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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에 조작된 범인 15년간 억울한 옥살이

춘천 강간살해 사건, ‘경찰-검사-판사’ 한통속

정락인 객원 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8(Wed) 14:00:00 | 1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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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과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건에 대해 ‘재조사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검찰수사에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최근 ‘춘천 강간살해 사건’ 등 5건을 조사 대상으로 결정했다. 사건 처리에 있어서 절차상 문제나 인권침해, 검찰권 남용 등이 없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중 춘천 강간살해 사건은 대표적인 수사기관의 고문·증거조작 사건이다.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누가 왜 이 사건을 조작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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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뒤 살해된 아이, 조작된 범인

 

1972년 9월27일 오후 8시쯤, 춘천 역전파출소장의 딸인 소양초등학교 5학년 장아무개양(12)이 귀갓길에 실종된다. 학교에 갔던 딸이 돌아오지 않자 파출소장은 가족들과 함께 여기저기 찾아 나섰다. 경찰관과 주민들까지 수색에 나서 마을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이틀 후인 9월29일 오전 8시쯤 마을주민 이아무개씨(남·62)는 우두동 농촌진흥원 뒤 논두렁에서 목이 졸린 채 숨져 있는 장양의 알몸 시신을 발견했다. 몸에는 성폭행 흔적도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범인이 떨어뜨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노란색 몽당연필(15.8cm)과 머리빗을 증거물로 확보했다.

 

12살 초등학생, 그것도 파출소장의 딸이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채 발견되자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에 전 국민이 공분했고, 단번에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경찰도 검거 의지를 불태우고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범인의 윤곽은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9월30일 당시 김현옥 내무부 장관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건 진행상황을 보고했고, 박 대통령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말에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10일 안에 사건을 해결하지 않으면 관련자들을 문책하겠다”고 시한부 검거령을 내렸다. 당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왕조시대의 ‘어명’과 같은 독재정권 시절이다. 대통령이 검거시한을 못 박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경찰은 더욱 초조해졌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최종 시한이던 10월10일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범인이라고 밝힌 사람은 살해된 장양이 자주 찾던 동네 만화가게 주인 정원섭씨(39)였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 시한 하루 전인 10월9일 우두동 일대의 우범자와 폭력배, 변태성욕자 등 30여 명의 용의자를 연행해 조사했다. 이 중에는 정씨도 있었다. 정씨가 1970년부터 만화가게 점원으로 고용한 10대 소녀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해 왔다는 것이다. 아울러 만화가게 점원으로 있었던 김아무개양에게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빗과 연필이 정씨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정씨의 아들에게 연필을 보여주며 “이게 네 연필이 맞냐”고 물었다. 정씨의 아들은 “맞다”고 답했다. 연필은 결정적인 물증이 됐다. 경찰은 이것을 내세우며 정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정씨는 “사건 당일 피해자가 만화방에 온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소용없었다. 정씨에 대한 협박, 폭행, 고문이 이어졌다. 경찰은 정씨에게 폐에 물이 차고 뼈가 으스러지는 고문을 가했다. 결국 정씨는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검사에게 범행을 인정했다. 경찰은 정씨와 검사의 면담을 몰래 녹음한 뒤 검거시한인 10월10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정씨의 사건 당일 행적도 공개했다. 장양은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길에 “만화가게에 들러 텔레비전을 보고 가겠다”며 친구들과 헤어졌다. 정씨는 만화가게에 온 장양에게 “우리 집은 TV가 잘 나오지 않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보자”며 밖으로 유인했다. 정씨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우두동 농촌진흥원 뒤 논두렁이었다. 정씨는 그곳에서 장양을 강간한 뒤 들킬까 봐 목 졸라 살해하고 옷을 벗긴 후 도주했다는 것이다.

 

기소부터 재판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경찰은 정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검찰로 송치했고, 검찰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재판에 넘겼다. 같은 해 12월13일 춘천지법 제1호 법정에서 ‘살인 및 강간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정씨는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는 “경찰의 강요에 못 이겨 범행을 허위 자백했다”고 항변했다. 경찰이 범행시간으로 특정한 사건 당일 밤 8~9시 사이에는 “집에서 일한 목수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의 부인은 “경찰이 아들의 필통을 가져오라고 해서 갖다준 일이 있다”고 진술했다.

 

1973년 2월9일 열린 재판에는 장양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씨가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왔다. 이씨는 검찰의 반대심문에서 증거물로 제시한 연필과 빗이 사건 당시 현장에서 발견한 것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본 건 누런빛의 연필”이라고 증언했다가 다음 날 위증혐의로 구속됐다. 이씨는 구속 상태로 법정에 나가 “하늘색 연필을 봤다”고 말을 바꿨다. 1973년 3월30일 춘천지법 형사합의부는 정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정씨는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원심을 그대로 인용했고, 같은 해 11월 대법원은 정씨의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정씨 아버지는 아들이 구금된 지 1년도 안 돼 충격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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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39년 만의 무죄

 

정씨는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하며 모범수가 됐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그는 원래 목회를 꿈꾸던 신학대 졸업생이었다. 1960년 한신대를 졸업하고 스스로 벌어서 교인을 섬기는 ‘자비량 목회’를 꿈꾸며 서울 변두리의 농촌 교회 등에서 목회를 했다. 그러다 8살 아들을 뇌척수막염으로 잃은 뒤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가 작은 만화가게를 차렸다. 살해된 장양과 같은 동네였다. 정씨는 하루아침에 초등학생 강간살해범으로 몰렸다. 경찰, 검찰, 법원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성실하게 수감생활을 하던 정씨는 모범수로 선정돼 유기징역의 상한인 15년으로 감형됐다. 그리고 1987년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24일 광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수감된 지 15년 만이다.

