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만의 귀향’ 윤이상 반기는 통영 푸른 물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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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윤이상 행적 둘러싼 이념갈등 그림자는 여전

 

윤이상이라는 작곡가가 있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윤이상을 검색하면 ‘동백림사건’, 또는 ‘동베를린 공작단사건’ 따위의 연관검색어가 뜬다. 독일이 아직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돼 있었던 1967년, 우리나라 중앙정보부가 당시 독일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예술가·교수·유학생들이 간첩활동을 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윤이상도 여기에 연루됐던 예술가 중 한명이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추방돼, 사망할 때까지 독일인으로 살았다. 

 

2006년에서야 국가정보원의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동백림사건이 당시 대통령 선거에 대한 부정의혹을 무마시키기 위해 과장된 것이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의혹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듯하다. 윤이상은 외국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기구했던 인생사로 더 기억되는 불운아였다.

 

지난 3월20일, 윤이상이 한국에서 추방당한지 49년 만에 고향인 경남 통영으로 돌아왔다.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묻혔던 유해를 통영에 이장한 것이다. 사망한 지 이미 23년이나 지난 후였다.

 

통영 도천동에 위치한 윤이상기념공원. 2018 통영국제음악제를 맞아 윤이상 추모 사진전과 공연이 열리고 있다. © 사진=김지나 제공

 

 

 

 

윤이상 귀향 기념으로 분주한 통영

 

통영에서는 2002년부터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는데, 올해는 ‘귀향’이란 주제로 그가 사후에나마 고향에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했다. 음악제 기간 동안 도천동 ‘윤이상 기념공원’ 주변에는 파란 리본들이 여기저기 매달려 휘날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귀환을 의미하는 노란 리본을 본 따고, 윤이상이 그리워했던 통영의 푸른 바다색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본래 가을에 열리던 통영프린지 공연도 윤이상의 귀향을 함께 기념하기 위해 올해만 특별히 음악제기간으로 일정을 옮겼다. 윤이상은 수십 년 전 불명예스럽게 고국을 떠나야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윤이상 음악의 위대함과 그가 평생 견뎌내야 했던 향수의 안타까움에 주목하고 있다.

 

인물을 지역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흔한 전략이다. 고흐가 생애 마지막 시절을 보냈던 마을이라든지, 바그너가 오페라극장을 지은 마을이라든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동네가 유명한 인물의 사연이 투사되며 외국인 관광객까지 끌어들이는 명소가 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통영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문화예술인들과 인연이 많아 이야깃거리가 많은 도시다. 작가 유치환과 김춘수, 박경리의 고향이 통영이다. 백석이 통영 여인을 짝사랑해 남긴 시 ‘통영’은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고, 화가 이중섭도 통영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조각상과 작품들을 통영시내 곳곳에서 문득문득 마주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윤이상의 명성과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는 통영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스토리임에 틀림없는 듯 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도천동 일대는 여러 가지 문화예술 사업이 진행되면서 ‘도천음악마을’이라 불리고 있다. 윤이상의 어린 시절과 그의 업적들이 도천동 골목길마다 아기자기한 벽화로 장식돼 있다. 마을 골목길을 벽화로 꾸미는 일은 이제 너무 흔해서 식상하게 느껴지기 십상인데, 이곳은 여느 동네가 따라 하기 힘든 고유한 무기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윤이상이 어린 시절 학교를 오가며 지났다는 스토리는 평범한 한 골목길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고 있었다.

 

윤이상을 테마로 하는 도천음악마을의 골목길 풍경 © 사진=김지나 제공

 

 

 

 

도천동의 윤이상 기념공원은 윤이상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0년에 조성된 공원이자 전시관, 공연장이다. 작년에 내부 리모델링을 마친 전시관에서는 1917년부터 1995년까지 파란만장했던 윤이상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었다. 음악제를 맞아 실외공연장과 카페에서는 프린지 마켓과 공연이 열리며 축제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인근에는 독일에서 윤이상이 살던 집을 모델로 한 듯한 음악도서관 ‘베를린하우스’가 개장을 앞두고 있고, 그 옆에는 그가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전시해놓아 더 특별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작년 11월까지 도천테마파크라고 불렸다. 간첩 혐의를 받았던 윤이상의 이름 석 자는 한동안 금기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기획 때부터 고려했던 ‘윤이상 기념공원’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한다.

 

윤이상기념공원 인근에 조성된 윤이상음악도서관 '베를린하우스'. 그 옆으로 윤이상이 생전에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전시돼있다. © 사진=김지나 제공

 

 

 

 

극복해야 할 이념갈등과 낮은 대중성

 

음악제가 열리는 도남동의 통영국제음악당도 원래는 ‘윤이상 음악당’이란 이름으로 이야기되다, 2009년 돌연 명칭을 변경했다. 최근 윤이상 기념공원의 이름을 바꾸면서 통영국제음악당의 콘서트홀을 ‘윤이상 홀’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이것 역시 무산됐다. 통영이 국제음악제를 열고 음악도시임을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윤이상’인 것에 비해, 그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시원스레 드러나지 않는다. 가을에 열리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정도뿐이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윤이상의 행적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는다. 통영음악제 개막일이었던 지난 3월30일, 한쪽에서는 윤이상의 음악을 칭송하며 그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김일성·김정은의 사진과 함께 윤이상의 사진을 불태우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의 유해가 오는 것을 두고 거센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윤이상 기념공원 앞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파란 리본과 대조되며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통영이 선택한 ‘윤이상 카드’는 어쩌면 독이든 성배일 수 있다. 윤이상의 잘잘못을 떠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념갈등의 그림자가 너무 짙다. 현대음악이란 생소한 콘텐츠를 대중적으로 풀어나가는 일 또한 커다란 숙제다. 하지만 ‘윤이상’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우리나라의 작은 도시 통영에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언젠가 윤이상의 귀향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날, 이 딜레마의 해답은 밝혀질 수 있을 테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동안 윤이상기념공원 카페에서 열리는 프린지마켓.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들을 오르골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 사진=김지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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