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북확성기 성능 미달에도 눈감은 국방부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2 11:20
  • 호수 14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저널, 감사원 감사보고서 원문 입수…19번 테스트에 2번만 합격

 

군의 대북확성기 사업이 총체적 부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성능 기준에 미달함을 알고도 주먹구구식 성능평가로 합격 처분을 내리고, 이에 따른 후속 조치는 전혀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대북확성기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1월31일 발표했다. 시사저널은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보고서 원문을 입수했다. 감사 결과, 국군심리전단은 2016년 세 차례의 성능평가에서 요구 조건에 미달하는 대북확성기에 대해 ‘적합’ 판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성능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자, 2017년 세 차례의 재검증에서도 성능이 부적합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사업을 그대로 강행했다.

 

군 검찰은 대북확성기 사업에 대한 비리 의혹이 계속되자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사업에 관여한 군 관계자를 구속했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들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이 사건에는 군 출신인 전직 국회의원과 그 보좌관이 관여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났지만, 군에서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최근 민간 검찰은 대북확성기 사업 수사에 착수했다.

 

대북확성기 사업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 2016년 4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의 전방부대와 접경지역 주민에 대한 심리작전을 강화하기 위해 고성능 확성기 40대(고정형 24대·기동형 16대)를 구매한 사업이다. 국방부는 2016년 4월 민간 업체와 ‘고정형 확성기 제조설치 계약’ 및 ‘기동형 확성기 제조납품 계약’을 체결한 뒤 같은 해 12월 전력화를 완료해 운용하고 있다. 고정형 확성기(106억1527만원)와 기동형 확성기(68억6250만원)에 총 174억7777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갔다.

 

군의 대북확성기에 문제가 많은 것이 드러났다. 군사분계선 일대에 설치된 대북확성기 © 사진=연합뉴스


 

성능평가 조건 바꿔가며 ‘합격 몰아주기’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국군심리전단은 2016년 7월 중에 사전 성능평가를 실시하기로 했다. 전력화 완료 시기인 2016년 11월 이전에 성능평가를 완료하기 위함이다. 이에 2016년 6월29일부터 30일까지 강원도 철원군 평화전망대에서 주간(15:00~15:30), 야간(21:00~21:30), 새벽(06:30~06:50) 세 차례 성능평가를 실시했다.

 

군은 대북확성기 도입 당시 작전운용성능 조건을 결정했다. 그 조건은 △가청거리 10km △운용온도 영하 30도~영상 45도였다. 가청거리란 방송 내용을 명료하게 들을 수 있는 거리를 의미한다. 이는 1·3군 대북방송 작전지역의 북한군 및 접경지역 주민의 방송 청취여건과 북한의 확성기 방송 시 우리 군의 방송 효과를 고려하고, 기존에 도입된 확성기의 가청거리(10km)를 고려한 것이었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실시한 국군심리전단의 성능평가에서 A사의 확성기는 세 차례의 평가에서 모두 가청거리를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A사는 개발된 스피커의 설계 변경 등 보완작업을 거쳐 재평가에 들어갔다. 재평가는 2016년 9월20일과 21일 강원도 철원에서 실시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능평가 시간대를 이상하게 설정했다. 국군심리전단은 2016년 9월13일 ‘확성기 성능평가 및 기술검사 계획’을 수립하면서 주간에는 온도·습도 등 환경적 요인에 의해 가청거리가 짧아진다는 이유로 주간 시간을 제외했다. 또 9월20일부터 23일까지 1일 2회, 오전 7시와 야간 20시에 성능평가를 하고 이 중에서 1회 이상 통과 시 합격시키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에 9월20일과 21일 두 차례의 평가에서 모두 작전운용성능을 충족하는 것으로 합격 처리했다. 언론에서는 ‘부실 사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대북확성기 사업에 대한 비판과 성능평가에 대한 의혹이 언론과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자 국방부는 확성기 성능에 대한 재검증에 나섰다. 검증을 실시하지 않은 주간 시간대에 대한 검증을 추가하고, 2017년 1월9일 동절기부터 하절기까지 다양한 운용환경과 시간대에서 성능을 확인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방부 전략조정평가과는 2017년 2월과 5월, 8월 세 차례에 걸쳐 기동형 확성기를 대상으로 하루 4회씩 성능 평가를 다시 했다. 그 결과, 2016년 9월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총 19번의 테스트에서 오직 2번만 통과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동계와 하계에 실시한 14번의 성능평가에서 평가 결과가 주간 및 야간 시간에 한 번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으며, 2017년 2월16일 오전 시간에 실시한 평가에서는 방송지점에서 6.9km 떨어진 지점에서 청취가 제한되는 등 가청거리가 7km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검찰 수사 착수했지만 ‘솜방망이’ 그쳐

