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의 반란’ 일으킨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06 09:02
  • 호수 1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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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6시즌 연속 통합우승의 주역…코트에선 호랑이 감독, 코트 밖에선 ‘츤데레’

 

코치로 7회, 감독으로 6회 우승을 달성한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47). 2012년 우리은행 감독으로 선임된 후 ‘꼴찌의 반란’을 일으키며 6시즌 연속 통합우승의 위업을 이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혹독하게 훈련시킨 선수들한테 미안해했고, 그 훈련을 이겨내 우승을 일군 선수들에게 고마워했다. 자신은 감독으로서 큰 역할을 한 게 없다고 항상 머리를 숙이는 그다. 코트 위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호랑이 감독이지만, 코트 밖에서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츤데레’ 이미지다.

 

신한은행 코치 시절까지 합치면 12년 연속 통합우승이지만, 위성우 감독한테 2017~18 여자프로농구는 여느 때보다 우여곡절,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3월2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위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 시사저널 이종현


 

먼저 우승 소감부터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신한은행에서 코치를 하다 처음으로 감독을 맡았던 2012~13시즌이 가장 어려운 시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번 우승이 가장 힘들게 이룬 결과인 것 같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외국인 선수들이었다. 2명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은 시즌 개막 3주 전에 합류했고, 다른 한 명은 부상으로 대체 용병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FA(자유계약)를 통해 영입한 김정은이 개막 보름을 남겨 놓고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바람에 개막 2주 전 일본으로 치료를 보냈다가 개막 3일 전에 귀국했다. 개막 3주 전에 합류한 외국인 선수는 훈련한 지 이틀 만에 발목 통증을 호소했다.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어보니 인대가 다 끊어진 상태였다.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2명을 모두 교체하는 불운이 겹친 것이다. 신한은행과 개막전을 치르는데 급히 영입한 외국인 선수는 시차 적응도 못하고 경기에 투입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신한은행과의 개막전은 패했다. 당시 5연패(連覇)를 이룬 팀의 경기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실력을 보여줬다.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일 후 KB스타즈와의 홈 개막전이 펼쳐졌다. 홈 팬들이 보는 가운데 또 패했다. 그날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더라. 전주원 코치한테 ‘우승을 몇 차례 하다가 꼴찌한 팀도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딱 그 꼴이 될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전 코치한테 그런 내용을 물어봤겠나. 이기려고 달려들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듯했다. 다행히 다음 경기까지 4일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때부터 선수들과 강도 높은 훈련을 반복했다. 선수들도 앞의 2게임을 치른 후 무거운 현실을 절감한 듯했다.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했다. 나 또한 1라운드는 포기하고 훈련을 통해 2라운드를 대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2연패 후 5연승을 내달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은행의 저력이란 얘기가 나온 것이다. 외국인 선수도 겨우 손발을 맞춘 상황이었고 전력이 재정비되지 않았지만 우리은행은 우리은행이더라. 개막 2연패 후 5연승을, 1패 후 10연승을 이어갔다.

 

