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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피해자들 두 번 죽이는 ‘무차별 테러’

피해자 신상털기·허위사실 유포·가짜뉴스까지 확대 재생산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0(Tue) 08:56:00 |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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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9일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는 JTBC 《뉴스룸》에 직접 출연했다. 현직 여검사의 방송 출연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52·사법연수원 20기)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서 검사의 폭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이것을 도화선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에 동참하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동안 수치심에 침묵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미투에 동참하며 스스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용기를 내며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고 차마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피해 사실을 적나라하게 세상에 꺼내 놓았다. 성폭력 특성상 피해자가 자신을 밝히고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피해자지만 또 다른 피해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미투 운동에 동참하며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들이 2차, 3차 피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특히 방송 등을 통해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피해자들의 경우 테러 수준의 공격을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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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녀로 몰아가며 피해자 공격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33)는 3월5일 JTBC에 출연해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8개월 동안 안 전 지사에게 4차례 성폭행과 함께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김씨는 범행 장소와 시기로 안 전 지사와 동행한 러시아와 스위스 출장을 지목했다. 특히 안 전 지사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2월25일에는 김씨를 불러 미투에 대한 불안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날도 김씨를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얼굴과 실명은 물론 목소리와 표정까지 방송을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굳이 방송에 출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제가 오늘 이후에라도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방송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 방송을 통해 국민들이 저를 조금이라도 지켜주셨으면 좋겠다”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결국 그의 방송 출연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였던 셈이다. 김씨는 국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국민들이 저를 지켜주신다면 다른 피해자들도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간청했다. 김씨는 변호인단을 꾸려 방송 하루 뒤인 3월6일 안 전 지사를 서울서부지검에 고소했다.

 

그러나 김씨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방송에 나와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뒤 무차별 공격에 시달렸다. 김씨와 관련한 언론 기사의 댓글에는 ‘너도 좋았지’ ‘돈을 노리고 폭로했냐’ ‘불륜이다’ ‘냄새가 난다’ ‘성폭행으로 둔갑한 치졸한 공작’ ‘유부남과 놀아난 돌싱녀’ 등의 악플이 달렸다. 김씨의 외모를 비하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김씨에 대한 ‘신상털기’도 심각하다. 김씨의 출신학교부터 교우관계, 사진 등이 유포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지은’을 검색하면 네티즌들이 김씨에 관해 가장 많이 검색한 연관 검색어가 뜬다. 여기에는 ‘김지은 정무비서 학력’ ‘김지은 정무비서 결혼’ ‘김지은 비서 나이’ ‘김지은 비서 프로필’ ‘김지은 돌싱’ ‘김지은 남편’ ‘김지은 이혼녀’ 등 각종 개인 신상과 관련한 내용이 집중적으로 검색된 것을 알 수 있다.

 

동영상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김지은 안희정’을 검색해 보면 자극적인 제목의 영상이 검색된다. ‘안희정 반격 시작! 김지은 돌싱 폭로! 미투 후회! 돌싱인 게 죄인가요?’ ‘안희정 충격 고백, 사랑해, 김지은 정무비서 사랑했었다’ ‘안희정 전 지사 판 뒤집혔다. 김지은 비서 비밀 밝혀져’ ‘김지은, 안희정을 거절 못한 충격적 진실 이제서 폭로’ 등이다. 대부분 김씨가 일방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게 아니라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들이다. 이들 동영상의 조회 수는 수백만에서 수십만을 기록하고 있다. 김씨를 ‘불륜녀’로 몰아가려는 목적과 사회적 이슈에 편승해 자극적인 제목과 개인 신상을 집중 부각시켜 조회 수를 늘리려는 상업적 목적이 함께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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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폭로자 지인들까지 피해 입어

 

검색사이트인 구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지은 비서’를 검색하면 방송 인터뷰 사진 외에 사생활 관련 사진까지 공개돼 있고, 일부 블로그·카페·커뮤니티 등에는 김씨와 관련한 각종 루머 등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올려져 있다. 김씨가 ‘돌싱’(돌아온 싱글·이혼한 사람)인 것을 부각시켜 미투를 폄하하거나 안 전 지사를 먼저 유혹한 것처럼 사건의 본질을 오도한 것도 적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씨의 가족도 공격 대상이다. SNS(사회관계망)에는 김씨의 아버지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자유선진당 당협위원장으로 대전의 유지라는 내용의 가짜뉴스가 퍼졌다. 안 전 지사를 죽이기 위한 야당의 의도적인 폭로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김씨 측은 “모두 허위”라며 “당원이었던 적도 없고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신상털기, 허위사실, 악성 루머 등이 극성을 부리자 손편지를 공개하며 자신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김씨를 돕고 있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도 기자회견을 통해 “추측성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전달하는 2차 가해 행위를 중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김씨는 얼굴이 알려져 외부 생활을 전혀 못하고 있으며,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라고 한다.

