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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유연하면서도 강력한 ‘못 말리는 일본 아줌마들’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배용준과 하뉴 유즈루의 인간적인 매력에 빠진 중년여성들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3(Mon) 17:01:00 |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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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화창한 날 오후에 도호쿠(東北)대학에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박은하 외교부 공공외교대사가 오노 히데오(大野英男) 도호쿠대학 총장 면담을 신청해 센다이 총영사를 비롯한 외교부 소속 임직원과 대학교수 등 총 8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재직 중인 한국인 교수로 자리를 함께했고 어쩌다 보니 총장의 통역도 맡게 됐습니다. 대학의 국제교류과에서 한국 외교부 손님을 맞이하는 데 좋을 거라며 시사저널 지면에 연재한 저의 기사 일부를 인쇄해 자료 맨 앞에 끼우는 섬세한 준비가 돋보이는 회담이었습니다. 박은하 대사와 방문단에 대한 소개를 마친 후 총장의 환영 인사가 있었습니다.

 

“한국 외교부 대사가 우리 대학을 방문해 주신 건 처음입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4월22일 전후로 센다이 호텔들은 만실에 가깝습니다. 특히 고급 호텔은 오래전부터 예약 완료 상태이지요.”

 

통역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웬 호텔 이야기?’, 머릿속에서 순간 당혹감마저 들었지요.

 

“평창올림픽에서 우승한 하뉴 유즈루(羽生結弦) 선수가 센다이 출신으로 금메달 퍼레이드를 하거든요. 전국에서 여성 팬들이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몰려와서 그렇습니다.”

 

‘아! 그 이야기였구나.’ 저는 속으로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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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년여성들의 ‘공공연한 일탈’

 

한류가 드센 기운으로 일본 열도를 덮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내각 시절, 미국을 방문한 고이즈미 총리의 이야기입니다. 북한 납북자 문제로 협의를 해야 하는 자리에 온 고이즈미 총리가 백악관 국가안보이사회 한국·일본 담당 보좌관이 한국계임을 알자 배용준의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여성들이 얼마나 배용준의 매력에 빠져 있는지, 스스로도 드라마 《겨울연가》의 최지우 팬임을 밝히면서 정작 협의해야 할 이야기를 뒷전으로 하고 금쪽같은 시간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인상에 남았다고 합니다. 배용준이나 하뉴 유즈루 팬들의 행동들이 국제적인 화젯거리가 될 정도로 사회현상이 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4월22일 퍼레이드로 센다이 주변은 일주일 전부터 후끈거립니다. 10년 전 배용준 팬으로 제 수업 수강생 중 가장 연장자이며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마 시게코(嶋茂子·81)씨에게 얼마 전 취재를 위해 연락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하뉴 유즈루 선수의 열렬한 팬이 돼 이번 평창올림픽 경기는 물론 올림픽 1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치러진 4대륙 대회를 관전했다고 합니다. 하뉴 선수가 출전하는 일본 국내 대회나 아이스쇼 역시 빠짐없이 보러 간다는 것입니다. 80세를 넘긴 시마씨가 이토록 열렬한 팬이 돼 움직인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4년 전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하뉴 선수의 인터뷰를 보고 20세도 안 된 어린 선수의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 팬이 됐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누군가의 팬이 되는 배경에는 스타의 재능과 인간적인 매력이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돼 버린 이 두 사람의 팬들은 특히 인간적인 성숙함을 강조했습니다. 배용준 팬들은 그의 인간적인 됨됨이를 느낄 수 있는 행위나 맥락 등을 들어 그를 흠모했습니다. 팬을 ‘가족’이라 표현한 배용준의 말은 중년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남을 정도였습니다. 하뉴 선수의 팬을 소중히 여기는 언동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그러한 모습은 미디어를 통해 회자됩니다.

 

그런 배경에서 팬이 된 여성들이 얼마나 열성인지를 시사저널 1481호와 1483호에서 전했습니다. 오노 총장이나 고이즈미 총리가 공식적인 석상에서 부드러운 분위기 도입의 소재로 삼고 있었지만, 그 지나침에 대해서도 어찌할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를 내포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는 ‘공공연한 일탈’이라고 표현을 했지요.

 

한류가 한창일 때 많은 분석이 있었습니다. 굳이 지면상 열거하지 않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일본의 중년 이상 여성들의 현실을 심도 있게 다뤘다고 봅니다. 저는 팬이 된 이유보다 팬들이 뭉쳐가는 과정과 팬이 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더 흥미롭고 일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시마씨 집에 퍼레이드를 며칠 앞둔 4월17일부터 교토(京都), 지바(千葉), 가나가와(神奈川)에서 하뉴 선수 팬 친구들이 왔다고 합니다. 모두 경기를 보러 가거나 퍼레이드 중에 만난 친구들로 4년 넘게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퍼레이드에 앞서 하뉴 선수가 태어나고 자란 센다이를 느끼면서 관광하기 위해 미리 온 것입니다. 그의 평창올림픽 우승을 기원하기 위해 찾은 신사(神社),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발상지, 어린 시절 트레이닝을 하던 공원, 그리고 그가 다녔던 아이스링크 등을 순례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시마씨가 모든 준비를 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아이스쇼나 대회가 있을 때는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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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작은 알갱이들 스타 중심으로 모여

 

시마씨 친구들만이 아니라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미리 센다이에 온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혼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혹여 혼자 왔다 해도 여행 중에 친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왜 그곳을 찾았는지 모두 말을 안 해도 알게 되고 경계하지 않고 소통하게 됩니다. 배용준 팬들은 모두 모르는 사이였지만 영화관을 출근하듯 다니면서 영화를 보러 온 사람끼리 친구가 됐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오랜 시간 함께 사귄 친구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공동체 의식까지 생깁니다. 즉 처음부터 ‘이곳에 모여라!’ 하는 안내도 없고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배용준 팬’ ‘하뉴 팬’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 거대한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의 힘이 어느 정도 센지 아무도 가늠하지 못하지만 배용준이 공식 방문하는 행사나 하뉴 선수의 시합에 구름같이 모이는 인파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됩니다. 평창올림픽에 모인 인파는 물론 개인도 있지만 소그룹을 형성해 모인 팬들이 많았습니다. 소그룹은 각자 역할을 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소그룹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말을 알면 통역과 번역을 하고, 정보를 알면 그 정보를 제공하고, 팬들이 좋아할 만한 영상을 편집할 능력이 있으면 그걸 제작해 배포하고, 그리고 더 돈독한 사이가 되면 각자 사는 곳에서 나오는 특산물을 주고받으며 공동체 의식을 굳혀갑니다.

 

‘배용준 팬’ ‘하뉴 팬’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무수히 작은 알갱이들이 스타를 중심으로 모여 때로는 유연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구름 지어 있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집단으로 뭉쳐 보인다 해도 밖에서 전체를 통솔하기 어렵고, 흩어진다 해도 밖에서 의도적으로 싹을 자르기 힘듭니다. 이런 사례는 일본의 집단성에 대한 수수께끼를 한두 가지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일 관계가 예전만 못하고 배용준의 활동이 뜸하기에 거품이 꺼진 듯이 보이는 한류지만, 얼마 전 만났던 시마씨는 그가 둘째 딸을 낳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없어 구름처럼 모여 팬 행사를 못 하지만 여건이 갖춰진다면 다시 작은 알갱이들이 한국 스타를 중심으로 모여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못 말리는 아줌마들’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활동할 날이 다시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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