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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늄 팔찌가 건강에 좋다는 건 가짜 뉴스”

의사·화학자 “차라리 돼지가 하늘을 난다고 해라”…미국 FDA “게르마늄 약품·식품 금지”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7(Sat) 14:00:00 | 14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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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하늘을 나는 생체역학’에 관한 연구 논문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말도 안 되는 가짜 논문(fake paper)이다. 캐나다 신문 ‘오타와 시티즌’은 지난해 3월 이 논문과 ‘바다에 서식하는 조류(鳥類)’에 관한 논문을 준비했다. 2편 모두 내용·저자·소속기관·연구지원기관을 조작한 엉터리 논문이다. 신문은 이 논문들을 인도의 OMICS 인터내셔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두 논문 모두가 학술대회 ‘초청 논문(주요 논문이라는 의미)’으로 평가받았고, 등록비 999달러를 내면 초청 연사로 논문을 발표했다는 기록을 만들어주겠다는 통보까지 받았다. 이를 사례로 들며 가짜 논문 행태를 보도한 이 신문에 따르면, 인도의 OMICS 인터내셔널과 같은 업체들이 세계 유명 도시에서 매년 수천 회의 ‘해적’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가짜’ 학술지도 발간한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제프리 비올 교수가 확인한 가짜 학술지는 1000여 종이 넘는다.

 

개인의 취업이나 승진을 위해 이용하던 가짜 논문이 최근 ‘건강용품’의 상술로 등장했다. 대표적인 건강용품이 게르마늄 장신구(팔찌·목걸이 등)다. 1990년대 초부터 국내에 소개된 게르마늄 팔찌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는 듯했으나, 최근에 다시 TV홈쇼핑과 인터넷을 통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게르마늄이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게르마늄 팔찌를 파는 업체가 난립하면서 경쟁이 심해졌다. 일부 업체는 게르마늄이 건강에 좋다는 내용의 가짜 논문을 광고 수단으로 내세웠다. 과거에 유명 연예인이나 쇼닥터를 앞세워 건강용품을 팔았지만, 가짜 연구 논문까지 내놓는 행태는 이례적이다.

 

가짜 논문은 가짜 뉴스처럼 발행기관, 저자 등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내용도 과학적이지 않다. 물론 공식 학술지에 게재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짜 논문은 ‘해적 학술지’를 통해 퍼진다. 발행기관이 모호한 해적 학술지는 어떤 논문이라도 돈을 받고 게재해 준다. 최근 국내에 퍼진 게르마늄 관련 논문은 ‘약학연구세계학술지(WJPR)’ 특별호(2017년 11월)에 실렸다. WJPR은 공식 학술지 목록과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전문 검색 엔진에서 찾을 수 없다. 또 시사저널이 입수한 게르마늄 관련 논문을 보면 제목부터 정교하지 않다. ‘완벽한 건강법(The perfect health solution)’이라는 제목의 5쪽짜리 글에는 영어로 국가명을 ‘German’이라고 표기했다. 독일의 영어 국가명은 Germany다. 논문의 저자는 성요셉병원의 게르마늄연구소 의학과의 루카스 본 박사다. 그러나 루카스 본이라는 사람은 과학 분야에 학술논문을 발표한 흔적이 없다.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 이 논문에는 피험자 몇 명을 대상으로 어떻게 실험을 진행했다는 설명도 없다. 이 논문은 ‘(특정 회사명을 표기하며) 가장 효과적인 게르마늄을 제조한다. 그 회사 제품은 면역·집중력·통증 완화·피부와 운동능력 개선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술 논문에는 누구나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규범이 있다. 저자 이름과 소속을 밝히는 것은 기본이다. 게다가 특정 제품을 치켜세울 목적으로 해당 업체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작성한 논문은 학계에서 신뢰하지 않는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그 논문은 특정 회사의 게르마늄 팔찌를 사용했더니 일주일 만에 관절염·통증·백혈병·백내장·간 기능 장애가 신속하고 극적으로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결과는 논문이라기보다는 광고에 가까운데, 이것이 게르마늄 팔찌의 ‘과학적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이해 상충을 철저하게 경계하는 정식 과학 논문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결론이다. 소비자를 속이는 정도를 넘어 과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까지 무너뜨리는 짓이다. 무엇보다 게르마늄이 건강에 좋다는 이런 유령 논문은 마치 ‘돼지가 하늘을 난다’는 식의 가짜 주장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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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99.99%’ 상술도 경계해야

 

광고에서는 게르마늄 팔찌나 목걸이가 알레르기·관절염·골다공증·통증은 물론 심지어 암과 치매까지 억제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또 게르마늄 업체는 게르마늄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혈액 내의 전자 농도를 높여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노화를 방지한다고 주장한다. 게르마늄 팔찌가 운동 능력을 향상한다고도 한다. 업체의 광고 글만 보면 게르마늄 팔찌는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만일 특정 증상이 호전된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면 게르마늄 팔찌는 의료기기로 등록될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료기기로 허가해 준 게르마늄 제품은 한 건도 없다.