 

익명 폭로자의 경우도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은 3월7일 현직 기자 A씨가 2011년 정봉주 전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단독으로 보도했다. 프레시안은 피해자인 A씨에 대해 피해 당시에는 기자 지망생이었고, 현재는 현직 기자라고 밝혔다. 이 보도가 나가자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려던 정 전 의원은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이때부터 프레시안과 정 전 의원 간의 진실 공방이 시작됐다. 정 전 의원 측은 3월12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프레시안 보도를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익명의 A씨에 대해 해당 기사를 쓴 서어리 기자와 대학동문이자 언론사 입사 시험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 사이라고 특정했다.

 

네티즌들은 서 기자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서어리 기자’는 단번에 포털사이트 상위 검색어를 점령했다. 네티즌들은 서 기자의 나이·사진·친구·페이스북 등을 검색하며 A씨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서 기자의 SNS 등의 계정도 샅샅이 훑어 친한 친구를 찾아내고, ‘대학동문’과 ‘기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공통점을 가진 사람을 줄여 나갔다. 그러다 서 기자와 친한 대학 친구 세 명 중 한 명을 A씨로 특정했다. 그는 서 기자와 대학동문이며, 친한 친구 중 한 명으로 한때 언론사 기자 생활을 했던 S씨였다.

 

네티즌들은 S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몰려가 댓글을 통해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악플을 달았다. 아울러 S씨의 사진을 ‘정봉주 전 의원 성추행 폭로 당사자 A씨’라며 유포했다. 일부 블로거나 회원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어리 기자와의 관계를 언급하며 S씨의 사진과 실명이 공개됐다. 심지어 찌라시(사설 정보지)에도 S씨가 ‘A씨’라고 단정해서 암암리에 유포되기도 했다.

 

문제는 S씨가 프레시안 보도에 나온 ‘A씨’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SNS 계정을 통해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 피해자 A씨를 추측하는 과정에서 제가 마치 피해자 A인 것처럼 단정하는 허위사실이 유포되고 있다. 제가 기사를 쓴 서어리 기자와 동문이고, 기사에 피해자가 기자라는 언급 때문에 그런 억측이 나온 모양인데, 분명히 밝히지만 저는 피해자도 아니고 이번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저의 실명과 사진, 신상정보가 공공연하게 유포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심지어 개인 SNS와 모바일 메신저로 저에게 피해자 A임을 실토하라는 협박까지 한다. 이에 개인의 명예가 훼손된 것은 물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정신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S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때 기자 생활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일반 회사원이다. 피해자를 캐내려는 잘못된 추측과 신상털기로 나와 같은 2차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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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노출된 피해자 보호 대책 시급

 

S씨는 법적 대응에도 나섰다. 그는 3월12일 오후 서울 광진경찰서를 찾아가 댓글이나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자신을 피해자로 추정하거나 단정해 글을 올리고 사진과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게재한 사람들을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도 2차 피해에서 예외가 아니다. 현직 검사 신분인데도 각종 루머와 악플 등에 시달렸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성추행 문제를 자신의 인사문제와 결부시키지 말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는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표현을 동원해 가며 마치 서 검사가 성추행 사건을 부풀려 인사 특혜를 받으려 한다는 인상을 주도록 했다. 서 검사는 해당 검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를 요청했다. 서 검사에 대한 외모 비하 등 각종 악플도 쏟아졌다.

 

성폭력 피해자와 미투 운동을 비꼬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일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유명 소설가인 하일지 동덕여대 교수는 수업 중 “소설 《동백꽃》의 줄거리는 점순이가 총각을 성폭행한 것”이라며 “소설 속 화자인 ‘나’도 미투를 해야겠네”라고 조롱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하 교수는 또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피해자를 언급하며 “처녀와 달리 이혼녀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며 피해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학생들은 성폭행 피해자가 원해서 관계를 맺었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대학 강단에 선 지식인들조차 성폭력 피해자를 왜곡되게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투로 인한 2차, 3차 피해는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동안 미투를 통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힘겹게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한 피해자들이 추가 피해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감내하며 위험에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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