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功은 트럼프에게, 대신 한반도 평화를 얻어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 10:39
  • 호수 148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리 보는 4·27 남북 정상회담] ‘협상 전문가’ 김홍국 교수·박상기 대표 “트럼프는 지독한 비즈니스 협상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치인이기 전에 비즈니스맨이다. 때문에 정치인 관점에서 트럼프를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 전문가인 김홍국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겸임교수와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가 내린 공통된 진단이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김 교수는 학부는 건축학, 석사는 경영학, 박사는 정치학을 전공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그런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다. 협상학 분야 활동도 두드러져 현재 한국협상학회 연구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에 비해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는 실무형 전문가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메디슨)에서 MBA(경영학석사)와 협상학 과정을 마친 박 대표는 귀국 후 삼성·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을 돌며 협상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 대표 역시 한국협상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이번 대담을 기획한 것은 ‘정치인 트럼프’의 또 다른 진면목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협상 스타일로 볼 때, 지금이 한반도 평화를 논의할 적기”라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 특히 박 대표는 “자기 이익을 다른 사람하고 나누고 싶지 않은 트럼프의 성격을 감안할 때 ‘너무 좋아서 버릴 수 없다(Too Good To Loose)’라는 협상의 원칙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담은 4월5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본사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 시사저널 최준필


 

- 비즈니스맨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의 협상전략에 대해 평가해 달라.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김 교수): 트럼프의 협상 전략은 힘을 기반으로 미국의 국익을 관철시키는 전통적인 외교 방식과 다르다. 강한 톤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이익을 만들어내는 ‘미치광이 전략’을 펴고 있는데 지금까지 미국이 사용했던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박 대표): 트럼프의 협상은 초강대국의 입지를 활용한 ‘초(超)갑질 외교협상’이다. 트럼프의 협상 원칙 중 하나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가라’는 것이다. 대신 자신의 강점을 부각시켜 협상 과정에서 이익을 키운다. 트럼프가 한 말 중 인상적인 것이 ‘진실이 가득한 과장(Truth full Hyperbole)’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교묘한 사기’다.

 

김 교수: 트럼프의 협상전략과 관련해 한마디 더 첨언한다면 1971년 쓴 《거래의 기술(Art of Deal)》에 나오는 ‘싱크 빅(Think Big)’이다. 직역하면 ‘크게 생각하라. 담대하게 생각하라’는 거다.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 트럼프는 ‘외교적으로 밟아야 할 것들을 일일이 따지면 일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듯싶다. 기만 전술까지 넣으면서 담대하게 판을 정리해 나가는 게 트럼프의 장기다.

 

 

- 전임 공화당 정권인 부시 행정부와 비교하면 어떤가.

 

박 대표: 취임 후 트럼프의 협상 기법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 스노우잡, 직역하면 ‘파상공세’다. 그러면서 충분히 검토하기도 전에 두 번째 카드를 내놓는데 영어로 ‘테이크 잇 오어 리브 잇(Take it or leave it)’이다. ‘내말을 듣든지 아니면 떠나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할 거다. 그때 세 번째 카드가 나오는데, 바이스 테크닉(Vise Technic)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알게 뭐냐.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이건 외교협상이 아니다.

 

김 교수: 부시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한 나라이기에 그런 가치에서 상대를 응징하는 게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방향이다. 전쟁도 그래서 불사했다. 반면 트럼프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상대를 압박하면서도 뭔가 이익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현안을 안보 문제와 연결 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교수: 과거 미국 정부는 동맹국의 안보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의 약점을 건드리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아베 일본 총리가 그렇게 양보했는데도 최근 ‘재팬 패싱’을 하고 있는 걸 봐라.

 

박 대표: 북한 문제는 동북아 힘의 균형과 관련이 있다. 북한은 정치학 용어로 스윙 보터(부동층)다. 북한은 중국, 우리는 미국과 군사동맹 관계를 이어가면서 동북아 균형이 맞춰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이 관계가 개선돼 미국과 가까워지면 힘의 균형이 깨진다. 그러니 중국이 급해진 거다.  

 

 

- 우리 정부는 이런 위기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나.

 

박 대표: 우리에겐 지금이 기회다. 보통 협상에서 ‘내가 뭘 해 줄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단 ‘상대가 어디에 더 관심이 있느냐’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우리는 북한에도 미국의 의사를 전달하고 중국에도 간략하게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면 된다.

 

김 교수: 협상에선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는 옵션을 개발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서로의 입장이 아니라 이익을 봐야 한다. 과거 미국 정부는 굉장히 절차를 중요시했는데 지금 트럼프는 그걸 과감하게 생략한다. 위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회다.

 

 

- 트럼프의 이익이란 무엇일까.