 

그는 출소 다음 해인 1988년 남원에 살고 있는 누나 집으로 내려갔다. 1991년에는 강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정식 목사가 됐다. 6년 후인 1997년에는 그가 꿈꾸던 ‘자비량 목회’를 위해 ‘남원 충절교회’를 세웠다. 이제 남은 것은 살인범 누명을 벗고 명예를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곳곳에 걸림돌이 있었다. 1999년 11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다음 해 10월 ‘이유 없다’며 기각됐다. 대법원에 항고했으나 역시 기각됐다.

 

정씨는 한동안 좌절했다. 그러다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생기면서 희망이 생겼다. 그는 위원회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며 명예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은 정씨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비행기 태우기’ ‘통닭구이’ 등의 고문을 가했다. 정씨가 검찰 조사에서 “경찰에서 고문받고 허위 진술을 했다”고 말하면, 고문한 경찰이 다시 와서 또 협박했다. 증인들을 위협하고 협박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정씨의 만화가게에서 일하던 점원들을 감금하거나 가혹 행위를 함으로써 정씨가 이전에도 상습 성추행·성폭행을 했다는 허위 증언을 하도록 했다.

 

당시 피해자의 성기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음모가 나왔다. 혈액형 검사 결과 A형이었다. 이에 반해 정씨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경찰과 검찰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정씨를 짜맞추듯 범인으로 만들었다. 정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유일한 물증인 연필도 조작된 것이었다. 경찰은 정씨의 부인에게 아들 필통을 가져오라고 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연필 하나를 꺼내 사건 현장에서 나온 것처럼 조작했다. 정씨 아들이 자신의 연필이 맞다고 하자 “그럼 입에 한번 물어봐라” 하고 아들의 치아 자국을 내서 그걸 증거물로 만든 것이다. 경찰은 박 대통령의 ‘시한부 검거령’이 내려진 후 진범을 잡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범인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됐던 것이다. 검찰에 송치되고 법원에 기소되고도 짜인 각본대로 진행됐다. 목격자들이 법정에서 사실대로 진술하면 검사가 윽박지르며 다시 진술하도록 강요했다. 사실대로 말한 증인을 위증죄로 구속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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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범을 잡을 수 있는 기회도 사라져

 

위원회는 경찰이 고문과 가혹 행위를 하고 증거를 조작했다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사건 1심을 선고한 춘천지법에 재심을 권고했다. 2007년 11월 진실·화해위의 권고로 35년 만에 재심이 이뤄졌다. 춘천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증거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거나 믿을 수 없으므로 정씨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시 항소했다. 2009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도 무죄가 나왔다. 검찰이 다시 상고해 대법원까지 판결이 넘어가게 됐다. 대법원에서는 공판 날짜도 잡지 않고 2년이 넘게 판결을 미뤘다. 마침내 2011년 10월27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해 정씨는 39년 만에 강간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됐다. 2012년 정씨는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형사보상금으로 9억6000여만원을 받았다.

 

이후 정씨와 가족은 경찰이 저지른 고문·회유·협박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2013년 7월1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3부는 정씨와 그의 가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26억3752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발목을 잡았다. 2014년 1월23일 서울고법 민사8부에서는 소멸시효 기간이 10일 지났다며 정씨와 그 가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012년 말 대법원은 소멸시효 기간을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이라고 밝혔다. 정씨는 확정일로부터 6개월 10일 뒤 소송을 냈다. 1심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소멸시효가 2심 때 적용돼 결국 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정씨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번엔 고문 경찰과 기소검사, 재판장도 함께 제소했다. 2016년 11월2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는 “경찰관 3명과 그 유족들이 정 목사에게 23억88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국가와 검사, 1심 판사 등에 대한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과연 경찰만의 문제일까. 조작된 증거를 가지고 기소한 검사, 이를 알고도 무기징역을 내린 판사, 그리고 강압적으로 범인을 잡아오라며 사실상 조작을 묵인한 국가에는 손해배상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던 것이다. 법원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책임에 대해선 눈감으며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이 사건은 정의롭지 않은 공권력이 무고한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렇다고 피해자는 정원섭씨와 그 가족이 전부는 아니다. 경찰과 검찰이 정씨를 범인으로 조작하는 바람에 정작 사건의 진범은 영원히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 없게 됐다. 구천(九泉)을 떠돌고 있을 12살 아이의 억울함도 풀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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