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배용준 좋아한다’는 얘기 할 수 있어 행복”
  •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9 13:32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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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한국문화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한 중년여성 배용준 팬들

 

시사저널 1481호에서 일본 피겨스케이팅 선수 하뉴 유즈루를 흠모하는 중년여성 팬들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들은 국민적 스타 하뉴 선수의 팬이 되면서 피겨에 관한 공부를 하고 그를 함께 좋아하는 팬끼리 감정과 기념품 그리고 정보를 공유하는 데 주저 없이 마음을 열고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10년 전 배우 배용준의 팬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영화를 통해 한국문화 읽어내기’라는 학부 수업을 개설하자 열렬 한류 팬 9명이 청강을 신청했습니다. 연령은 50대에서 70대까지, 사는 곳은 센다이 시내도 있었지만 이와테현, 후쿠시마현까지 다양했습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한 수강생은 10여 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매번 20여 명이 수강생으로 참여했지요.

 

배용준 기념품을 전시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덧 소녀가 되는 청강생들 © 사진=이인자 제공


 

한국문화에 관한 호기심 대단

 

배용준의 열성 팬 청강생은 결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침 10시30분부터 시작하는 수업인데, 10시면 전원이 교실 밖 복도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오시는 분은 새벽 5시에 집을 나오시고, 이와테에서 오시는 분은 전날 집을 나와 함께 청강하는 분의 집에서 하룻밤을 잔다고 했습니다. 자녀나 손주 나이 정도 되는 학생들과 함께 듣는 강의에 그녀들이 가장 열심이었지요. 혹시나 배용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흥이 나는 듯한 어조로 말합니다. 제 수업을 청강한 이유는 배용준의 나라 한국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습니다.

 

수업 준비를 다른 수강생들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보고 와야 할 한국영화를 그룹으로 모여 감상하고 서로 토론까지 마친 후 수업에 임합니다. 한국문화에 관한 호기심도 대단해서 수업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질문을 합니다. 갑작스러운 한류 열풍 덕에 강의하는 맛이 느껴졌고, 학생들도 더 적극적으로 따라왔습니다.

 

“우린 어디 가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배용준을 좋아한다는 말을 못해요. 티 안 내면서 팬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지요. 왠지 남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고 팬이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

 

“맞아요. 그런데 이렇게 대학에서 우리 생각이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하지요.”

 

70세가 넘은 분이 발그레 얼굴을 물들이며 하시는 말에 60대 초반의 친구분이 대답을 합니다.

 

그녀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니 제가 경험하거나 봐왔던 것과 다른 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또한 지금 생각하면 하뉴 선수의 팬들과 닮은꼴이기도 하고요.

 

“배용준이 서울 어디엔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우리의 행동 반장 가네코씨가 출석 여부를 체크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해요.”

 

그러자 옆에 있던 분이 “걸려온 전화에 바로 답을 해야 해요. 내일 간다는 경우도 있고, 오늘 밤에 도쿄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로 간다며 답변해 달라는 때도 있어요”라고 말해 줍니다.

 

‘일본 사람들은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저로서는 처음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엄마들이 자녀들을 기르면서 가장 많이 꾸짖는 말 중 하나가 “미리미리 계획적으로 일을 해야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본은 무계획에 대한 비판이 강한 사회지요.

 

리더 격인 가네코씨는 온천지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고, 은퇴해 낮에도 함께 지내는 남편과 둘이 살거나 ‘3세대 동거’로 손주를 돌보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분들 중에 가장 많이 한국에 오신 분은 왕복 40회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한국만이 아닙니다. 도쿄에 배용준이 오면 모두 입장권을 구해 갑니다. 배용준을 만나지는 못하는 행사지만 관련 행사에 다들 모이는 겁니다. 그가 출연한 영화를 매일 오전에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출근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처음 보는 팬이라 해도 그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은 모두 팬이라 여겨 점심을 함께하고 배용준 이야기를 한껏 나누고 돌아갑니다.

 

팬들이 주고받은 명함집. 배용준의 여러 사진과 데생을 인쇄한 명함집이 그의 화보가 된다. © 사진=이인자 제공


 

예의 바르고 질서정연하게

 

센다이 영화관 개봉 기간 20여 일을 그렇게 지내고 도쿄까지 가서 영화를 보고 온 분도 있습니다. 도쿄에 배용준이 레스토랑을 차리자 단체로 예약해서 식사 모임을 하고 배용준의 향기와 한국문화를 호흡하고 옵니다. 2500엔이나 하는 ‘배용준 편의점 도시락’은 짧은 시간의 예약으로 매진입니다. 그때도 그냥 혼자 도시락을 먹는 게 아닙니다. 행동 반장의 기획하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배용준을 느끼고 이야기하고 돌아갑니다.

 

배용준의 팬이라는 이름하에 마음을 열고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를 받아들입니다. 갖고 있는 배용준 관련 물건이나 정보 그리고 감정까지 공유하고 연구도 합니다. 혼자 시작한 팬 생활이 집단이 되고, 역할이 주어지고, 행동 방식이 정해집니다.

 

제 수업에 들어온 그녀들도 행동대장이 있었습니다. 70대인 시마씨는 한국어 공부를 해 통역 담당이고, 후쿠시마현에서 아침 일찍 오시는 분은 음식 솜씨가 좋아 손수 농사지은 온갖 채소로 만든 저장식품을 모두에게 전합니다. 그림에 솜씨 있는 사람은 배용준 데생을 그려 나누어 줍니다. 바느질을 잘하시는 분은 배용준 사진을 배치한 예쁜 쿠션을 만들어 모두에게 선물합니다. 효자 아들을 둔 어머니는 배용준이나 그의 사무실 마크를 인쇄한 티셔츠를 만들어 모두에게 돌립니다.

 

갖고 있는 것을 공유하는 것도 특징이지만 질서정연한 것도 특징입니다. 청강생들은 배용준을 만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가 들어도 생소한 시골 촬영지를 다섯 번이나 갔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공항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식 행사장도 물론입니다. 그럴 때 나만 좋다고 나서서 악수를 하려 하거나 질서를 흩뜨리는 사람은 열성 팬들 사이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열성 팬이라고 해서 마구잡이로 스타에게 접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예의 바르게 배용준을 바라보고 접하면서 자신들의 네트워크 안에서 자기 자리를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마씨는 지금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10년 전처럼 배용준을 찾아 한국까지 가진 않지만 한국에 대한 공부도 한국인들과의 교류도 잔잔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류 관련 중년 이상의 여성들에 관한 분석은 여러 방면에서 있었습니다. 지면상 모두 거론하진 못하지만 중년여성들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류 배우들의 팬이 됐다는 취지의 분석이 많았습니다. 사회현상의 하나로까지 번진 한류 현상은 그 이유가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고 느낀 일본인 팬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호에 좀 더 심도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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