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빤하지 않은 봄…‘핵 공포 없는 한반도’ 기대감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4 14:50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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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한번 보자.”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 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단순한 인사치레로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친근감을 드러낼 때 이런 표현을 자주 쓴다. 얼굴을 맞대고 앉아 대화하면 전화통화나 문자메시지, 이메일 교환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내밀한 부분까지 전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만나야 말도 더 잘 통하고 마음도 더 가까워질 수 있음은 인지상정이다.

 

지난주에 의미 있는 두 만남이 있었다. 오랫동안 대립해 온 사람들이 얼굴을 마주하며 한자리에 앉았다. 자신들의 뜻을 전하고 상대의 생각을 듣기 위해 한쪽은 평양으로 갔고, 또 다른 한쪽은 청와대로 갔다. 모두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만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크게 달랐다. 평양으로 간 사람들은 두툼한 성과물을 들고 왔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처음 5당 대표가 완전체로 만난 청와대에서는 날 선 공방이 틈을 갈랐다.

 

북한을 방문한 특사단이 들고 온 내용은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4월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굵직한 사안이 보따리에 담겨져 왔다. 이를 두고 여당은 평화 로드맵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고 환영했지만,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은 곧바로 “위장 평화 쇼”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청와대 회동에서도 북측의 시간 벌기에 이용당할 수 있다며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남북 정상회담은 지방선거용”이라고 남북 접촉의 성과를 정치적 책략으로 몰아세우기도 했다.

 

3월13일 서훈 국정원장이 도쿄 총리 공관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방문하고 있다. © 사진=AP연합


 

물론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야당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오랫동안 북한에 속아왔기 때문에 또다시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또한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위험한 길이니 아예 발걸음조차 떼지 말라고 할 순 없다. ‘실패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더 나쁘다’는 말도 있듯이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시도했기에 새로운 길이 열렸고, 그 길은 지금 우리가 예측했던 것보다 멀리 뻗어나가 있다. 쉽사리 성사될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북·미 대화의 가닥도 빠르게 잡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일정대로라면 4월과 5월에 잇달아 역사적인 두 차례 정상회담이 열린다. 좀처럼 거리가 좁혀질 것 같지 않았던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심장한 진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한국 특사단의 방미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의 회담 제의를 즉각 수락함으로써 북·미 대화의 물꼬가 화통하게 트였지만, ‘핵 공포 없는 한반도’로 가는 여정은 여전히 안갯 속이다. 안갯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발을 디뎌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막 시작이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드러난 ‘비핵화’는 없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4월과 5월까지 남은 시간도 상당하다. 그 사이에 어떤 돌출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성과에 급급해 서두르다가 예기치 않은 실책을 범할 수도 있다. 쉽게 흥분하지도, 쉽게 좌절하지도 말고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타는 사람은 늘 따로 있었다. 똑같은 물감을 쓰면서도 제출하는 그림의 결은 제각각 달랐는데, 남과 다르게 빤하지 않은 색깔로 표현한 참가자만 결국 좋은 결과를 얻었다.

 

평창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열린 봄. 이 봄을 ‘봄다운 봄’으로 그려내는 데도 빤한 색칠은 무의미하다. 실패를 불렀던 이전의 색칠을 뛰어넘을 진취적인 그림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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