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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투 운동’ 뒤의 숨은 그림자, 가족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2(Thu) 17:00:00 |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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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기도 하고 미묘하기도 하지만 한 번은 짚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피해자에게도 ‘가족’이 있고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숨어서 그 누구보다 많이 아파하고 깊이 괴로워 할 ‘가족’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될 것 같다.

 

  며칠 전 ‘미투 운동’을 다룬 기사 중 한 여성이 올린 글을 보았다. 오래전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즉시 가해자를 고발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상처받으실까 봐’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 상처도 아물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는 고백이 담긴 글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딸은 후회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고, 그동안 딸이 홀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이제야 헤아리는 부모의 회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깊음을 깨달은 까닭이다.

 

피해자에게 자신 못지않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가족이 있듯이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숨은 그림자로 자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리라. 고은 시인이 “아내에게 결코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을 때, 그의 아내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동료 시인들의 연이은 폭로를 접하며, 도무지 이해불능의 당혹스럽기 그지없던 기행(奇行)을 ‘묵과했음’에 대한 남성 문인들의 반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인의 아내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또한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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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안희정 전 충남지사 또한 “아내와 두 아들에게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머리 숙였다. 안 전 지사의 뒤늦은 사과가 그의 가족이 경험하고 있는 모욕과 수치심, 분노와 당혹감, 실망과 좌절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수 있으려나 의구심이 몰려든다. 그동안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던 남편이자 아버지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의 심경은 어떨 것인지…. 자신이 남편이요 아버지라는 사실이 갖는 엄중한 책임과 막중한 의무를 한순간이나마 떠올렸더라면, 지금 이 순간 위계에 의한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는 사태까지 이르진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탤런트 조민기의 자살은 남겨진 가족 입장에선 또 얼마나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일인가.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동정과 비판의 시선이 부딪치고 있는 와중에, 군 복무 중인 아들이 받아야 할지도 모를 고초와 고립에 대해 지레 걱정하는 목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미 미디어를 통해 얼굴이 알려진 그의 아내와 딸의 앞날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수군거림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함부로 죽음을 선택할 리는 없다 해도, 그의 죽음만큼은 진정 무책임했노라, 사려 깊지 못했노라 비난하는 목소리도 빈번하게 들려온다.

 

피해자, 가해자를 불문하고 그들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2차 피해의 심각성도 우리를 아프게 한다. 지금은 희생자의 상처를 위로하고 감싸 안기에도 벅찰 텐데 근거 없는 악성 루머와 신변의 위협까지 감당해야 하는 가족들의 곤욕과 희생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지. 덧붙여 해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가해자 가족의 위기는 어떻게 치유하고 극복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우리가 필히 거쳐 가야 할 통과의례임이 분명할진대, 관건은 이제부터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지에 달려 있을 게다. 혹여 단기성 이벤트로 끝나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고질적 악순환에 빠지는 일만큼은 절대 사절이다. 대신 오늘의 미투 운동을 계기로 보다 성숙한 사회가 될 때만이 지금의 고통이 응분의 보상을 받게 될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보다 성숙한 사회를 향한 걸음 중 하나가 숨어 있는 가족의 고통과 상처까지 헤아리고 보듬는 것이라면 나이브한 생각이려나?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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