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YB 록은 따라 불렀지만 레드벨벳 노래는 아직…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7 13:25
  • 호수 1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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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공연에서 북한 주민이 환호한 한국 노래, 한국 가수

 

4월1일 북한 평양의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의 전체 과정이 국내에 녹화중계됐다. 이 영상을 통해 우리 노래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 생생히 전해졌다. 어떤 한국 노래가 북한에서 인기 있는지가 확인된 것이다.

 

그동안에도 북한 주민들이 어떤 한국 노래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보도들은 많았다. 하지만 주로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이거나, 몇몇 탈북자의 제한된 경험에 기댄 내용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비교적 객관적인 근거라며 제시됐던 것이 탈북자 5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정도였다.

 

그에 비해 동평양대극장 공연은 관객이 무려 1500명이었다. 말하자면 표본 수가 1500명에 달하는 조사 결과인 것이다. 물론 그 관객이 평양의 일부 계층에 불과하기 때문에 북한 전체를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나왔던 그 어떤 정보보다도 대규모 데이터이기 때문에 객관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시점으로 봐도 그렇다. 그동안 나왔던 이야기들은 탈북자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과거의 이야기였다. 반면에 동평양대극장 공연에서는 지금 현재 시점의 북한 주민 선호도가 확인됐다.

 

4월1일 북한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에서 록그룹 YB(첫번째 사진)는 북한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걸그룹 레드벨벳(두번째 사진)의 공연에는 여전히 냉담한 반응을 보여 문화 차가 있음을 보여줬다. © 사진=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북한 관객의 함성이 터진 노래들

 

공연 초만 해도 북한 관객들은 경직된 모습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함성이 터져 나온 노래가 YB(윤도현 밴드)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였다. 처음부터 선정된 노래는 아니었는데 북한 주민이 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말을 윤도현이 듣고 선곡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반응이 뜨거웠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노래를 들으며 활짝 웃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 노래의 편곡에 대해 문의하기도 했다. 록 형식으로 편곡된 것이 새롭게 들린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와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남자는 다 그래’ 하는 대목에서 공감하는 듯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고 전했다. 환송 만찬 때 북측 가수들이 이 노래를 또 부를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이어 부른 YB의 《나는 나비》가 끝난 후에도 함성이 터졌다. 이 노래의 중간 지점에 특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YB의 멤버가 ‘워우워어~’ 하며 애드리브를 하고 관객이 따라 하도록 유도했는데, 처음엔 반응하지 않던 관객이 윤도현까지 나서자 결국 따라 했다. 애드리브를 주거니 받거니 함께하는 모습은 록밴드 공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퍼포먼스다. 서구에선 익숙하지만 록 문화가 없는 북한에선 낯선 풍경이다. 그런데도 북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건 윤도현의 관록이라고 할 수 있다. 윤도현은 《나는 가수다》에서 인기를 끌었을 정도로 무대 장악력이 탁월하고, 평범한 한국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인 록음악을 한다. 이번 평양공연으로 윤도현 정도의 록음악은 북한에 퍼질 수도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물론 그보다 더 수위가 높은 헤비메탈이나 펑크록 등은 아직 어려울 것이다.

 

최진희가 《뒤늦은 후회》를 부른 후에도 함성이 터졌다. 현이와 덕이가 부른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다. 최진희도 원래 몰랐던 노래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니 영문도 모르고 연습해서 불렀다. 그런데 기존에 북한 히트곡으로 알려졌던 《사랑의 미로》보다 《뒤늦은 후회》에 더 큰 호응이 나타났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노래를 불러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최진희에게 하기도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용희가 생전에 이 노래를 애청했다는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북한에서의 인기 덕분에 한국에서도 이 노래가 재발견되면서 최신 음원 차트에까지 진입했다. 북한 때문에 역주행 인기곡이 된 최초 사례다.

 

이선희의 《J에게》 때는 함성이 무려 두 번이나 터졌다. 노래를 부르기 전과 부른 후에 각각 함성이 터진 것이다. 이날 공연된 남측 노래 중 함성이 두 번 터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이 노래의 특별한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공연 후에 북한 중앙방송이 3분30초 분량으로 공연영상을 전할 때도 다른 가수들은 소개하지 않거나 노래를 무음으로 처리했고 레드벨벳은 통편집한 데 반해 이선희의 《J에게》만은 가수와 노래를 모두 소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에도 함성이 터졌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은 시작할 때 함성이 터졌다. 부르기도 전부터 함성이 터진 남측 노래는 《J에게》와 이 노래 두 곡이다. 환송 만찬 때 북측 가수들이 《그 겨울의 찻집》을 또 불렀고, 현송월 단장이 일어나 조용필과 함께 이 노래를 또 한 번 불렀다. 리설주가 “우리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도 남조선에 가서 감기에 걸렸는데, 이번에는 조용필 선생이 감기에 걸리셔서 안타깝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하시냐”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북한에는 스타에게 사인을 받는 문화가 없는데, 현송월 단장은 조용필에게 사인도 받았다. 조용필의 확고한 위상이 드러난다.

 

종합하면 방북 가수 중 YB와 최진희·이선희·조용필 등 4팀의 가수가 부른 총 6곡의 노래에 함성이 터졌다. 서현이 노래할 때도 두 번의 함성이 터졌지만 남한 곡이 아닌 북한 노래 《푸른 버드나무》였다.

 

 

아이돌에는 여전히 냉담한 북한 주민

 

함성이 터지진 않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특별히 관심을 보인 가수는 백지영이었다. ‘노래가 신곡이냐, 남쪽에서 어느 정도의 가수냐’ 등을 물었다. 공연 후 중국을 통해 전체 공연 영상이 USB메모리에 담겨 북한에 보급됐는데, 이 영상을 통해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의 인기가 올라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북측 가수들은 고운 소리만 내기 때문에, 백지영의 애끓는 창법이 반향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공연 방영 직후 국내에서도 각 노래 공연 동영상 중 《잊지 말아요》가 조회 수 1위를 차지했다.

 

기대를 모았던 걸그룹 레드벨벳에는 냉담한 반응이었다. USB메모리로 공연을 본 북한 주민들도 레드벨벳 음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한다. 핑클·젝스키스·베이비복스·신화 등 아이돌의 방북 공연에 북한 관객은 언제나 무반응이었다. 아이돌 음악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흥하고는 결이 다르다. 많이 듣고 훈련해야 아이돌 음악을 듣는 귀가 열린다.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평창올림픽 때 북측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가 레드벨벳 노래를 흥얼거린 것으로 보아 북한의 일부 젊은 층은 아이돌 노래에 익숙해진 것 같지만, 북한 사회 전체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 걸그룹보다 보이그룹의 노래가 더 이질적이기 때문에 보이그룹까지 받아들여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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