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문 인사’서 ‘시스템 인사’로, 축구협회 달라지나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8 14:27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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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3 대표팀 감독에 ‘비주류’ 김학범 선임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

 

대한축구협회가 향후 2년간 23세 이하(U-23) 대표팀을 이끌 선장으로 김학범 전 광주FC 감독을 택했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은 2월28일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나설 U-23 대표팀 감독으로 김학범 감독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U-23 대표팀은 현재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지난해 10월 부임한 김봉길 감독이 당초 아시안게임까지 가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1월 중국에서 열린 U-23 챔피언십 부진으로 인한 비판 여론 때문에 사실상 경질됐다. 김호곤 전 기술위원장이 김봉길 감독 선임을 결정했지만 그 역시 히딩크 감독 파문으로 지난해 11월 물러남으로써 정작 대회가 끝난 뒤 평가와 책임을 질 인물이 없었다.

 

결국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판곤 위원장이 결단을 내렸다. 그는 대회 후 김봉길 감독을 만나 계약 해지에 대한 합의를 받아냈다. 1월말부터 새로운 사령탑 찾기에 나선 김판곤 위원장은 지도자 경력, 축구 철학, 장·단기 레이스에서의 성과, 선수단 관리, 피지컬 훈련에 대한 이해, 상대 분석 등을 총망라한 이른바 ‘하이 프로파일(Hi Profile) 프로세스’로 객관적인 감독 선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신임 U-23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김학범 전 광주FC 감독 © 사진=연합뉴스


 

‘비주류 전술가’ 김학범 파격 선임

 

김판곤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감독선임 소위원회가 한 달간의 고민과 토론 끝에 도출한 결과는 김학범 감독 선임이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빗댄 ‘학범슨’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김학범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 K리그를 대표하는 전술가로 통한다.

 

하지만 철저한 축구계 비주류다. 강릉농공고(현 강릉중앙고)와 명지대를 거쳤지만 유명 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8년간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뛴 뒤 1992년 조용히 은퇴했다. 1년간 은행에서 직장인 생활도 했던 그가 축구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93년 코치로 변신하면서다. 국민은행이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현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데 숨은 주역 역할을 한 김학범 코치는 이듬해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을 보좌하는 올림픽대표팀 코치가 됐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구소련 출신의 비쇼베츠 감독을 성실히 보좌하는 한편,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비디오 분석을 독학으로 배우며 ‘독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1년부터는 성남 일화 수석코치로 차경복 감독을 도와 K리그 3연속 제패의 신화를 썼다. 2005년 차경복 감독의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았고 2006년 감독으로서 K리그 우승도 달성했다. 그해 8월에는 명지대에서 ‘델파이 방법을 활용한 축구 훈련 방법에 관한 내용 분석’을 주제로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최근까지도 K리그에서 감독으로 경쟁력을 발휘했다. 2014년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성남FC를 FA컵 우승으로 이끌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후반기 강등 위기에 처한 K리그 클래식(현 K리그1) 최하위 광주FC를 맡아 1년 만에 현장에 복귀했다. 결국 강등을 막진 못했지만, 김학범 감독 취임 당시 이미 광주는 회생 불가능 상태였다.

 

그래도 강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김학범 감독은 3개월 만에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그의 U-23 대표팀 감독 선임은 다소 의외다. 축구인으로서 김학범이 밟은 과정이 철저한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파격 선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판곤 위원장은 “선임 소위원회가 지난 한 달간 세 차례의 회의를 통해 최종 4명을 후보로 좁혔다. 최종회의 결과, 김학범 감독에게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모두 맡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학범 감독과 경쟁한 이들은 최용수 전 장쑤 쑤닝 감독, 장외룡 전 충칭 당다이 감독, 김병수 강원FC 전력강화부장으로 알려졌다.

 

지도자 생활만 25년째에 김학범 감독은 주류 무대에서 가장 큰 도전을 하게 됐다. 현재 23세 이하 대표팀에는 성인 대표팀에서도 주축인 김민재·황희찬 등이 있다. 손흥민·권창훈 등 대표적인 유럽파는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혜택이 주어지는 금메달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학범 감독은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다. 6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시간은 충분하다고 본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의 ‘시스템 인사’ 1호

 

김학범 감독 선임이 ‘비주류 감독의 주류 진입’ 이상으로 의미 있는 점은 시스템 인사를 거쳤다는 데 있다. 지난해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최종예선 부진과 히딩크 감독 파문을 계기로 국민의 신뢰를 잃으며 ‘적폐 논란’에 시달렸다. 특히 그들만의 ‘회전문 인사’가 가장 큰 비판을 받았다. 축구계 내부에서도 고인 물을 버려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정몽규 회장은 부회장·전무 등 임원 대다수와 결별하고 홍명보·박지성 등 젊은 축구인을 요직에 배치했다.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긴 시간 홍콩에서 프로팀,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한 그는 국제적 감각을 가진 몇 안 되는 축구인이다. 홍콩 대표팀 총감독과 기술위원장을 맡던 김판곤 위원장은 한국행을 택했다.

 

그가 책임자인 감독선임위원회는 기존 기술위원회 역할 중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 선임의 권한을 갖는다. 과거 기술위원회는 거수기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판곤 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철저하게 검증하는 과정으로 축구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인 감독 선임을 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객관적 기준을 통해 설득력 높은 인물을 선임해야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U-23 대표팀 감독 선임에 이 시스템이 처음 가동됐다. 선임 조건은 복잡했고, 과정도 치밀했다. 국내외 프로 클럽 등에서 중장기 성과를 낸 인물을 포함해 10명의 후보군을 짰다. 두 차례 회의를 통해 4명의 최종 후보군으로 압축했다. 주관적 의견만이 아닌 비디오 자료, 주변 인물 인터뷰 등 다각화된 기준이 들어갔다. 한 달간 세 차례의 마라톤 토론, 분석과 리포트로 중지를 모은 감독선임 소위원회가 고민 끝에 택한 인물이 김학범 감독이다. 투표는 없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위원들에게 가감 없이 의견을 다 말해 달라고 했고 서로 설득하고, 대화하며 차이를 좁혀 갔다”고 말했다. 김학범 감독은 강한 전방 압박과 공격 중심의 축구를 펼치는 점, 내유외강형 리더십, 극과 극의 환경에서도 성과를 냈던 경력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판곤 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임을 하고 싶었다. 과정이 금메달을 보장하진 않지만 축구협회가 신뢰를 회복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기본적으로 김학범 감독과 대한축구협회의 계약기간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보장된다. 단, 아시안게임에서의 과정과 결과에 따라 검증은 이뤄진다. 김판곤 위원장은 “김학범 감독이 원한 부분이다. 중간평가를 피해 가지 않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며 상호 동의가 이뤄졌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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