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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 메이저리거 이치로 “51세까지 뛰겠다”

[이영미의 생생토크] 친정팀 ‘시애틀’로 돌아온 스즈키 이치로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5(Sun) 14:00:00 | 14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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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의 스즈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친정팀인 시애틀 매리너스로 돌아왔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데뷔했던 그가 12시즌을 뛰고 뉴욕 양키스-마이애미 말린스로 팀을 옮겼다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시애틀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지난 시즌 종료 후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잔류를 선언했다. 그러나 얼어붙은 시장 분위기는 은퇴를 앞둔 일본인 베테랑 선수에게 냉담한 반응을 나타냈다. 한때 일본 복귀설도 나돌았지만 이치로는 흔들림 없이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결국 시애틀이 이치로와 1년 75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친정 복귀가 가능해졌다. 이치로한테 연봉은 중요하지 않았다. 현역 선수로 뛸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어떠한 계약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팀도 아닌 시애틀로의 복귀였다. 이보다 더 완벽한 시나리오도 없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이치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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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는 개가 된 기분”

 

3월12일,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신시내티 레즈와의 시범경기에 첫 출전했던 스즈키 이치로는 3타수 무안타 2삼진을 기록했다. 이날은 이치로가 시애틀 복귀 후 처음 치르는 시범경기라서 일본 취재진의 관심이 뜨거웠다. 이치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음에도 경기 후 “굉장히 감격스러웠고 행복했다”는 내용의 소감을 전했다. 그는 “정규시즌에서 잘하려면 시범경기 동안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오늘은 내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다시 이 구장(피오리아 스포츠콤플렉스·시애틀 스프링캠프 훈련장)에 설 수 있어 좋았다. 오늘은 내게 매우 특별한 날이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2001년 27세의 나이에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시범경기에 나섰던 이치로와 2018년 45세의 이치로가 시범경기에서 보인 분위기는 큰 차이를 나타냈다. 그는 “27세의 난 우익수로 뛰었다. 12년 동안 시애틀의 우익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좌익수다. 마이애미 말린스 시절 한 차례 좌익수를 맡은 적이 있는데, 수비하러 뛰어나가다 우익수 포지션을 향해 달리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시애틀에선 내가 좌익수라는 걸 잊지 않을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이치로는 일본 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메이저리그 17시즌 통산 성적이 타율 0.312(9885타수 3080안타), 117홈런 780타점 509도루 출루율 0.355, OPS 0.759로, 메이저리그 현역 최다 안타 1위를 기록 중이다. 데뷔 첫해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고, 10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외야수 골드글러브를 받았으며 10년 연속 올스타에도 뽑혔다. 2012 시즌 중반 트레이드를 통해 시애틀을 떠났지만 그는 이사도 하지 않고(시애틀의 집을 처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프시즌 동안 시애틀과 일본을 오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 5년 반 동안에는 시애틀을 그리워하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속한 팀들(양키스, 말린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말할 수 있다. 진심으로 시애틀을 그리워했다고 말이다. 오프시즌 동안 일본에서 훈련하고 미국으로 들어올 때면 항상 시애틀을 거쳤다. 다시 시애틀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현실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난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기쁘다.”

 

이치로는 2001년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됐을 때도 기뻤지만 지금의 기쁨은 이전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전혀 다른 형태의 기쁨인 것이다. 메이저리그에 첫발을 내디뎠던 27세의 이치로와 어렵게 선수 생명을 연장한 45세의 이치로의 현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시애틀을 떠나 있는 동안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배웠다. 선수로서의 능력은 숫자로 알 수 있는 시대라서 내가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인내력을 갖고 변화에 대응했다. 그 변화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치로는 지난해 12월23일 일본에서 열렸던 ‘이치로컵 유스 야구대회’ 폐막식에 참가했다가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이제 일본으로 돌아오는 것이냐”란 질문을 받았다. 당시 그의 일본 친정팀 오릭스에선 이치로가 복귀하길 강력히 희망했다. 이치로는 바로 답을 못하고 말을 빙빙 돌리다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리지 않고 남은 큰 개가 된 기분이다.”

 

이치로는 시애틀 입단 기자회견에서 이를 다시 설명했다.

 

“선수가 팀에서 3년 정도 결과를 내지 못하면 조용히 사라진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40세 이상의 선수와 계약하지 않는다면 나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메이저리그는 조금 다른 색깔의 야구를 해야 한다. 겉으로는 케이지 안의 가장 큰 개로 보이지만 그 큰 개에게 뛸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걸 바치고 싶은 충성심이 솟아난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베테랑 선수들을 다른 차원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팀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 많은 걱정을 해 줬다. 난 의연했다. 걱정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야구를 하며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변화가 생겨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 건 선수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항상 추구해 왔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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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번호 51번 이치로 “51세까지 뛸 생각”

 

이치로는 루틴을 중요시하는 선수다. 3살 때부터 야구 연습을 시작했다는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후로는 1년에 360일을 훈련했다. ‘1년 360일 훈련’은 프로 데뷔 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을 때도 변하지 않는 루틴이었다. 2017 시즌을 마치고 10월 즈음에 당시 마이애미 말린스의 디 고든(지금은 시애틀 소속으로 이치로와 함께 뛰게 됐다)이 클럽하우스에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배팅 소리가 들려 찾아봤더니 배팅케이지 안에서 이치로가 타격 연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모든 선수들이 오프시즌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 이치로는 휴식보다는 방망이를 집어든 것이다. 디 고든은 한 인터뷰에서 “이치로가 야구를 안 하는 건 죽음이라고 말했다. 난 그가 오랫동안 살기를 바란다”며 이치로의 현역 연장을 응원했다.

