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남 “묻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3.30 13:36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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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행복전도사’ 오종남 서울대 명예교수가 말하는 ‘곱게 나이 들기(well-aging)’

 

13년 연속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율 압도적 1위. OECD 통계에서 수년째 불명예를 얻은 우리나라의 자화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노인들은 ‘틀딱(틀니+딱딱)’이라는 단어로 조롱받고, 청년들은 자국을 ‘헬조선’이라며 비하하곤 한다. 이런 모습은 행복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그러나 오종남 서울대 명예주임교수는 “행복은 어디에든 있다”고 전파한다. 광화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오 교수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중국이 왜 성공한지 알아요? ‘차이 나’기 때문이에요” “남자(Male)는 여자(Female)와 다르게 철이 없어요. ‘Fe(원소기호)’가 없으니까” 등 유머도 뱉었다. 덕분에 사무실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오 교수는 경제관료로 30년 넘게 일했다. 청와대 경제비서관과 통계청장을 지낸 데다 한국인 최초로 IMF 상임이사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맡고 있는 공식 직함만 5개다. 김&장법률사무소 고문, SC제일은행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장, 스크랜튼 여성리더십센터 이사장, 하나고등학교 감사 등이다. 지난해까지는 국무총리실 산하 새만금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이런 오 교수가 이제는 ‘행복전도사’로 나섰다. 3월20일 저서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를 출간하면서다.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오종남 서울대 명예교수 © 시사저널 이종현


 

경력이 화려하다. 그런 경력이 뒷받침된다면 누구나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은 경제와 거리가 멀다. 비슷한 경제력을 가져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똑같은 만큼 성취해도 내가 그것을 얼마나 바랐느냐에 따라 행복은 달라진다. 이를테면 ‘행복=내가 이룬 것 / 내가 바라는 것’인 거다. 내가 무언가를 실질적으로 이뤄내긴 어렵지만 바라는 것을 줄이는 건 쉽다. 그러니 이뤄야 할 것에 목매는 것보다, 상황에 적응하면서 욕심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것을 줄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디스크에 많이 걸린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올려다보면서 비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행복하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하지만, 잘못된 거다. 역설적이게도 남과 비교해야 행복할 수 있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것 같아도,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나름대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는 꽤 괜찮은 거구나’ 생각해 보면 어떨까.”

 

 

교수님은 힘들게 살지 않으셨을 것 같다.

 

“나도 아픔이 있었지, 왜 없었겠는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전라북도 고창 촌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사하셨다. 가난했던 탓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 집에서 가정교사를 했다. 사람들은 내가 유복하게 자란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 대학도 한 번에 못 갔다. 재수를 했는데 그때 충격이 아주 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건 ‘가면을 쓴 축복’이었다고 본다. 재수하면서 바닥이 되어보니까 실패를 이해했고, 어려서부터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이 뭔지 알게 됐다. 이런 경험 덕에 지금의 내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얼마 전에 67세가 되셨으니 이제는 완전한 ‘고령인구’다. 환갑 이후 30년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 예정인가.

 

“65세가 되니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가 나왔다. 말 그대로 ‘어르신’에게 주는 카드인데, 나이만 많다고 해서 다 어르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짐 되는 노인’이 있는 반면, ‘보탬 되는 어르신’이 있다. 출근 시간 지옥철 안이라고 가정하자. 어떤 아주머니가 줄을 제치고 문 열리자마자 뛰어가 사람들을 밀치고 들어가 앉아버린다. 이런 모습은 짐 되는 노인이지 않을까. 추하게 늙은 거고. 반면 노약자석에도 앉지 않고, 젊은이들 불편하지 말라고 멀찌감치 서 있는 어르신이 있다. 이렇게 ‘곱게 나이 드는 것(웰에이징·well-aging)’이 제 목표다.”

 

 

하지만 노인들 상당수가 빈곤하다는 통계가 있다. 먹고살기 바쁜데 ‘곱다’는 수식어가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경제력이 없더라도 곱게 나이 드는 것은 가능하다. 노인석에 다리 꼬고 앉아서 남에게 소리 지르고…. 이런 건 경제력보다는 자신의 성품과 관련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젊은 놈이 어디서’라고 하기 전에 본인을 돌아보는 게 필요하다. 상대방을 헤아린다면, 노인들이 ‘틀딱’이라며 조롱받는 일도 없을 거다.”

 

 

오종남 지음 공감 펴냄 268쪽 1만5000원


 

5060 세대는 ‘낀 세대’라고 불린다.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데다 자립하지 못한 자식들까지 챙겨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다 보니 은퇴 이후를 챙기지 못해 걱정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분수에 맞게 살면 문제가 없다. 내가 은퇴 자금으로 70이 있다면 거기에 맞춰 설계하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 복지 체계에 따르면 노인 수당으로도 충분히 은퇴 이후를 버틸 수 있다. 그 이상은 다 욕심이다. 다시 말하지만, 행복은 분모(바라는 것)가 작을수록 커진다.”

 

 

역시 상황은 주어지는 것이니 그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행복해진다는 말씀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상황에 따라 순응만 하다 보면 사회가 정체되지 않을까.

 

“초지일관할 일이 있고 변해야 할 일이 있다. 삶의 기준·도덕·염치 이런 건 안 바꿔도 된다. 다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남을 지적할 필요는 없다. 만약 내 가치에 따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행동을 보이면 된다. 묵묵히 행동하다 보면 믿는 사람들은 따르지 않을까.”

 

 

오종남 교수는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 구절을 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 교수는 “남은 생은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경제관료로 살면서 국가로부터 ‘마일리지’를 너무 많이 받았다는 것. “항상 그 마일리지를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도움 줄 때의 행복은 무엇보다 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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