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2세들의 불운한 역사 언제까지 반복될까
  • 조유빈·이석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7 22:28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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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2세들의 일탈] 후계자 인정받거나 지목된 아들 모두 ‘팽’당해…후계 구도 둘러싸고 법정 다툼도 치열

 

통일교 2세들을 둘러싼 논란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형제들이 두 파로 갈라져 법적 공방을 주고받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최근 독립한 7남 형진씨의 경우 어머니(한학자 총재)를 이혼시키고, 다른 여성과 작고한 아버지(문선명 총재)의 영혼결혼식을 진행하는 등 패륜적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참가정’을 가치로 내건 통일교의 종교적 의미 역시 퇴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부 신도들의 입에서 “말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동안 통일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문선명 총재를 이을 후계자로 장남 효진씨가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는 주력 계열사인 H사 고위 경영인의 딸과 결혼하면서 사실상 문 총재를 이을 제2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했고, 참부모(문선명·한학자 총재)의 신망 또한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사생활이었다. 부인과의 이혼 등 사생활 문제가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효진씨의 전 부인 홍모씨는 당시 100억원대의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다. 아울러 수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 결혼생활과 가족들의 숨겨진 비화를 폭로하면서 효진씨의 입지가 크게 약화됐다. 이후 효진씨는 용산에 위치한 통일교 공관에서 나왔다.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독자 행보를 걸었다.

 

(왼쪽부터) 3남 문현진·4남 문국진·7남 문형진 © 시사저널 임준선·문형진 페이스북


 

2006년부터 형제간 갈등 불거져

 

기자는 2005년 우연한 기회에 효진씨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효진씨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M연예기획사의 ‘회장’ 직함을 갖고 활동 중이었다. 효진씨는 기자와 만나 “미국 유학 때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회사 경영을 조언하고 있다”며 “A댄스그룹을 포함해 20대 젊은 층에 인기가 높은 가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게 내 일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 비운의 황태자는 결국 2008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문 총재의 일곱 아들 중 차남과 6남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차남인 흥진씨는 1984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6남 영진씨도 1999년 사망했다. 그 이후로는 ‘사실상 장남’인 3남 현진씨가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현진씨는 2005년 통일교 핵심기관 중 하나인 UCI(유씨아이) 회장과 천주평화연합(UPF) 공동 의장 자리에 오르면서 통일교의 ‘황태자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진씨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통일교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통일교의 문화를 강력하게 개혁하겠다고 외치는 현진씨를 부정적으로 보는 1세들이 많았다”며 “30대에 인사권을 쥐고 통일교 전체를 혁신시키려는 시도로 인해 내부적인 반발이 컸다. 고 문선명 총재와 현진씨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는 본격적인 형제간 갈등이 불거졌다. 현진씨가 추진해 온 여의도 파크원 개발 사업에 4남 국진씨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통일교 측은 “문 총재의 지시를 받아 정당한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파크원을 둘러싼 갈등은 장기화됐고, 2014년까지 계속됐던 소송에 불씨를 댕기는 계기가 됐다.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멀어진 현진씨는 NGO와 통일교 미국 사업 책임자로 밀려났고, 다른 형제들이 그의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4남 국진씨는 통일교 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을 맡았고, 7남 형진씨는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됐다.

 

문 총재는 2009년 현진씨 대신 7남 형진씨를 공식 후계자로 지목했다. 2010년에는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 사람은 이단자며 폭파자이다”라고 선포했다. 동생이 후계자로 낙점되는 과정을 지켜본 현진씨 역시 효진씨와 마찬가지로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통일교 측은 2009년 7월 현진씨에게 UCI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것을 지시했지만 현진씨는 이를 거부했다. 현진씨가 통일교 파견 이사들을 해임하고 정관에서 통일교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하자, 통일교는 현진씨를 문 총재의 지시를 거부하는 ‘이단’으로 보고 집중 공격을 퍼붓기도 했다.

 

 

차녀 혼외 출산 소식으로 또 구설수

 

‘참가정’을 가치로 삼는 통일교 내에서 가족끼리 분란이 발생했다는 점은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 또 하나의 사건이 알려졌다. 김종석 한국메시아운동사연구소장의 저서 《통일교의 분열》에 따르면, 2012년 문 총재의 차녀 인진씨의 불륜과 혼외 출산 소식이 미국의 한 통일교 전문 사이트에 의해 폭로됐다. 인진씨가 신도인 한 외국인 남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혼외 아들을 출산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출생증명서가 공개된 것이다. 김 소장은 “이 사건은 특히 불륜과 이혼을 금기시해 온 통일교인들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며 “사태의 충격을 잠재우기 위해 미국 총회장으로 간 형진씨는 인진씨의 불륜을 ‘개인의 선택’이라 여겼다. 미국 통일교인의 불만과 불신이 더 커진 것은 당연했다”고 언급했다.

 

2012년 9월 문 총재가 세상을 떠난 후 한학자 총재 체제가 시작되면서 형진씨는 미국으로 떠났다. 2015년까지 세계회장직을 맡고 있던 형진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교회에서 통일교 교권 세력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진정한 후계자임을 주장했다. 형진씨가 현 교권 세력을 ‘이단’으로 사실상 규정하자 통일교 측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결국 형진씨 역시 세계회장직 정지를 당하면서 면직 처리됐다. 결국 한때 문선명 총재의 후계자로 지목됐거나 여겨졌던 아들 3명이 모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통일교는 2015년 3월, 5녀 선진씨를 세계회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통일교 주변에서는 본격적인 모계 후계 체제의 시동을 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한 상태다. 독립한 아들들이 여전히 한 총재를 상대로 파상 공세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한 총재가 일련의 반목을 극복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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