 

김 교수: 한국을 압박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북·미 협상이 순조롭게 타결되면 트럼프는 역대 미국 행정부가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이건 엄청난 업적이다. 국제 정치학계에서 요사이 ‘트럼프가 노벨상을 타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는가. 만약 이것이 성공하면 미국은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게 된다.

 

박 대표: CNN이 3월말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존 볼턴(현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을 후임으로 지명하기 전 수차례 만나 맥매스터 보좌관(전임 보좌관) 경질 문제를 논의했으며 볼턴은 만약 자신이 임명된다면 ‘어떤 전쟁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다.

 

김 교수: 볼턴은 현재 자신의 발톱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언제든지 발톱을 드러낼 수 있는 이들이 바로 트럼프와 볼턴이다. 지금 트럼프는 국무부나 국방부 등의 관료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려 한다. 북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신 강한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 전략이다. 극단적으로 위기를 끌어올린 다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 역시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관건은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다.

 

박 대표: 김정은은 미국이 원하는 것처럼 ‘리비아식’ 핵 폐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리비아에서 완전한 핵 폐기가 진행된 뒤 어떤 일이 일어났나. 카다피가 축출됐다. 김정은은 이 점을 너무 잘 안다. 표면적으론 비핵화를 선언할 것이지만 테이블 아래선 이면 합의를 할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 비핵화와 경제제재 완화 가운데서 북·미가 절충점을 찾을 것이다. 다만 미국은 과거 북한이 합의를 깬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전력을 유지하고 싶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보상을 받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 한·미, 북·중 관계가 예전만큼 끈끈해 보이지 않는다.

 

김 교수: 완벽하게 해체되는 구조는 아니다. 다만 과거처럼 전폭적인 신뢰가 흐르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협상학에선 ‘양측 간 서로 갈등하고 있을 땐 중재가가 황금의 다리를 놓으라’는 말이 있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이 황금의 다리다.

 

박 대표: 우리 국민은 외교안보 문제와 경제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북·미가 협상 말기에 ‘패키지 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중국도 받아들을 만한 합의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통일 후 우리 지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 북한뿐만 아니라 반대로 미국의 대북 의제에도 적극 개입해야 한다. 트럼프의 변호사였던 조지 로스가 트럼프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더라. 담대한 비전과 효율적 체계가 트럼프의 장점이라고. 국가 간 협상에 있어선 자국민을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좌우 진영으로 분열된다면 그건 실제 협정을 맺어놓고도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4월5일 서울 용산구 시사저널 회의실에서 본지 송창섭 기자와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왼쪽), 김홍국 경기대 겸임교수(오른쪽)가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북한의 협상 전략은 어떻게 봐야 하나.

 

김 교수: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가 있다. 지금 김정은은 정상 외교를 추구한다. 각종 회담에 부인 리설주를 데리고 나오는 걸 봐라. 실무 접촉을 할 때도 과거 북한은 엄청나게 많은 부분에 대해 트집을 잡았는데 이번엔 그런 게 전혀 없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실용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 대표: 지금 북·미 협상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종전 선언과 같은 급격한 변화도 예상된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트럼프에게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을 컨트롤할 테니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얻으라’고 제안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외교, 경제, 군사적 영향력은 한층 강화된다.

 

 

-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구체적인 합의안이 나올까.

 

박 대표: 북한 핵시설에 대한 24시간 감시, 작동 전 상태로 되돌리는 단계적 비핵화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핵시설의 파괴와 같은 퍼포먼스도 나올 것이다. 근본적인 비핵화를 선언하지만 핵 폐기 단계는 실무자 협상으로 넘어갈 것 같다.

 

김 교수: 비핵화 선언이 이뤄질 것에 대해선 공감한다. 이미 정의용 대북 특사를 통해 이를 밝힌 바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감시 체제로 들어갈 것이다. 단계적 비핵화에 대해서는 미국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과 평화협정 선언까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김 교수: 어쩌면 북·미 정상회담에서 수교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의 스타일로 볼 때 큰 진전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박 대표: 트럼프의 협상전략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실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트럼프는 자기 이익에 대한 욕심이 강하다. 자기 이익을 남하고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 과시욕이 강하다. 협상에 있어서 ‘너무 좋아서 버릴 수 없다’는 명제를 잘 활용해야 한다.

 

김 교수: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부시 정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한·미 정부는 정체성이 잘 맞지 않았다. 지금처럼 이익을 내기 위해 실용적인 마인드를 갖춘 지도자들이 만나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남·북·미 세 정상이 이익을 나눌 게 많다. 

 

 

 

[미리 보는 4·27 남북 정상회담 연관기사]

▶ “3차 남북 정상회담서 한반도 평화선언 나온다”

​▶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 김정은 압박 위한 고단수?

​▶ ​“모든 功은 트럼프에게, 대신 한반도 평화를 얻어라”

​▶ ​‘北 최장기 억류’ 케네스 배 선교사 인터뷰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