 

사업 전반에 비리가 만연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군 검찰은 수사에 착수해 2017년 초 국군심리전단 소속 진아무개 상사를 구속 기소했다. 진 상사는 특정업체와 이메일 수·발신을 통해 계약에 유리한 평가서를 작성한 혐의다. 진 상사는 이 사업을 낙찰받은 I사가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기존 평가표에 없던 ‘제품 선정의 적정성’ 항목을 추가했다. 결국 I사는 고정형·기동형 확성기 입찰에서 홀로 85점 이상을 취득해 규격심사를 통과하고 계약업체로 선정됐다. I사는 여기에 국방부 승인 없이 사업을 하도급하면서 약 35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진 상사는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다. 하지만 재심 신청이 기각됐고, 현재는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국방부 감사실은 2016년 10월31일부터 11월2일까지 3일간 감사를 실시한 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단에까지 이첩돼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못했다. 군 검찰은 이 사건을 해당 사건의 계약 담당자인 진 상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또 국방부 전력조정평가과는 2017년 2월13일부터 8월10일까지 실시한 재평가에서 확성기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8월21일 결산심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중앙지검 역시 사건을 접수했지만 다른 방산 비리 수사에 몰두하느라 이 사건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국회에서도 도마에 올랐었다. 올해 2월20일에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이 의원은 대북확성기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국방부가 알고 있었다는 점과 감사원 감사 결과 업체에 35억원의 부당 이득을 준 사실이 적발됐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송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해당 사항에 대해) 시정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지만, 법무 업무를 담당하는 노수철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반영해 업무처리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월21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직 국회의원 연루 의혹도 불거져

 

사업 과정에서 육군 고위 장성 출신 전직 국회의원이 연루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군 검찰과 국민권익위원회 민원, 경기북부경찰서의 수사 등에서 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나왔다. 이 사건의 초기부터 문제를 제기한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수사 과정에서 기무사령관 출신 전직 국회의원의 보좌관 김아무개씨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북확성기 사업에 관계된 업체에서 차명계좌로 의심되는 돈의 흐름도 나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나 군 검찰의 기소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나오지는 않는다.

 

진 상사는 그동안 보좌관 김씨와의 관계에 대해 부인했다. 하지만 본지가 입수한 수사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진 상사와 세 차례에 걸쳐 술자리와 노래방 등지에서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대북확성기 사업에 낙찰된 업체 인사도 동석했다. 하지만 군 검찰은 업체 인사와 진 상사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이 사건은 이미 낙찰업체를 사전에 정해 놓고, 그들만의 카르텔에 참여한 이들이 부당한 이득을 나눠 가진 사건”이라며 “군 검찰과 중앙지검은 비리의 실체를 확인하고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북확성기 사업은 대통령의 특별 지시사항으로 시행된 160억원에 달하는 사업이다. 이를 일개 육군 상사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은 군의 수사 결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방부와 검찰의 철저한 재수사를 통해 제기되는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숨은 그림’을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현재 대북확성기 사업에 대한 후속 조치에 사실상 손을 놓은 모양새다. 이철희 의원실 관계자는 “국방부는 현재 성능요구서(ROC)가 모호한 것이 문제라는 입장이다. 어떠한 특별한 조치는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업체에 대한 민형사상의 조치나 계약금 환수 조치도 없었다. 대북확성기 계약 특수조건 12조에 따르면, 업체가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 적발될 경우 부당이득금과 그에 상당하는 가산금을 환수하게 돼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러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국방부는 시사저널이 대북확성기 사업에 대한 후속 조치에 대해 문의하자 “관계부서에 알아본 후 답변을 주겠다”고 답한 뒤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