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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향한 스필버그의 헌사 《레디 플레이어 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환기시키는 작품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5(Thu) 15:00:00 | 1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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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가상현실과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를 아우르는 걸작 대중문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한 것들이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나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는 오락영화로 탄생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살아온 스필버그 감독이 대중문화에 보내는 헌사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완벽하게 환기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사랑하고 또한 영화가 그 누구보다 사랑한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결과물.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결국 ‘덕질’이 세상을, 또 영화를 구원할 거라는 사실을.

 

 

《아키라》부터 《샤이닝》까지…대중문화 열전

 

2045년, 사회는 암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두운 현실에서 도피해 가상현실 프로그램 오아시스(OASIS) 속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다.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의 유일한 즐거움은 오아시스에 접속해 ‘파시발’이라는 자신만의 캐릭터가 되어 가상현실을 즐기는 일이다.

 

유저들의 관심은 오아시스의 창시자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언스)가 죽기 전 남긴 유언에 쏠려 있다. 그는 오아시스에서 ‘이스터 에그(easter egg)’를 찾는 3개의 미션을 만들었고, 우승하는 사람에게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하기로 했다. 힌트는 할리데이가 사랑했던 과거의 대중문화와 그의 개인사. 몇 년간 누구도 풀지 못한 첫 미션을 웨이드가 풀자, 그는 단숨에 최고의 스타가 된다. 할리데이의 유산을 차지해 업계 1위가 되려는 야심으로 엄청난 물량공세를 앞세워 경쟁에 뛰어들었던 기업 IOI는 웨이드를 잡기 위해 야단이다. 오아시스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위협을 가하는 IOI에 맞서, 웨이드는 오아시스 속 친구들인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 H(리나 웨이스), 다이토(모리사키 윈), 쇼(필립 자오)와 힘을 모아 도전을 이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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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레디 플레이어 원》의 중요한 키워드는 이스터 에그다. 게임 등의 제작자가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숨겨 놓은 메시지 혹은 기능을 뜻한다. 전체 스토리의 흐름과는 상관없지만 유저들에게 발견의 재미를 선사하는 것으로, 영화에도 간혹 쓰이는 장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부가적인 재미에 불과했던 이스터 에그를 전면에 내세운다. 게다가 이것이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문화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어떤 향수를 자극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영화의 문이 열리면 그때부터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대중문화의 열전이 된다. 마치 어릴 적 우리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을 총망라한 종합선물세트가 되기로 작정한 모양새다. 스필버그가 존경해 마지않는다고 고백했던 브래드 버드 감독의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2000) 속 자이언트, 게임 ‘스트리트파이터’ 속 춘리와 사가트 그리고 류와 블랑카, 게임 ‘오버워치’의 트레이서와 둠피스트 등은 영화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버카루 반자이의 모험》(1984) 등 고전 영화가 언급되기도 한다. 스탠릭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1980)은 꽤 긴 시간 하나의 시퀀스로서 패러디되거나 인용된다. 헬로 키티와 DC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등 스쳐가는 캐릭터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스터 에그를 차지하기 위한 첫 번째 미션인 레이싱부터 대중문화 팬들 가슴에는 불이 당겨진다. 오토모 가쓰히로의 걸작 만화 《아키라》 속 주인공 가네다 쇼타로가 타는 빨간 바이크는 오아시스에서 아르테미스의 차지다. 웨이드가 분한 파시발의 차는 《빽 투 더 퓨처》(1985)의 드로리안. 그 옆으로 《매드맥스》(1979) 속 인터셉터, 《스피드 레이서》(60년대 일본 원작 만화)의 마하5 등이 빼곡하다. 이윽고 건담과 메가 고질라의 결투를 목격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영화다. 스필버그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프로듀서와 워너 브러더스가 3년간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고, 그 기간 동안 매주 전화가 울렸다”는 말을 통해 저작권 해결과 로열티 지불이 영화 제작의 핵심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스필버그가 대중문화를 사랑해 온 방식

 

설령 이 모든 것을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레디 플레이어 원》은 충분히 재미있다. 《E.T.》(1984), 《쥬라기 공원》(1993), 《인디아나 존스》(1982~) 시리즈 등을 선보인 엔터테인먼트 무비의 거장 스필버그가 만든 영화이므로. 그는 명실상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메가 히트작을 꾸준히 선보인 연출가인 동시에, 과거 진정한 의미의 시네마(cinema)가 아닌 흥행을 위해 감상주의로 범벅된 상품을 만든다는 비판을 달고 다니기도 했던 그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1993) 등을 통해 당대 할리우드가 이룰 수 있는 기술적 성취의 최전선에 도달하는 테크니션인 동시에, 점점 더 고전 영화의 문법에 다가서는 작가가 되었다. 《A.I.》(2001), 《우주전쟁》(2005) 등으로 진화하는 스필버그의 영화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동시에 그는 《쉰들러 리스트》(1994),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뮌헨》(2005), 《워 호스》(2011), 《링컨》(2012) 등 선 굵은 드라마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이제는 아무도 영화를 향한 스필버그의 진심을 폄하하거나 오인하지 않는다.

 

어니스트 클라인이 2011년 출간한 원작 소설은 수많은 대중문화를 향한 러브레터이기도 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와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을 향한 애정 고백이기도 하다. 클라인은 “스필버그의 작품을 보면서 자라지 않았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 밝힌 적이 있다. 그렉 모톨라가 《E.T.》를 오마주한 《황당한 외계인: 폴》(2011)을 만들었듯, JJ 에이브럼스가 《슈퍼 에이트》(2011)를 만들었듯 ‘스필버그 키즈’들이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스필버그는 자신이 대중문화를 사랑해 온 방식 그 자체를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도약하고 있다. 원작 소설에는 스필버그 영화 속 캐릭터도 훨씬 더 많이 등장하지만, 스필버그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쥬라기 공원》의 티렉스 정도만 부각시켰다. 자신 외에 수많은 이들이 만들어낸 과거의 대중문화를 부각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향수에만 머무르는 영화는 아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지금 시대에 영화를 보고 체험하는 것에 대한 최선의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영화는 마치 게임처럼 플레이어(관객)가 원하는 목적대로 즐기고 탐험해도 무방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누군가는 스필버그의 모험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평범한 주인공들의 성장 스토리로 받아들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게임과 영화의 캐릭터와 이스터 에그를 발견하는 재미에 푹 빠질 것이다. 실제로 상영관 내에서는 자신이 사랑했던 캐릭터들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의 탄식이 들려오며, 인터넷과 SNS에서는 영화에서 자신이 무엇을 발견했는지를 공유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스터 에그를 선사했는지는 이미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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