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어린이 통학버스 규격이 아이들 체격에 맞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아이들의 앉은키가 커서 목이 좌석 위로 올라오는 점이 우려를 낳고 있다. 버스가 급정거할 때 목이 뒤로 꺾일 수 있어서다. 반면 미국은 목이 다치지 않도록 좌석 높이를 규정하고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미취학 아동을 태우기 위해 만들어진 스쿨버스의 제작 기준을 관리한다. 일명 ‘미국 연방자동차 안전기준(FMVSS)’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반드시 이에 맞춰 차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따르면, 현재 스쿨버스 좌석의 높이는 최소 24인치로 정해져 있다. 약 61cm다.
‘좌석 높이 61cm’는 미국 남성 아이의 신체 수치 중앙값을 토대로 산출됐다. 이 정도 높이의 좌석이면 평균 앉은키가 67cm인 한국 7살짜리 남녀 아이가 앉아도 머리를 받칠 수 있다. 과거에는 그 기준이 20인치(51cm)였다. 기준을 높인 배경에 대해 NHTSA는 “(새 기준이) 사망과 중상률을 극명하게 줄여준다는 것이 결과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美 안전 위해 어린이 버스 좌석높이 '61cm' 규정
국내 어린이 통학버스는 그러나 머리 부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시사저널은 4월5일 39인승 어린이 버스로 개조된 ‘현대 카운티’에 들어가 구조를 살펴봤다. 당시 한 남자아이는 앉은키가 커서 어깨부터 좌석 위로 올라와있었다. 그런데 버스의 모든 좌석엔 머리받침대가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국공립유치원의 한 원장은 “7살짜리 아이는 대부분 목이 올라온다”고 했다. 해당 내용은 4월13일 <어린이에게 더 위험한 ‘어린이 통학버스’>란 제목으로 기사화됐다.
현행법상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학원 등 시설은 9인승 이상 어린이 통학버스를 운영해야 한다. 이 버스는 국토교통부령에 따라 노란색 외관, 경광등‧안전띠 장착 등 10여 가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좌석 규격도 정해져있다. 그런데 정작 좌석 높이에 대한 기준은 없다.
한국은 좌석높이 기준 아예 없어
미국은 좌석 규격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기준을 정해놓았다. 일례로 미국 교통국의 ‘스쿨버스 안전벨트 최종규칙’ 문건은 그 분량만 150쪽에 달한다. 여기엔 좌석 높이를 포함해 안전벨트 장착 위치, 수용가능 중량, 등받이 각도 등이 모두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첨당자동차기술과 관계자는 4월6일 “어린이 버스 안전기준은 유엔 자동차 국제기준인 ‘WP29’에 따른 것”이라며 “한국만의 기준을 특별히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그런데 WP29는 미국도 따르는 기준이다. 양국이 같은 기준을 참고하면서, 머리 안전에 관해선 다른 잣대를 적용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란 비판이 나온다.
국토부, “한국만의 기준 만들기 어렵다”
미국 스쿨버스의 까다로운 안전 기준은 수치로 그 효과를 보여준다. NHTSA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사망한 스쿨버스 탑승자는 총 64명이다. 이는 같은 기간 스쿨버스 관련 사고로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1313명)의 5% 미만이다. 미국 정책 잡지 가버닝은 2016년 2월 “심각한 스쿨버스 사고는 정말, 매우 드물다”고 보도했다.
한편 우리나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어린이 버스로 인해 다치거나 죽은 13세 미만 아이는 총 7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38명은 버스 안에서 사고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