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는 왜 가짜 칼로 싸울까?”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3 16:19
  • 호수 1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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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를 펴낸 문화심리학자 한민 교수

 

“1938년 미국에 슈퍼맨이 등장한 것은 경제공황에 시달리던 대다수 미국인들의 욕망이 표출된 것이다. 배트맨도 1939년, 캡틴 아메리카도 1941년에 태어났다. 이 영웅들은 당시 상처 입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영웅이었다.”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를 펴낸 문화심리학자 한민 교수의 설명이다. ‘슈퍼맨이 미국에서 만든 캐릭터니까 미국에 나타났겠지’라고 안일한 답변을 생각했다면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다. 이 책은 영웅뿐 아니라 영화·피라미드·하얀 흑인·좀비·귀신 등 다양한 소재를 담고 있다. 또한 홍길동·노벨상·드라마·대통령·흙수저·무당·갑질·호갱·자존감 등 그동안 한국인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던 낯선 문화, 그리고 그 너머 숨어 있는 심리의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준다.

 

한 교수는 ‘토종 문화심리학자’로서 문화를 사회현상에 접목하는 새로운 틀로 이해하고 있으며, 나랏말씀이 영어와 다르므로 한국인의 마음 이론은 한국인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문화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사실상 멸종 위기종에 가깝지만, 그는 여전히 열혈 학자로서 한국적인 사회·문화 현상과 심리학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 2016년부터 카카오 브런치에 ‘한선생 문화심리학’을 연재하며 문화와 마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거침없는 입담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으로 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은 고정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교수 © 사진=부키 제공


 

낯선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심리 안내서

 

한 교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만 알아도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그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고 말한다. 슈퍼맨을 좋아하는 미국인, 관우를 좋아하는 중국인, 홍길동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속마음을 말이다. 영웅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믿거나 집착하는 것들은 모두 그 시대 사람들의 심리를 그대로 투영해 보여준다.

 

관우는 사람의 몸집보다 훨씬 큰 82근짜리 무기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한 교수는 영웅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청룡언월도는 송나라 때(960~1279년) 등장한 무기로, 삼국시대(2세기 후반~3세기)의 장수가 사용했을 리가 없다. 심지어 명나라 사람 모원의가 쓴 《무비지·군자승·기계》에 따르면, 언월도는 관중을 앞에 두고 웅장하게 보이기 위해 연기용으로 사용한 것일 뿐, 실제의 전쟁터에서는 쓸 수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

 

실제로 사용된 적도 없는 82근짜리 청룡언월도가 관우의 상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가. ‘그 정도’는 돼야 관우의 무용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우는 알려진 대로 《삼국지연의》 최고의 영웅이고, 이 책이 쓰인 시기는 중국이 이민족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대로 추정된다. 슈퍼맨이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회복해 주는 영웅이었다면, 관우 역시 마찬가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 교수는 다른 문화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해 온 세계의 역사는 유럽인들이 자기들 관점으로 서술해 놓은 자료가 대부분이다. 한 교수는 우리 안에 내재된 서양인의 시선으로 문화를 판단하고 줄을 세워왔던 편견의 프레임을 하나하나 바로잡기를 바라면서 영화 《300》을 예로 든다.

 

영화 《300》에서 페르시아인들은 대단히 흉악무도하고 거칠고 잔인한 야만인들로 묘사돼 있다. 문제는 이 묘사가 철저히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빡빡머리에 웃통을 벗고 온갖 황금 장신구를 휘감고 포효하는 사람이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다. 머리에 쓴 관과 치렁치렁한 의상은 왕의 위엄을 드러내고, 손에 든 잔과 지팡이는 제국의 풍요와 번영, 그리고 그 제국이 잘 정비된 행정제도로 다스려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서양 사람들은 ‘착한 그리스’ 대 ‘못된 페르시아’의 도식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한다. ‘뭐, 땅은 넓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막 미개하고 그랬을 거야. 페르시아 왕이 폭정을 하고 백성들은 억압에 시달리고 그랬겠지?’ 식으로 말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창시자 키루스 대왕은 그 무렵 가장 강력한 세력이었던 바빌론 제국을 병합하고 일종의 인권선언문(키루스 실린더)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보면 모든 시민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며, 노예제도를 금하고, 국가 사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급여를 지급한다고 나온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미개·억압·폭정 등의 이미지와는 매우 상반된 기록들이다. 한 교수는 페르시아라는 명칭 역시 서구 중심적 시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한 번도 페르시아라고 부른 적이 없다. 그들이 자기 나라를 부르던 이름은 ‘이란’이라고.

 

한민 지음 부키 펴냄 436쪽 1만6000원


 

한 교수는 하나의 예를 들면서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6년 독일의 세계적인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 학자들이 부끄러운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한국의 사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버마스는 이렇게 답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한국의 사정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한국인들이 우리네 문제의 답을 밖에서, 외국의 학자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건 상당히 모순적이라고 콕 집어 지적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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