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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보는 세상] ‘미투’에 ‘위드유’하는 《글루미 선데이》

강자가 약자에 저지른 ‘성폭력’, 60년 후 어떤 결과 가져오는지 극명하게 보여줘

서영수 영화감독 (茶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8(Thu)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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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때문에 지뢰밭을 걷는 심정”이라고 한 후배 영화감독이 말했다. 미투 운동으로 영화계는 그동안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였음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필자를 비롯한 모든 영화인들이 죄인이 된 심정으로 지금의 사태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한 미투 운동은 피해 발생 시점으로 인해 수사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또 가해자가 무조건 오리발을 내밀며 ‘명예훼손’과 ‘무고’라는 또 다른 폭력을 휘두르면, 피해자는 2차 피해를 각오해야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보다 사회적 불이익이 필요한 미투 운동은 피해 발생 시점과 물적 증거 여부에 지나치게 연연하면 안 된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강자가 약자에게 덫을 놓아 저지른 ‘성폭력’이 60년 후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가 이를 마치 교훈처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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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선보인, 그리고 2016년 재상영된 영화 《글루미 선데이》

 

《글루미 선데이》는 독일 출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롤프 슈벨(Rolf Schubel)이 극영화 데뷔작으로 1999년 연출했다. 영화보다 죽음을 부르는 저주받은 음악으로 먼저 유명했다. 1933년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셰레시 레죄(Seress Rezső)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 《글루미 선데이》가 먼저 라디오 전파를 탄지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자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며 헝가리 정부는 한동안 방송과 연주를 금지시켰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작곡자 셰레시도 1968년 1월7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SG워너비’의 리더였던 채동하(본명 최도식)는 2002년 《글루미 선데이》를 타이틀곡으로 데뷔했다. 2011년 5월27일 채동하는 자택에서 자살했다. 《글루미 선데이》를 17살 때 처음 들은 롤프 슈벨 감독은 1988년 발표된 닉 바르코의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를 원작삼아 영화로 만들었다.

 

《글루미 선데이》는 삼각관계를 다루는 흔한 멜로영화가 아닌, ‘셋이 함께’여서 너무나 행복했던 한 여자(일로나)와 두 남자(안드라스·자보)가 전쟁 속에서 삶이 파괴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독일이 헝가리를 침공해 부다페스트를 점령하고 유태인 박해가 심해지는 가운데, 유태인 자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자보’에 독일군 대령 한스가 찾아온다. 전쟁 전에 자보의 소울메이트인 일로나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한스. 그런 한스의 생명을 구해줬던 자보는 오랜만에 찾아온 한스를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한스는 미소로 포장한 ‘갑질’을 일삼으며, 일로나의 마음 대신 육체를 탐할 기회만 노린다. 국내 한 유명 영화배우가 자신에 대한 미투 폭로에 대해 “당시 사랑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변명한 것처럼 한스도 일로나에 대한 이런 마음을 연애감정이라고 주장할런 지는 모르겠다.  

 

자보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한스의 집무실을 방문한 일로나에게 한스는 “자보를 보호해주면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며 밑밥을 슬쩍 던진다. 한스의 집무실 밖에선 일로나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와 한스의 관계를 오해한다. 그날 저녁 한스는 레스토랑 ‘자보’에서 만찬을 즐기며 안드라스에게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라고 명령한다.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한 안드라스는 연주를 거부한다. 일로나는 그런 안드라스의 곁에 다가와, 《글루미 선데이》에 가사를 붙여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하고, 그런 일로나를 바라보던 안드라스는 자신의 유일한 ‘인생노래’를 연주하고 바로 자살한다. 일로나를 탐하려는 한스의 덫은 독일병정답게 촘촘하고 치밀했다.

 

자보를 이용해 유태인 목숨을 돈으로 흥정하며 개인주머니를 불려가던 한스는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직전에 자신의 비리를 낱낱이 알고 있는 자보를 체포해 수용소행 기차에 태운다. 한스는 자보를 살리기 위해 황급히 달려온 일로나를 일단 안심시킨다. 묵시적 부당거래로 몸을 허락한 일로나의 육체를 유린한 한스. 그는 일로나를 기만하고, 전쟁이 끝나면 자기에게 도움이 될 유태인 저명인사를 자보대신 살려준다. 자긍심을 버리고 욕망의 노예가 된 한스에게 속아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던 일로나는 삶에 오점을 남기고 홀로 남게 된다. 

 

60년이 흘러 부유한 노신사로 변신에 성공한 한스는 부인과 일행을 거느리고 레스토랑 ‘자보’에 와서 80세 생일 축하 저녁식사를 하며 《글루미 선데이》를 신청한다. 피아노 위에는 한스가 일로나를 처음 만난 날 독일 카메라 기술을 자랑하며 촬영한 일로나의 흑백사진이 아직도 놓여있다. 사진을 찢고 튀어나올 것 같은 미소를 머금은 일로나의 사진 위로 《글루미 선데이》 선율이 처연하게 흐른다. 죽음을 부르는 노래답게 연주곡에 젖어들던 한스의 심장은 멎어버린다. “저주받은 노래”라는 한바탕 소동 끝에 한스의 시신이 실려 나가고, 정적만 흐르는 레스토랑. 적막을 깨고 샴페인을 따는 소리가 들린다. 안드라스가 자살용으로 품고 다녔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독약이 들은 병을 주방 안에서 세척하고 있는 일로나.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레스토랑 지배인은 샴페인을 권하며 “다 끝났습니다. 어머니,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말한다. 조용히 건배하는 일로나와 그녀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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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아름다운 사랑을 추구하는 운동

 

《글루미 선데이》처럼 60년 동안 침묵하는 ‘성폭력’도 있지만,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더욱이 영화처럼 법을 뛰어넘은 사적인 복수는 허용되지도 않는다. 미투 운동은 ‘여성이 더 이상 침묵하는 약자가 아닌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겠지만, 우월적 지위를 악용하는 성폭력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가정과 학교도 더 이상 완벽한 안전지대가 아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다음 희생자는 내 가족일 수도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글루미 선데이》에서 세 남녀의 천국을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권력자, 한스 같은 자로부터 잠재적 피해자가 ‘미넥스트(#Me next, 다음은 내 차례)’라는 위기의식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글루미 선데이》는 권력을 가진 한스의 부당한 압력과 계략으로 인해 사랑하는 두 남자를 모두 잃고 자존감을 짓밟히고 구역질나는 섹스를 감내해야했던 일로나가 80세가 넘어서야 60년 전에 당했던 치욕과 수모를 가해자에 돌려주는 순간이 영화의 첫 부분과 마지막이다. ‘성희롱·성추행·성폭력’에 침묵하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미투’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진정한 양성평등은 아름다운 사랑이다. 강압적인 사랑이 아닌. 지위와 힘을 악용하지 않고 상호간의 자유의지에 반하지 않는 ‘유혹’은 인간의 권리 이전에 생명체로서의 의무다. 산봉우리 정상에 오르는 것이 정복이 아닌, 산이 잠시 허락한 것이라는 겸손한 지혜를 안다면, 지금의 미투 열풍으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서로 적대시하는 우를 범할 일도 없을 것이다. 미투 운동은 아름다운 사랑을 추구하는 운동이지, 결코 사랑을 거부하는 운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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