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재벌’의 교비횡령·학위장사…서남대의 몰락과정
  • 정락인 객원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4 15:25
  • 호수 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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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27년 만에 공중분해…설립자 일가에게 잔여 재산 넘어갈 수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북 남원의 서남대학교가 2월28일 공식 폐교됐다. 1991년 3월에 설립된 서남대는 27년의 전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학문연구의 전당이 돼야 할 상아탑은 온갖 비리가 난무하며 멍들었고, 결국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했다. 서남대는 왜 ‘비리·부실 사학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썼을까.

 

서남대는 설립 당시만 해도 야심차게 출발했다. 이학계열 5개 학과와 공학계열 5개 학과 등 총 10개 학과로 설립됐다. 1995년에는 50명 정원의 의예과가 신설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어 학교 발전의 큰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2년 후인 1997년 설립자인 이홍하 전 서남학원 이사장(80)이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학교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같은 해 학생들은 관선이사(임시이사) 파견을 요구하며 대학 학생처장실을 점거한 후 농성을 시작했다.

 

서남대학교 공식 폐교일인 2월28일 전북 남원시 서남대학교 교정에 학교 깃발이 떨어져 있다. © 사진=뉴스1


 

학생 등 학교 구성원 뿔뿔이 흩어져

 

2012년에는 교육부의 특별감사에서 이 이사장의 교비 횡령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횡령액은 등록금 330억원을 포함해 1000억원대에 달했다. 학사 운영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최소 이수시간을 채우지 못한 의대생들에게 학위를 준 것이 적발됐다. 이로 인해 134명의 학위가 취소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서남대는 갈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계속된 악재가 터지면서 급여를 받지 못한 교원들이 그만두고 신입생이 줄면서 학교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여기에다 2011년부터 5년 연속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는 부실대학으로 지정됐다. 2015년부터는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연속 최하위 등급을 받으며 회생불능 상태에 빠졌다.

 

2013년에는 학교 정상화를 위한 임시 이사가 파견됐다. 교육부는 서남대 재단으로는 정상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교원 임금체불과 신입생 충원 비율 감소로 제대로 된 학사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교육부는 인수할 곳을 찾았다. 2015년에는 1차 인수전에서 명지의료재단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학교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부푼 꿈은 금세 곳곳에 숨어 있는 암초에 부딪혔다. 명지의료재단이 약속한 재원을 조달하지 못해 우선협상대상자에서 탈락한 것이다. 학교는 다시 표류하기 시작했다.

 

2차 인수전에는 명지의료재단이 재도전했고, 예수병원 컨소시엄, 서남대 구(舊) 재단 등도 대학 정상화 계획안을 제출하며 참가했다. 하지만 한국사학진흥재단의 컨설팅 과정에서 3곳 모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정기여 방안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3차 인수전에는 서울시립대와 삼육대가 참여했다. 두 대학 모두 교육부의 구 재단 교비 횡령금 330억원의 변제 요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교육부는 서울시립대와 삼육대가 서남대 ‘의대’ 인수에만 초점을 두면서 정상화 방안이 충족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교육부는 두 대학에서 제출한 ‘서남대 정상화 계획안’(인수안)을 반려했다.

 

3차에 걸친 인수전에서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자 교육부는 ‘폐교’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난해 12월13일 폐교 방침을 전격 발표하고는 폐교 수순에 들어갔다. 그동안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학교가 폐교되면서 교수 등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폐교 선언 당시 서남대의 학부 재적생은 1893명(휴학생 588명 포함), 대학원생은 138명(휴학생 8명 포함)에 달했다. 교육부는 남은 서남대생들을 인근 대학에 특별 편입학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원광대, 군산대, 전북대 의대 등으로 분산해 편입학하도록 했다.

 

이들 대학이 폐교된 서남대 학생들의 편입을 달가워할 리가 없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학습권 침해’ 등을 이유로 편입학 반대에 나서면서 갈등을 빚었다. 시설과 교수진을 그대로 두고 대규모 편입을 받을 경우 제대로 수업이 되겠냐며 반발하고 나섰던 것이다. 특히 전북대 의대 학생들의 반발이 거셌다.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이 편입학을 받아들이면서 갈등은 봉합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서남대 교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생계 터전을 잃어버렸다. 폐교 당시 서남대 교직원은 비전임 교수와 임상 교원, 계약직 직원을 포함해 모두 400명쯤 됐다. 이 가운데 시간강사 등을 제외한 교직원 210여 명은 학교가 문을 닫은 후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다. 교직원들은 최근 3년이 넘도록 임금을 받지 못한 가운데, 체불임금이 200억원을 넘는다.

 

2017년 8월10일 서울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서남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정상화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비리재단 먹튀 방지법’ 국회 표류

 

서남대 재산은 대학 부지와 건물, 병원 등을 합해 약 800억~1000억원 규모다. 밀린 교직원 임금과 미지급 건설비 등을 제외하면 600억~800억원이 남는다. 폐교 후 잔여 재산에 대해 현행법에서는 학교법인의 정관에 따르게 돼 있다. 서남학원의 경우 정관 37조에 폐교 시 남은 재산은 학교법인인 신경학원 등에 귀속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관이 정한 잔여재산 귀속자가 설립자 가족이라면 횡령 당사자 가족에게 남은 학교 자산이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서남학원의 잔여재산은 고스란히 신경학원(신경대)이나 서호학원(한려대)으로 넘어간다. 문제는 신경대와 한려대의 설립자도 ‘이홍하’라는 것이다. 경기 화성에 있는 신경대는 부총장인 이씨의 딸이 총장직무대행을 맡고 있고, 전남 광양의 한려대는 이씨의 부인이 총장을 지낸 ‘족벌 사학’이다. 한려대는 아직 이씨가 횡령한 교비 150여억원을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 신경대도 이씨가 횡령한 수익용 기본재산 43억원을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

 

서남대 잔여재산이 이씨 일가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는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사학법 개정으로 ‘비리재단 먹튀 방지법’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는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장인 유성엽 민주평화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사학법 개정안’을 통합해 ‘비리재단 먹튀 방지법’을 마련했다. 설립자나 임원이 교비 횡령 등 회계부정을 저지를 경우 사학법인을 해산할 때 잔여재산을 전액 국고로 환수하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2월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비리사학 먹튀 방지법’을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로 넘겨 심사하기로 했다. 보통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은 여야 이견이 없을 경우 법안소위로 넘기지 않고 전체회의에서 바로 처리해 왔다. 하지만 야당이 발목을 잡았다. 법안심사2소위원회는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소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의원은 “사학 비리는 문제지만 남은 재산까지 국고에 귀속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며 법 개정에 반대했다. 이에 따라 사학법 개정이 무산 위기에 처했다. 자칫 서남대 잔여재산이 이씨 일가에게 가는 것을 뻔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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