 

경기 시작 5시간 전에는 경기장에 도착해 늘 같은 방식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부상 방지를 위해 나무 막대기로 발바닥을 문지르는가 하면 TV를 볼 때 시력 보호 차원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매일 아침 카레와 점심으로 페퍼로니 피자를 먹는다는 이치로.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는 잠자리에 들기 전 무조건 10분 동안 스윙 연습을 하며 일과를 마무리했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단 한 번도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이치로의 루틴은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주전보다는 후보로 뛰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그는 루틴을 지키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과거 시애틀에서 뛸 때는 매일 경기 라인업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루틴을 이행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그날 경기장으로 출근해 내가 선발로 뛸지, 아니면 대타로 나가게 될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좌투수가 나왔을 때 대타로 나갔다가 바로 교체된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라 굉장히 힘들었다. 나 자신한테 화가 났었다. 그러나 그런 분노가 현실을 견디게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내가 하던 대로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대회 결승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일본은 10회 연장 승부에서 임창용을 상대한 이치로가 2타점 적시타를 터트린 덕분에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이치로는 일본의 영웅이었던 반면에 한국의 역적으로 내몰렸다. 이치로는 그해 WBC의 후유증 때문인지 메이저리그 생활 처음으로 위궤양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의 아내 유미코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자고 일어날 때마다 남편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며 야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치로한테 야구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치로의 등 번호는 일본 오릭스 시절부터 51번이었다. 뉴욕 양키스로 옮긴 2012년 7월까지 21시즌 동안 51번이 그의 등을 지켰다. 양키스에서 51번을 달지 못했던 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4차례의 양키스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버니 윌리엄스 때문이었다. 양키스에선 팀 레전드의 등 번호를 지키기 위해(2015년 5월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이치로에게 31번을 안겼다. 이치로는 마이애미로 이적한 후 51번을 되찾았고, 시애틀에 복귀해서도 51번을 달고 뛴다. 이치로가 51번을 고집하는 건 그의 선수 생활과 맞닿아 있다. 51세까지 메이저리그 선수로 뛰는 게 또 다른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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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사람이 천재라면 난 천재가 맞다”

 

그는 인터뷰에서 “최소 50세까지 뛰고 싶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최대) 50세까지라고 생각하는데 난 항상 최소한 50세까지라고 말했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시애틀과 1년 계약을 맺은 터라 다음 시즌에도 그가 현역으로 남을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40대 선수들이 20대, 30대 나이처럼 경기하기는 어렵다. 그건 이미 통계로 증명된 부분이다. 단 40대의 선수가 지난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같은 나이라 해도 몸 상태는 차이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나이로 선수를 묶어서 평가하는 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치로는 젊은 시절의 자신은 팀보다는 개인을 앞세웠다고 고백했다.

 

“결과로 보여주지 못하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한테만 집중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17년의 시간이 지나 올해 18년째를 맞이했다. 내가 야구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지금은 팀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 걸 시애틀 매리너스에 바치고 싶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할 것이다.”

 

이치로가 시애틀을 떠나 있는 동안 매리너스팀도 많은 변화를 이뤘다. 그는 선수들 이름과 얼굴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 차이를 따지면 내 아들뻘인 선수들이 대부분이지만 경기에 들어가면 그들과 동등한 상황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그들과 나란히 섰을 때 내 모습이 어색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애틀 매리너스 입단식 기자회견장에서 이치로는 복귀 소감을 말할 때 눈가에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한 기자가 눈시울이 젖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자 이치로는 “미디어는 이런 기자회견장에서 눈시울이 젖는 걸 대단히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내가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그건 시차 때문에 아직 정신이 들지 않아서”라고 잘라 말했다.

 

3월12일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이치로는 반가운 얼굴과 해후했다. 시애틀에서 첫 6년을 보내는 동안 투수코치로 활약했던 레즈 감독 브라이언 프라이스였다. 프라이스 감독은 경기 후 이치로를 떠올리며 “그는 길고 긴 시간 동안 특별한 커리어를 보냈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올라갈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셔널리그에서 지난 몇 년간 그를 봐왔지만 정말 좋은 수비력과 빠른 발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타로 나와서도 자신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그런 부분을 꾸준히 유지하는 건 단순히 경력이 많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이치로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 그는 75세가 되어서도 야구를 하기 원할 것이다. 누가 알겠나. 정말 그가 그렇게 뛰고 있을지. 그는 야구를 해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며칠 후 시애틀 매리너스 훈련장을 다시 찾았다. 51번 이치로 유니폼을 입은 일본 팬들로 훈련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모든 훈련을 마친 이치로를 향해 사인 행렬이 줄지어 늘어섰다. 모두가 ‘이치로상’을 연호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을 찾아온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해 주는 이치로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면 난 절대 천재가 아니다. 그러나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면 난 천재가 맞다. 내가 일본에서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을 예약한 이치로의 분명한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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