 

가짜 논문이나 광고를 본 일반인은 게르마늄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오인할 수밖에 없다. 약사법은 일반인이 의학적 효능으로 오인할 수 있는 표시·광고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 효능을 강조하는 제품을 판매할 목적으로 저장·진열하는 것도 불법이다. 이 때문에 TV홈쇼핑이나 인터넷에서는 게르마늄 제품이 건강에 좋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TV홈쇼핑은 방송이라는 특성상 병을 고친다고는 말하지 않지만, ‘어르신에게 좋다’거나 ‘집안일 하는 주부들에게 좋다’며 마치 아픈 증상들이 없어지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온라인 체험 댓글(?) 등을 소개하며 소비를 부추긴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지난 설 명절 때까지 게르마늄 제품을 많이 팔았다. 업체들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다시 한번 ‘대박 판매’를 노리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게르마늄 제품이 건강과 무관하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홈쇼핑 내부적으로도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업체는 5월 중 제품을 다 팔아치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떴다방처럼 일부 업체는 게르마늄 재고를 팔아 이익을 챙기고 잠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짜 논문과 함께 일반인을 현혹하는 또 다른 상술은 ‘순도’다. 게르마늄 제품을 파는 업체는 자사 제품의 순도가 99.99%라며 ‘순수한 게르마늄’이라고 홍보한다. 일부 업체는 자석에 붙지 않으므로 철 등 불순물이 없는 게르마늄이라거나, 망치로 내려쳐서 깨져야 순도가 높은 게르마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순도와 건강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소비자가 ‘순도가 높은 제품은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이덕환 교수는 “일반 돌도 자석에 붙지 않으며, 망치로 치면 깨진다. 업체의 주장은 일반인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는 판매 이벤트일 뿐이다. 무엇보다 광석은 여러 물질이 섞여 있으므로 순도를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 순수한 게르마늄이라면 엄청나게 비싸고 희귀해서 장신구 따위에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광석의 순도와 건강의 관계는 입증된 바 없으므로 일반인은 99.99%라는 게르마늄 광고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가짜 논문이나 순도로 경쟁하는 게르마늄 업체들은 서로를 비방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중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한다거나, 외국의 유명 브랜드처럼 속이거나, 온라인 댓글로 경쟁사의 제품을 헐뜯는 행위가 업계에서 난무하고 있다. 가짜 논문을 들고 나온 업체는 업계로부터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당한 후 사실상 폐업했다. 또 업체들은 게르마늄이 건강과 무관하다는 언론 보도나 전문가 칼럼에 대해 댓글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게르마늄으로 증상 호전됐다면 ‘가짜 약 효과’

 

게르마늄 팔찌나 목걸이를 착용한다고 해서 해(害)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30만~40만원짜리 게르마늄 팔찌가 건강에 득이 된다는 의학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환자 중에 게르마늄 목걸이와 팔찌를 차고 와서 효능을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 게르마늄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의학적 증거는 없다. 의료용으로도 게르마늄을 사용하지 않는다. 게르마늄 팔찌나 목걸이를 사용한 후 통증이 사라졌다는 것은 기분 탓”이라고 강조했다.

 

‘기분 탓’이라는 것을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가짜 약 효과(플라시보)’다. 맹물도 약으로 알고 먹으면 환자의 20%는 증상이 좋아진다.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50대 남성 직장인은 “일본에서 사 온 게르마늄 팔찌와 목걸이를 착용한 후 비염 증상이 좋아졌다. 비염약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짜 약 효과’라도 치료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몇몇 국가에서 있었다.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과 일본이다. 게르마늄도 이 두 나라에서 상품화됐다. 게르마늄은 1846년 독일의 화학자 클레멘스 빈클러가 처음 발견한 평범한 광물(탄소족 원소)이다. 실리콘과 같은 전기적 특성을 가진 게르마늄은 1948년 반도체에 사용됐다. 현재는 야간투시경, 광케이블 등에 매우 소량만 사용된다. 1970년 후반 일본에서 게르마늄 보조제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류머티즘, 음식 알레르기, 고콜레스테롤, 바이러스 감염, 암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유럽 등지에도 보급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게르마늄 보조제를 섭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심각한 신장 기능 저하 증상이 나타났다. 빈혈·근력저하·말초신경증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31명이나 확인됐고 사망자도 있었다. 1989년 영국 보건당국은 게르마늄 영양제가 영양학적·의료적 가치가 없으며 득보다 실이 많다고 경고했다. 미국 FDA(식품의약국)도 1997년 게르마늄 보조제의 무분별한 섭취가 위험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게르마늄이 포함된 약품과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강희철 교수는 “오래전부터 일본과 독일에서 의학적으로 검증 안 된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도들은 결국 건강과의 상관관계가 판명되지 않아 사장됐다”고 말했다.

 

 

국내 게르마늄 제품 시장, 1990년대부터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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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늄 제품은 1990년대부터 국내에 소개됐다. 냉면그릇·베개·수족온욕기·침대·비누·냄비·화장지·매트·생수 등에 게르마늄을 넣었다는 광고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1991년 한 신문에는 “한 서울대병원 임상병리학과 교수가 ‘게르마늄 성분이 암세포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이는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기사가 났다.

 

당시 게르마늄 온천까지 난립했다. 여기저기 게르마늄 온천이 생겨나 경쟁하면서 자극적인 광고 문구를 내세웠다. 일부 온천업체는 ‘마셔도 기적, 씻어도 기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당뇨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업체는 199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게르마늄 온천수에 게르마늄 함유량이 극히 미미했고, 게르마늄의 효능도 검증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게르마늄 온천 광고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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