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김기식 사태를 보면서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6 13:55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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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김기식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느낌이 하나 온다.

 

2010년대의 현대 한국인은 확실히 낯짝이 두꺼워졌다는 점에서 예전 한국인과는 다르구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필자가 기억하기에 1960~70년대만 해도 이 정도 사태면 장본인들이 이보다 일찍 사퇴했다. 사퇴의 변은 “물의를 빚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가 상투어였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4월10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물의(物議)를 빚는다는 게 무엇인가.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는 뜻이다. 죄가 있고 없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 때문에 세상이 소란해졌으니 죄송하다는 말이다. 법보다 도덕을 중시하는 ‘물의를 빚다’는 말은 뒤따르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에서 뒷받침됨을 알 수 있다. 이때만 해도 이 땅의 사람들은 법적 책임보다 도덕적 책임을 중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관대작들이 눈물을 머금고 그 좋은 자리에서 물러나곤 했다.

 

이제는 어떤가. 정반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존버’라는 말을 예사로 쓰는 시대가 됐으니 말이다. 요새 사람들은 잘못을 했더라도 웬만하면 버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면서.

 

문재인 정부의 청문회 대상 고위공직자 중 청문보고서가 채택 안 됐는데도 임명된 사람들의 경우를 보자. 잘잘못 여부를 떠나 이들의 상당수는 예전 같았으면 ‘물의를 빚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음 직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요즘은 사람들이 ‘존버정신’으로 버틴다. 버티는 사람이 많다 보니 살아남는 확률도 높아졌다. 버텨서 살아남으면 부귀와 영화를 한손에 쥔 채 세상이 좁다 하고 활개 치고 다닌다. 사회적 압력을 못 이겨 그만둔 사람들은 이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아 XX, 나도 좀 더 버텼어야 했는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윗물이 갈수록 탁해지고 있다는 데 있다. 학력(學歷)만 높아지고 인성(人性)은 낮아진 탓이다.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입니다’는 뜻의 일본어)’가 현대 한국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폐스러운 작자를 내세워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조소의 대상만 될 뿐이다. 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이런 상황일수록 ‘진흙 속의 연꽃’ 같은 인물을 필사적으로 발굴해 내세워야 한다. 결국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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