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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영화의 반격, 《리틀 포레스트》 《소공녀》​

“다르게 살면 뭐 어때?”…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청춘들의 이야기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3(Fri) 19:00:00 |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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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워라밸’ ‘소확행’ 같은 단어들이 유행이다. 각각 개인의 일(work)과 생활(life)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뜻하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이 같은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의 피로 사회,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팍팍한 삶을 살아야 하는 시대라는 뜻이다. 취업·결혼·연애·주거공간 등 거의 모든 것을 끝도 없이 포기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에서 요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인 ‘N포 세대’는 어느덧 친숙하기까지 한 단어가 됐다. 이 같은 사회 풍경은 영화에도 반영되는 중이다. 흥행 순항 중인 《리틀 포레스트》와 3월22일 개봉하는 《소공녀》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려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그간 꿈과 좌절 그리고 사랑을 그렸던 여느 청춘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결과 시선을 지녔다. 청춘에게는 현실에 대한 위로도 필요하고, 다른 삶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작품들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김태리)은 전형적인 취업준비생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팔다 남은 도시락으로 연명하며 준비한 임용고시에는 떨어졌다. 시험을 함께 준비하던 남자친구만 덜컥 붙은 뒤 연애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다. 몸도 마음도 허기진 혜원은 정말로 ‘배가 고파서’ 고향인 시골 마을로 돌아온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문소리)가 뚜렷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떠나버린 뒤 내내 비어 있던 집이다. 혜원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겨우내 꽁꽁 언 땅에 묻혀 있던 배추에서 잎을 뜯어내 배춧국을 끓이고, 한줌 남아 있는 쌀로 밥을 지어 소박하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다. 이후 네 번의 계절을 나는 동안 혜원은 직접 수확하거나 철마다 자연이 선물하는 식재료들로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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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삶에서 작은 숲을 찾자

 

주인공 한 명의 사연에만 집중하는 일본 만화 원작과 달리, 이 영화는 혜원의 친구들의 사연으로까지 시선을 넓히면서 청춘들의 다양한 고민과 선택을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던 재하(류준열)는 일하면서 겪는 모욕적인 상황들을 견디다 과감히 퇴사를 선택했다. 고향에서 과수원을 일구는 그는 “그래도 농사에는 사기나 잔머리 같은 게 없어서” 좋다고 말한다. 때로 날씨가 돕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간의 일이 아닌 하늘의 일이라는 태도가 재하에게 있다. 농협에 취업해 고향 마을을 한 번도 떠나지 못했던 은숙(진기주)은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꼰대’ 부장에게 과감한 한 방을 날린다.

 

임순례 감독은 “도시에 사는 모두가 지치고 피곤해 보일 뿐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며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환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말 그대로 ‘다른 삶도 있다’는 제언이다. 하지만 대책 없는 낭만으로 혜원의 사계절을 포장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잠시 좋은 기운을 얻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불행한 얼굴로 출근길 지하철과 만원 버스에 올라타야 하는 관객의 현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혜원의 선택을 판단하지 않는다. 힘겨운 도시를 떠나 자급자족하는 생활만이 해답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떤 삶인지 답을 찾을 수 없어 고민하는 혜원의 불안은 여전하다. 대신 《리틀 포레스트》는 흔들리고 불안한 청춘의 삶이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위로를 건넨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온전하게 심는다는 뜻으로, 양파 농사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파종해 옮겨 심은 양파를 재배할 곳에 아주심기를 마치면, 그렇게 겨우내 모진 눈과 추운 날씨를 버텨 낸 양파는 더욱 달고 단단해진다. 서로 다른 환경이지만 각자의 삶에서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을 찾을 수 있기를 응원하는 영화의 토닥임 또한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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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고 꿈 없어도 좋다, 취향만 지킬 수 있다면

 

3월22일 개봉하는 《소공녀》는 좀 더 과감한 이야기를 담는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미소(이솜)에게는 단골 바에서 마시는 하루 한 잔의 위스키,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한솔(안재홍)이 삶의 위안이다. 그러나 새해가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오르는 물가 때문에 취향을 고수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집 월세와 담배 가격이 올랐지만 일당은 변함없는 상황. 미소는 좋아하는 것들이 비싸지는 세상에서 단 하나, 집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월세방을 빠져나온 미소는 과거 밴드를 함께했던 친구들의 집을 돌며 며칠씩 신세 지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생활을 시작한다.

 

집 때문에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취향을 포기하는 시대. 《소공녀》는 이 시대 풍경의 한가운데에서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가난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영화는 미소를 N포 세대의 전형으로 그리지 않는다. 살림은 빠듯하고, 입소문 난 맛집 한 번 가지 못하는 데이트의 연속이지만, 미소는 꿋꿋하게 취향과 자존을 지킨다. 친구들의 집을 전전할 때도 단순히 숙박을 신세 지는 것이 아니다. 미소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이자 실용적인 선물인 달걀 한 판을 꼭 건네고, 능력을 살려 친구들의 집을 청소한다. 미소가 독특한 캐릭터이기보다 나름의 품위가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존과 품위와 취향을 지키려는 N포 세대는 그간 흔하게 접하던 소재가 아니다.

 

미소에게 뚜렷한 꿈이 없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한솔은 웹툰 작가 지망생이니만큼 뚜렷한 목표가 있는 반면,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 한솔과의 데이트만 있다면 더 바라는 것이 없는 인물이다. 실제로 미소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특별히 하고 싶다는 말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청춘은 꿈꿔야 하는 존재라는 암묵적이고 관성적인 인식 역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제대로 버텨 나가기도 힘든 이들에게 꿈꾸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한 상황인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시선의 반영이다.

 

전고운 감독은 “1억이라는 돈을 모으는 것도 너무 힘든데 그 돈으로 집도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미소가 고집하는 위스키와 담배는 ‘다들 무언가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는데 술과 담배는 그중에서도 특히 부정적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 일부러 선택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만 승부하는 영화는 아니다. 미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떠올리는 친구들의 술회와, 미소가 내리는 어떤 선택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께에는 애잔함이 물씬 배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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