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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이고 상대적인 ‘82년생 김지영’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레드벨벳의 아이린, 《82년생 김지영》 읽었다고 밝히자…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6(Fri) 08:00:00 | 1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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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있었다. 기억은 그가 움베르토 에코 같다고 말해 주지만, 기억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여간 에코라고 추정되는 그 작가가 하루는 재미있는 실험을 한 일이 있다. 소설이 하도 잘 팔리니까, 제대로 읽히고는 있는지가 궁금해졌던 거다. 책의 중간쯤에 반송엽서를 끼워 제본을 해 출판사로 그 엽서를 보내오는 독자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극히 일부 독자만이 엽서를 보내왔다. 엽서가 있는 페이지까지 열어본 독자들 중 일부만이 엽서를 보냈다고 추정하더라도 턱없이 적은 비율이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그의 소설을 명성에 끌려 구입한 독자들의 대부분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고 짐작되는 것이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는 방법 같은 책도 있을 정도이니 구매가 곧 교양이 되는 것은 이탈리아나 우리나라나 특별히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읽지 않은 소설이 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되는 것을 넘어, 읽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읽은 사람들이 수난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경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다. 평양행이 결정된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라는 멤버가 이 책을 읽었다고 하자 대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을 찢고 ‘굿즈’를 불태우는 등 광란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일들이 방송을 탔다. 이유는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으니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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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해도 자꾸만 움베르토 에코 식의 의심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 소동을 벌인 남성들은 과연 이 책을 읽었을까? 《장미의 이름》만큼 난해한 소설은 아니니, 읽고 나니 페미니스트가 쉽게 될 것 같아 보이던가?

 

나는 또 왜, 읽지 않은 채로 작성되던 수많은 금서 목록과, 읽지 않고 작성된 것이 틀림없는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의 《소녀경》이 떠오를까. 논쟁을 하더라도, 소동을 벌이더라도 그 출발지점은 좀 깊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지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김지영을 읽다니 실망이야”라는 이상한 말을 해도 상관없는 나라라는 게 정말 안타깝다.

 

이와 유사한 블랙코미디가 생각난다. 1990년대 초반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사물함에 지니고 있던 사병이 제대를 얼마 앞두고 불온서적 소지죄로 영창에 갈 뻔한 일이 발생했다. 이때 그 사병을 조사하기 위해 한 헌병이 책을 읽었다. 그런 다음 그 헌병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가 불온서적이 아니라고 했다가 대신 영창엘 갔다. 괘씸죄에 걸렸을 것이다. 불온하다면 불온한 거지 왜 읽고 난리냐. 《개그콘서트》의 소재가 됨 직한 슬프고도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2년생 김지영》은 금서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정신세계에서 이 책은, 또는 이 책보다 진한 페미니즘 서적들은 자발적인 금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세상의 속도는 이 자발적 금치문학자들을 내버려 두고 신나게 달려갈 것이 틀림없지만, 나는 안타깝다. 절대적으로 말해 김지영은 소설 속의 오직 유일한 한 사람(허구)이지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보통의 여성들을 적당히 반영한 사람이기도 하다. 허구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여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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