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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율곡에게 국가의 미래를 묻다

조선조 철학 ‘판타스틱 4’ 조명한 김형찬 교수의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

조창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4(Sat) 16:01:01 | 1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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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공자·노자·묵자 등이 쟁론을 벌이고, 서양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활동하던 BC 400년 전후 수백 년을 ‘축의 시대(Axial age)’로 부른다. 조선시대에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시점을 꼽으라면 두 시기가 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고봉 기대승이 활동하던 1500년대와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등이 활동하던 1800년 전후다.

 

특히 이황과 이이는 조선 500년을 대표하는 사상가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1558년 스물셋의 청년 율곡이 쉰여덟 노학자 퇴계를 찾아갔다. 35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생각을 나눈다. 이른 봄비가 율곡을 사흘이나 붙들었고, 그 비가 눈으로 바뀌던 날 청년은 노학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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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최고의 철학 논쟁 지금도 유효하다

 

이들의 인연은 그동안 많이 회자됐는데, 이번에는 언론인 출신 동양철학자 김형찬 고려대 교수에 의해 다시 이야기된다. 김 교수가 출간한 《율곡이 묻고 퇴계가 답하다》는 두 사람의 철학적 교류는 물론이고 퇴계와 고봉의 8년 논쟁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율곡과 우계 성혼이 벌인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 등을 풀어낸다. 마지막에는 군왕의 정치와 신하의 정치를 풀어내 이런 철학 논쟁이 조선조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했다. 철학이 부재한 이 시기, 필자는 왜 두 사람을 끄집어냈을까. 이런 물음에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 사람의 시대, 조선은 당면한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들을 동원해 철학·이념을 스스로 생산하고, 그것을 가지고 대안을 찾아갔다. 지금 우리는 철학의 생산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 자신의 지적 토대를 버리고 수입에 의존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근본적으로 사고하며 문제를 설정하고 토론을 통해 스스로 대안을 찾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고 그 시행착오를 다시 이론적 논의에 적용하는 이론과 실천의 선순환 재생산 구조가 사실상 붕괴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힘까지 모두 상실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치·경제를 거의 맨땅에서 이만큼 세운 것에 비한다면, 우리의 지적 자산은 대단히 풍부하다.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 활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마련한다면 지식생산체계의 재건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해질 수 있다.”

 

이 책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은 조선시대 철학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정치를 왕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 유학자들이 맡아야 한다는 정도전의 사상을 중시한 유학자들은 수많은 사화와 당쟁을 만들었다. 이 책의 앞을 차지하는 퇴계와 율곡의 지적 교류는 어찌 보면 평화롭다. 나이 차를 넘어 만난 두 사람은 마음 깊이 상대를 존중한다. 이 교류는 퇴계가 사망한 1570년 겨울까지 13년간 이어지는데, 이때 그들이 벌이는 이론적 교류는 조선 유학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만났을 때는 조선이 건국 후 다섯 세대쯤 지나면서 혁명의 이상은 점차 잊혀갔고, 기득권층이 형성되면서 정치권력과 경제성과를 독점해 가던 무렵이었다. 바로 뒤에는 임진왜란이 기다리던 시기였다. 퇴계는 조선이 마주한 문제를 깊이 성찰했고, 국가의 철학과 이념을 재정립함으로써 그 과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 했다. 퇴계가 구축한 조선 유학의 기반 위에서, 율곡은 퇴계 시대에 밀려났던 사림(士林)의 복귀를 주도하며 지식인 관료 중심의 정치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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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성리학 수용을 넘어서

 

퇴계가 젊은 율곡을 만난 해인 1558년에는 고봉 기대승이 찾아왔고, 이듬해 1월 고봉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사단칠정 논쟁이 시작됐다. 이 논쟁은 이후 인심도심으로 이이와 성혼 간 논쟁으로 이어진다. 퇴계와 고봉은 26년의 나이 차를 넘어 서로 예의를 갖추면서도 치열하게 논박하며 장기간의 논쟁을 진행했고, 이 논쟁은 오랜 세월을 두고 지식인들에게 모범이 됐다. 그리고 퇴계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인 1572년, 우계 성혼이 이 문제에 관해 율곡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우계와 율곡 사이의 논쟁이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사단칠정 논쟁은 인심도심의 문제로 확산됐고 논의는 더 깊어졌다. 이 논쟁들은 중국 성리학의 수용 단계를 넘어 조선 유학이 독자적인 심화,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논쟁이었다.

 

결과적으로 퇴계의 학설은 성혼이 동의해 이어가고, 율곡은 선배인 고봉 기대승을 지지한다. 여기서 조선 초기 당쟁의 중심인 동인과 서인이 탄생한다. 퇴계는 동인의 영수가 되고, 율곡은 서인의 영수가 된다. 김형찬 교수에게 왜 지금 그 시대를 주목하는지를 물었다.

 

“건국 후 기득권이 형성돼 조선의 건국 정신을 잊고, 현상유지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국정 방향의 근본적 재설정 없이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 같은 상황에서 퇴계와 율곡이 조선의 방향을 다시 세웠다. 철학에서 정치에 이르는 이념과 제도의 재설정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퇴계와 율곡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런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 것일까? 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김 교수에게도 마음이 가는 학자가 있는지를 물었다. “율곡은 정말 총명하고 논리정연하다. 그의 글을 읽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복잡한 문제들을 나름의 관점에서 명쾌하게 정리해 내는 율곡에 비하면 퇴계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늘 깊이 고뇌하며 당대에 선비, 지식인이 갈 수 있는 극한까지 자신의 사고를 밀고 가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후학들과 함께 고뇌하는 퇴계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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