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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성폭력 가해자 반드시 처벌하는’ 매뉴얼 준비

병원 떠날 각오로 ‘미투’ 폭로한 의료인 고통에 여자의사회 나서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1(Wed) 14:00:00 |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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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미투(#MeToo·나도 당했다)에 대한 강도 높은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기존 소극적인 신고 접수나 예방 교육은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여자의사회는 ‘성폭력 가해자를 반드시 처벌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는 성폭력대응TF팀(전담팀)까지 꾸려 병원 평가에 성폭력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한국여자의사회가 성폭력 제재·예방 매뉴얼을 준비하는 이유는 징계 절차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신현영 한국여자의사회 이사(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도제식 교육이라는 의료계 특성상 성폭력을 신고한 피해자는 평생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기고 산다. 그럼에도 피해 사실을 폭로할 정도라면 가해자가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거나, 피해 여성이 여러 명인 경우”라며 “성폭력 피해가 신고되면 신속히 그리고 반드시 가해자를 징계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징계 과정이 질질 늘어지면 피해자만 더 고통스럽다. 사후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로 시달리는지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외부 강사의 강연이나 인터넷 강의 등 실효성이 낮은 성폭력 예방 교육도 바꿀 계획이다. 신 이사는 “성폭력 예방 교육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의료인이 관련 교육을 받은 후 다른 의료인을 교육하는 것도 고려할 만한다. 의료기관 내부 사정은 의료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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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 두 번 죽이는 늑장 징계

 

이는 최근 정부가 밝힌 ‘의료계 내 권력형 성폭력 범죄에 대한 대책’의 일환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중 전공의 법 개정 내용에 전공의 성폭력 예방 및 대응 의무 규정이 마련될 것”이라며 “성폭력 예방을 위해 의료기관 평가 지표에 ‘성희롱 성폭력 예방’이나 ‘피해자 보호 및 대응’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에 성폭력대응TF팀이 꾸려졌다. 이 팀을 맡은 임인석 중앙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이제 겨우 한 차례 미팅을 해서 구체적인 대응책을 논의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성폭력 제재와 예방 두 가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며 “약 5개월 후쯤 가시적인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폐쇄적 문화’와 ‘권력형 구조’는 의료계의 고질적인 병폐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 특성상 직군이나 지휘 체계가 명확해야 한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권력형 성폭력이 만연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배경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성폭력을 경험한 의료인은 2200여 명으로 집계됐다. 가해자의 71%는 환자였다. 그 뒤로 의사(14%), 환자 보호자(13%), 상급자(7%)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법적 대응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속으로 삭이는 것이다. 환자나 조직 내 상급자에게 성폭력의 책임을 묻는 피해자는 병원을 그만둘 각오까지 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의 여자 인턴은 선배 전공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레지던트 중에서도 급이 가장 높은 ‘치프’였던 가해자는 회식을 명목으로 인턴을 불러내 술을 먹인 후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은 이 사실을 지난해 7월 알고도 차일피일 미루다 미투가 한창이던 2월27일에야 가해자를 해직했다. 이 전공의 계약만료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늑장 처분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그 사이 피해자는 병원을 그만두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한 의료인은 “그 일은 강간 수준의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늦어지면서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성 전공의는 한 교수로부터 회식 자리 등에서 반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신고가 접수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해당 교수에 대한 처분은 없었다. 결국 피해자가 병원을 떠났다. 이 병원 관계자는 “회식 자리에서 전공의 어깨와 다리에 손을 얹는 등의 행동을 한 것으로 안다. 해당 교수는 진료에서 배제된 상태고, 징계위원회를 통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교수는 1999년 당시 인턴이던 피해 여성을 술자리 후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인턴은 강력하게 거부해 당시 상황을 넘겼지만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다. 피해자는 인턴을 마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 그곳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진상 조사에 착수한 병원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외국에 있어서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관련 내용을 확인한 후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오히려 병원을 떠나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피해를 봐도 폭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의 생존권을 쥔 권력자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오히려 낙인찍혀 병원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간다. 선배 의사들의 네트워크가 있으므로 다른 병원에서도 의사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 윤리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가해자는 어떤가. 회식 자리에서 “전공의가 임신하는 건 민폐”라는 등 여성을 비하하고 간호사를 성희롱한 혐의로 종합병원에서 해임된 의사는 두 달 만에 다시 개인병원으로 옮겨 진료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여성 인턴 의사를 성폭행한 후 파면됐다. 그 의사는 병원을 떠나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하는 한 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폭력으로 병원에서 쫓겨나도 의사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 진료하는 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징계가 징계로서 기능을 못하는 사이 병원 내 성폭력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 한 대학병원 여자 의사는 “1980년대에는 자신의 성기를 넣은 술잔을 주며 마시라는 교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교수라는 절대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문화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의료계의 자정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윤리 회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지태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고려대 의대 소아과학교실 교수)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자기가 얻은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면서 “피해자를 보호·상담하고, 가해자 처벌 및 교육과 함께 재발 방지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 문제는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윤리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성희롱·성추행·성폭행·성폭력 차이 

 

성희롱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성추행은 일방적인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해 물리적으로 신체 접촉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성폭행은 강간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성폭력은 이 모두를 포괄하는 상위 개념으로, 성적인 행위로 남에게 육체적 손상 및 정신적 압박을 주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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