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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잠재적 가해자 탈출하기 ②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9(Thu) 14:43:25 | 1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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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이 있었다. ‘시’라고 불리긴 했는데, 이 글을 시라고 인정해야 할지 자못 고민스러운 그 ‘시’는 고인이 된 박남철의 《첫사랑》이라는 작품이다. 첫사랑의 대상이던 새침한 여고생이 자신에게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을 때 그 소녀를 죽도록 때렸다는 내용인데, 많은 이들이 환상이 깨어진 아픔을 폭력으로밖에 표현 못하는 사춘기 소년의 감성을 잘 표현했다는 식의 고평을 하는 것을 보았다. 당최 첫사랑 소년의 감성이 왜 폭력적이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십분 양보해 그런 평가를 인정해 준다 치더라도, 박남철은 자신이 소녀를 때렸다고 말하지 않고 “그날 밤 계집애는 얻어맞았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 표현은 대체로 무시되었다. 자기가 때렸는데도 상대가 얻어맞았다고 쓰는 도착증. 어떻게 평가를 하더라도 이 대목이 도착적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도착적 사고방식은 안타깝게도 특별하지 않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다시피, 피해자 이름을 붙인 사건의 목록은 얼마나 긴가. 강간과 성추행 같은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언제나 여성이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남자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성폭력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 많은 일이 달라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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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자아이들을 잘 가르치자고 페이스북에 썼다가 나는 대단한 항의를 받았다. 왜 모든 남자아이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느냐는 것이다.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게끔 교육하는 일이 곧 그 교육 대상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도둑질과 살인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모든 인간을 살인강도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을 터인데. 이런 주장이 말 그대로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희한하게도 항의자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의 집약인 한 줄 문장은, “맞을 짓을 하니까 맞았다”로 요약되기 쉽다. 가해자의 존재는 피해자가 당한 피해에 대한 도착적 설명 속에 파묻혀버린다. 피해자가 가해를 유발해 가해한 것이므로 가해자는 일종의 피해자라는 논리다. 일종의 “주어가 없다” 상황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미성년자 성매매를 했던 남성들조차 이런 식의 도착된 논리를 전개한다.

 

성폭력 피해 경험을 소설로 펴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다크 챕터》에는 가해자로 길러지는 15세 소년이 등장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방치된 채 강간 문화에 물드는 소년이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군대라고 하는 특수한 집단문화가 가세한다. 소년과 청년의 문화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또 성폭력적인가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변화시킬 시기가 이미 늦고 있다.

 

‘#미투’로 통칭되는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면서 제도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당장 드러난 피해자를 돕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해자로 길러지지 않게 하는 대책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일부가 보여주는 ‘피해자 서사’는 도덕주의의 뒤집어진 양태다. 피해자, 그것도 아무런 죄가 없는 무고한 희생자.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분개하는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의 무고함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분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억울한가? 그렇다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늘 잠재돼 있는 이 잘못된 구조를 함께 혁파하자. ‘가해하지 않기’ 교육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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