“포기하려 했던 1라운드에서 5연승을 하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졌다. 덕분에 29승6패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2위 KB스타즈가 27승8패를 기록한 터라 한두 경기에서 무너졌더라면 우승을 내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KB스타즈와 챔피언결정전을 치르게 됐는데, 이번에는 1차전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데스티니 윌리엄스가 무릎 부상으로 교체되는 불운이 겹쳤다. 누구든 뛸 수만 있다면 (외국인 선수를) 모셔 와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합류한 선수가 앰버 해리스였다. 유럽에 있던 그가 바로 입국했고 메디컬 테스트를 치렀는데, 직접 만나보니 체중이 100kg이 넘었다. 체력 관리가 전혀 안 된 상태였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하루에 냉탕과 온탕을 열두 번도 더 오갔던 것 같다. 박지수가 버티고 있는 KB스타즈를 상대하기가 버거웠지만 그래도 3연승으로 챔프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여러 차례 폭탄이 떨어졌는데 꾸역꾸역 잘 막아낸 것 같다. 마지막 운이 우리한테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4시즌 연속 꼴찌였다. 코치로 신한은행 6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끈 위 감독은 2012~13시즌 우리은행 사령탑에 오르며 우리은행의 체질 개선에 나섰고,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고의 가드 출신인 전주원 코치, 여고팀 지도 경험이 풍부한 박성배 코치와 함께 우리은행을 확 바꿔 놓았다. 일명 ‘지옥 훈련’을 소화하며 일부 선수들은 더 이상 농구를 못하겠다고 손을 들고 나갔지만, 위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결과, 위 감독은 우리은행 부임 첫해 정규 우승은 물론 챔피언결정전까지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그리고 이번 시즌까지 6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3월21일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신한은행 2017~18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KB스타즈에 승리해 통합우승을 차지한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과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여자팀을 지도할 거라 예상한 적이 있었나.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04년 울산 모비스에서 은퇴할 무렵 신한은행 이영주 감독의 부름을 받고 난생처음 여자팀에서 생활하게 됐다. 훈련 첫날부터 후회막심이었다. 선수들이 몸을 푸는데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영주 감독한테 크게 혼나기도 했다. 그해 7월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여자 선수들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귀국하자마자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선수들이 일본 선수들과의 연습경기에서 신경전을 벌이다 주먹질을 하고 상대편 선수의 광대뼈가 함몰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나로선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남자 농구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사표를 썼더라면 지금의 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남자 농구보다 여자 농구가 더 치열하다고 느낀 건가.

 

“아마 상대가 일본이라 경기가 과열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경기 중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건 흔치 않은 장면이다. 그때는 코치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라 여자 선수들의 심리 상태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영주 감독의 도움으로 코치 생활을 어렵게 이어갔다. 1년 정도 지나니까 익숙해져서인지 조금씩 편해지는 걸 느꼈다.”

 

 

코치와 감독이란 자리는 차이가 꽤 큰 편이다. 우리은행은 위성우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 연속 꼴찌팀이었다. 팀 성적이 좋지 못한 팀을 맡는 데 대한 부담은 없었나.

 

“신한은행 코치로 우리은행을 상대했을 때 갖고 있는 전력에 비해 성적이 잘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선수들을 잘 끌어낸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꼴찌팀이라 부담이 없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독하게 훈련시키며 선수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훈련이 힘들다고 그만두겠다는 선수가 나타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만약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여자팀 감독이란 자리의 어려움이 무엇인가.

 

“여자 선수들의 질투, 경쟁 등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어려움을 느낄 때는 10개를 줬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게 1개밖에 안 됐을 때다. 그럴 경우 심하게 상처도 받는다. 우승을 거듭하면서 일부 기자들은 내게 ‘명장’이란 과한 타이틀을 안겨주지만 솔직히 난 ‘명장’이 아닌 ‘복장(福將)’이다. 농구를 가르치는 건 거의 비슷비슷하다. 단, 얼마나 집중력 있게 가르치느냐, 얼마만큼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본다. 즉, 감독은 선수들과의 심리전에서 효율적인 움직임을 끌어내는 힘이 필요하다. 그 부분은 지금도 내공 부족을 느끼는 중이다.”

 

KB스타즈와의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작전 지시를 하는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 사진=연합뉴스


 

위성우 감독은 어느 날 방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너무 낯설게 다가왔다고 털어놓는다. 선수들이 자신을 향해 ‘피도 눈물도 없는 감독’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걸 느낀 채 방으로 들어와 거울을 마주한 상황이었다. 선수들한테 소리 지르고, 화를 내고, 감정을 노출하는 어리석은 감독 위성우의 모습이 보였다. 선수들을 다그치는 이유가 뭘까. 선수들을 위하는 게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러는 것인지 냉정하게 되돌아봤다고 한다. 

