이다. 원작자의 시나리오 검수가 필요하기도 하다. 한마디로 까다로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일본 원작 콘텐츠가 꾸준히 선호되는 이유는 ‘흥미로운 소재, 탄탄한 플롯’ 때문이다.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 층의 부재는 제작자들이 이미 검증된 원작 콘텐츠를 찾는 이유와 연결된다. 국가적으로 사회문화적 양상에 유사한 점이 많아 공감대 형성이 쉽다는 점, 개봉 전부터 원작 콘텐츠 마니아층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각색은 원작이 사랑받았던 핵심 요소를 지키되 한국 관객의 정서에 더 맞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최근 개봉한 《골든 슬럼버》는 억울하게 암살범으로 지목된 남자의 도주극이라는 줄기를 가져오면서도,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도주범의 친구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그를 응원한다는 주요 설정을 흔들면서 극의 중심이 기우뚱해진 경우다.

 

원작은 ‘습관과 신뢰’의 가치를 중심에 놓고, 치밀한 복선을 통해 이것이 주인공을 어떻게 살리는지를 그려낸다. 주인공의 도주극이 스릴러가 아닌 휴먼 드라마로 완성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한국판 《골든 슬럼버》는 소시민과 공권력의 대결에 집중하고, 액션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꼭 원작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 각색인 것이다. 주연 배우 강동원의 스타 파워도 이 같은 각색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반면 《리틀 포레스트》는 성공적 각색이라는 평을 얻는 중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여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가 손수 농사를 짓고, 수확한 작물로 요리를 해 먹는다’가 주요 설정이니만큼, 원작 영화는 꼼꼼한 계절 요리 레시피에 가깝다.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를 두고 갑자기 집을 나가버린 엄마와의 이야기도 주요 줄기다. 한국 리메이크에서는 이 설정을 유지하되, 주인공 혜원(김태리)과 고향 친구들의 사연으로 범위를 넓혔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숲’을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선택하려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됐다. 건강하게 정성껏 잘 살고 싶어지는 마음. 그것을 유도하는 것이 원작의 핵심임을 잊지 않은 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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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과 현지화,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

 

주인공이 외딴 시골에서 홀로 지낸다는 설정은 일본 원작과 같지만, 한국 버전에는 동네 친구들이 혜원의 집에 수시로 드나든다. 가까운 곳에는 고모가 살며 혜원의 살림을 봐 준다. “한국에서는 ‘젊은 여성 혼자 사는 외딴집’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스릴러로 보이는 듯해서” 각색했다는 감독의 말이 마냥 농담으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원작과 달리 주인공의 엄마가 집을 나가는 시기를 ‘수능 직후’로 잡은 것도 입시에 예민한 한국 관객의 정서를 고려한 선택이다.

 

세상을 떠난 아내가 1년 뒤 장마철에 기억을 잃고 가족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의 판타지 멜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이치카와 다쿠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4년 제작된 동명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를 흔들지 않도록 각색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 개봉 예정인 김지운 감독의 SF 《인랑》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2000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버전은 1960년대 가상의 일본을 배경으로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진압부대 특수요원의 이야기를 그렸다. 한국 버전은 가까운 미래, 남과 북이 7년의 준비기간을 거치는 통일을 선포한 가운데 이를 둘러싼 반통일 테러단체와 새 경찰 조직 특기대, 권력기관 공안부 사이의 격돌과 암투로 각색됐다. 이들 영화가 스크린의 일본 원작 리메이크 바람을 성공적으로 이어갈지 기대가 모이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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