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세계적인 리얼리티 쇼’를 꿈꾸다
  •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7 11:43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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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美 정상회담 ‘그랜드 바겐’ 전망 나와…‘선언’으로 끝날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적인 리얼리티 쇼를 꿈꾸고 있다.(President Trump dreams a global reality show.)”

 

올해 5월이나 6월초에 열릴 예정인 북·미 정상회담 전망에 관해 최근 워싱턴의 한 외교 전문가가 내놓은 답변이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묘사하는 리얼리티 쇼는 거의 무명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첫 도화선이 됐다. 2000년대 미 NBC방송의 유명한 리얼리티 쇼인 《어프렌티스》의 진행을 맡은 트럼프는 그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미국 국민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는 최초로 열릴 예정인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세계적인 리얼리티 쇼’로 준비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공개적으로 이러한 의지를 일부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이른바 초강경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취임한 첫날(4월9일),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우리는 북한과 회담을 마련했고, 그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exiting)”이라면서 “전 세계를 매우 흥미롭게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늘 써먹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We will see it!)”는 식의 표현에서 ‘매우 흥미로운’ 회담이 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언급으로 북·미 정상회담은 다시 추진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북한 선제공격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회담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볼턴 보좌관의 취임으로 비관적인 전망이 나돌던 때였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났을 때, 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사진=EPA 연합·청와대 제공(시사저널 합성이미지)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에겐 ‘회심의 카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규모의 대타협을 낳을 수 있는, 이른바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북·미 간 물밑 접촉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와 ‘북한체제 인정’을 맞바꾸는 합의가 성사됐다는 성급한 전망이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선언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체제 인정’ 차원에서 ‘북·미 수교’를 발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른바 ‘빅딜(Big Deal)’을 발표함으로써 회담의 성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 찬 속내라고 일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북 강경파인 볼턴 보좌관이 취임하는 등 이른바 ‘네오콘’들이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전제조건 등을 달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큰 변수는 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과거 이른바 ‘6자회담’ 등 실무회담을 통해 위로 올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북·미 최고 결정권자들이 큰 틀에서 합의를 하고 세부사항은 밑에서 뒷받침하는 이른바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세계사적인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에 근무한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트럼프 대통령은 세세한 본질적인 문제는 나중으로 돌리더라도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승리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게 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미국 국민들에게 점차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는 북한 문제만큼 가시적으로 성과를 내놓을 수 있는 ‘먹잇감’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정치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이란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은 물론 과거 포르노 배우와의 ‘섹스 스캔들’ 등 각종 스캔들에 휘몰리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도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이를 만회할 ‘회심의 카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시리아 사태’의 혼돈에서 보듯 그가 취임한 이후 국제관계에서 무언가 뚜렷하게 내놓을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더구나 올해 11월 실시될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북한’ 이슈가 풀리지 못하고 더 악화한다면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을 더욱 북·미 정상회담에 매달리게 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최근 30%대에 머물고 있던 지지율이 조금씩 반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임 정권이 해결하지 못했던 북한 문제를 해결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속내를 가지고 있다. 북한 역시 이러한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 북한 또한 미국으로부터 체제 인정과 보장을 확약받고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대타협’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兩 정상의 선언, ‘휴지조각’ 전락할 수도

 

일각에선 ‘그랜드 바겐’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든 ‘체제 인정과 북·미 수교’든 단지 양 정상의 선언(declaration)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중요시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 이행 과정은 만만치 않다. ‘톱다운’ 방식으로 추진되는 이행 과정이 과거와는 달리 가속도를 더해 한꺼번에 추진될 수도 있지만, 뿌리 깊은 북·미 관계의 칼날들을 일거에 제거하기는 어렵다. 그 과정에서 상호 이행에 따른 불신과 논쟁이 발생한다면 양 정상의 선언은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기대감과 함께 그러한 우려가 있다는 것도 잘 파악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번 회담은 과거 차관보 선에서 협의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양국 지도자가 직접 만나서 큰 틀의 담판을 짓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정상 간의 합의를 순탄히 이행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북·미 양국도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가 이행되지 못하고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또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한·미 간의 긴밀한 조율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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