 

 

선수 시절 ‘식스맨’으로 활약했었다. 그래서인지 경기 흐름을 읽어내는 힘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무엇보다 우리은행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살뜰히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스맨 출신이 식스맨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의 프로 데뷔전이 어떠했는지 아나. 현대전자에 입단했다가 1년 후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는 안양 SBS스타즈로 트레이드되면서 프로 선수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당시 데뷔전 출전 시간이 10초였다. 주전 선수가 경기 종료 10초를 남겨놓고 5반칙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데뷔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 10초를 뛰기 위해 경기 시작 전부터 계속 몸을 만들었다. 내가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식스맨들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주전들은 굳이 내가 안 챙겨도 되지만 식스맨들은 감독의 말 한마디에 많은 영향을 받는 위치다. 그들이 잘 버텨줘야 팀이 건강하게 돌아간다. 그걸 알기 때문에 식스맨들한테 늘 관심을 두고 살펴보는 편이다.”

 

 

이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을 가리켜 ‘별 볼일 없는 선수’ 출신이지만 ‘별 볼일 있는 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농구는 연·고대 출신의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다. 위 감독은 단국대를 나왔고 식스맨으로 활약한 터라 자연스레 비주류에 포함됐다. 통합 6연패의 위업을 이룬 지금도 자신을 비주류라고 생각하나.

 

“농구계에선 비주류가 맞다. 그러나 여자팀에선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유명 선수 출신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팀은 주류 출신이 좀 더 빨리 성장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처럼 비주류들은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여자팀은 그런 끈이 없어도 상관없다. 내가 잘하면 된다. 그 점이 지도자 생활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 달성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우리은행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룬 우승인데 우리은행의 우승 독식으로 여자 농구가 재미없다고 폄하하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를 한 달이나 앞두고 우승을 확정 지었다. 35경기에서 25경기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24승1패로 역대 최소 경기 우승 확정). 농구 팬들의 눈에는 재미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 시즌은 KB스타즈와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타이틀 경쟁을 펼쳤다. 덕분에 재미있게 농구를 봤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감독 입장에선 이런 여론이 형성되면 걱정이 된다. 우리가 우승을 많이 해서 여자 농구가 재미없어지는 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독이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도 문제 아닌가. 난 내려가는 게 두렵지 않다. 준비를 많이 했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기지 못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냥 지켜보다가 당하는 일은 없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한 어떤 비난을 받아도 난 항상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이다.”

 

 

이건 ‘만약’이란 가정을 두고 하는 질문이다. KDB생명 위너스는 올 시즌 4승31패로 최하위 팀이다. 농구계에선 위성우 감독이 KDB생명을 맡는다면 우승 가능성이 있을지 궁금해한다.

 

“처음 우리은행과 계약할 때는 3년이었지만 스스로 1년 안에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었다. 내 인생을 건 셈이었다. 그러나 지금 KDB생명을 맡는다면 과연 이전 우리은행을 맡을 때처럼 패기와 열정이 존재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선수들이 나의 혹독한 훈련을 따라올 수 있을까 싶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만약 남자팀을 맡게 된다면, WKBL이 아닌 KBL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안 된다. 쉽지 않다. 남자팀은 압박감이 엄청나다. 선수들의 심리 상태, 기 싸움에 능해야 하는데 남자 선수들을 상대로 내가 그런 부분을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은행에서 이 정도의 성적을 낸 것은 선수들이 나에 대한 선입견을 두지 않고 따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팀은 분명 선입견이 존재할 것이다. 비주류 출신이란 사실과 여자팀 감독을 맡았다는 경력은 선수들에게 별다른 동기부여를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

 

 

혹시 남자팀으로부터 감독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있었다. 두세 번 정도 ‘러브콜’이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일단 내가 남자 농구에 관심이 없다. 선수들도 잘 모른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남자팀을 이끌 수 있겠나.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맞다.”

 

 

위성우 감독은 앞으로의 목표를 묻는 말에 “나한테는 미래가 없다. 오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대답했다.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어려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또한 진한 인생 공부를 했던 기회로 받아들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목표를 갖고 여자 농구에 뛰어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경험이 재산처럼 쌓였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선수들이 만들어준 통합 6연패란 타이틀을 소중히, 자랑스럽게 안고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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