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스의 ‘커닝 페이퍼’가 의미하는 것
  • 손윤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8.04.23 21:44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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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더그아웃에 붙은 ‘KIA 포수 사인 분석’ 파장 확산

 

“참 어이가 없다.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LG의 ‘커닝 페이퍼’ 사건에 대한 어느 야구인의 대답이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KBO리그. 이번엔 ‘사인 훔치기’라는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사건은 이렇다. 4월18일 KIA와의 원정경기를 치르던 LG 더그아웃 옆 통로에 KIA 포수 사인을 분석한 A4 용지가 붙어 있었다. 이것이 같은 통로를 쓰는 사진기자의 눈에 띄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에 사인 훔치기라는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한 야구 관계자는 “상대 사인 등에 대해 경기 전 미팅에서 구두로 알려주는 것은 있어도, 이렇게 문서화해서 벽에 부착한 경우는 처음 본다. 왜 문서로 만들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야구인이나 관계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KBO리그의 규정을 위반했느냐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불공정 정보의 입수 및 행위 금지 조항을 명시한 리그 규정 제26조 1항에는 다음과 같이 적시돼 있다. “벤치 내부나 베이스코치·주자가 타자에게 상대 투수의 구종을 전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A4 용지를 벽에 부착한 것은 상대 정보를 직접 전달한 것으로 보기 어렵고, 또한 그 부착 장소가 벤치 내부가 아니라 리그 규정 자체를 어긴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어설픔 속에 치밀함도 엿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사진기자 등도 다니는 통로 벽에 커닝 페이퍼를 부착한 것은 어설픈 행동이지만, 리그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 곳에 부착했다는 점에서 전력분석팀의 돌발행동이 아닌 조직적 공작이라는 의구심이 짙다는 뜻이다.

 

4월18일 KIA 타이거즈 대 LG 트윈스의 경기, LG 더그아웃 복도 벽에 KIA 투수들의 구종별 사인이 적혀 있는 종이가 붙어 있다. © 사진=뉴시스


 

상대 사인을 간파하는 것도 기술

 

사실 사인 훔치기는 이전부터 어느 구단이나 다 하는 일이다. KBO리그만 해도 여러 차례 사인 훔치기 의혹이 있었다. 김성근 전 감독만 해도 “(사인을 훔친 쪽이 아닌) 사인을 뺏기는 쪽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상대 사인을 간파하는 것도 야구 기술로, 또 야구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것은 국외 리그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간에 사인 훔치기 논란이 벌어졌다. 보스턴은 외야에서 양키스 포수의 사인을 촬영·분석해, 그것을 애플워치를 통해 더그아웃에 있는 코치진에게 전달한 것이 드러났다. 이에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보스턴 구단에 벌금 징계를 내렸지만, 징계 사유는 사인을 훔친 게 아니라 전자기기를 쓴 것에 따른 조치였다. 사인 훔치기를 제재할 규정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 후에 사인 훔치기를 제재할 규정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사인 훔치기도 야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 매든 시카고 컵스 감독은 “사인 훔치기는 당연한 일”이라며 “(사인을 뺏기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사인 훔치기 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98년 12월에 폭로된 다이에 호크스의 ‘스파이 의혹’이다. 다이에 구단은 외야 관중석에 구단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두고 상대 사인을 응원 도구를 이용해 선수에게 전달한 것이 드러나 사회적 문제가 됐다.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는 사인 훔치기를 제재하는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 사인 전달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상대 사인을 간파하는 것도 능력으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이번 LG처럼 공공연하게 사인을 훔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인 훔치기를 야구의 일부로 여기면서, 공공연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부정적인 것일까? 이것에 대해 앞선 야구 관계자는 다소 색다른 주장을 이야기해 줬다. “프로야구의 경기는 상품이다. 그 상품을 파는 데 있어, 가장 근원에 있는 것은 선수의 땀이다. 구슬땀을 흘린 노력을 통해 일반인이 해낼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친다. 즉, 선수가 액션영화 속 히어로와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것. 이것이, 팬이 야구 경기에 열광하는 이유라고 본다. 땀이라는 것은 조금 확대 해석하면 정정당당함으로 이어진다. 타고난 재능과 땀 흘린 노력으로 다투는 경기. 그런데 선수의 약물 복용도 그렇고, 사인 훔치기도 이 정정당당함을 훼손한다. 그래서 사인 훔치기는 어느 구단이나 하고 있어도, 수면 위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LG의 행위는 경기의 승패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이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 프로야구 상품의 이미지 자체를 훼손하는 어이없는 행동이다. 이 점에서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야구를 바라보는 구단의 시각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4월19일 KIA 타이거즈 대 LG 트윈스의 경기, KIA 선발투수 양현종과 포수 백용환이 1회초 LG 공격을 막은 뒤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선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

 

이 건과 관련해 만나거나 전화로 통화한 야구인과 야구 관계자는 이 점에서는 입을 모았다. “이번 건만 봐도 LG가 왜 우승을 못하는지 잘 알 수 있다”고. LG 구단 발표를 그대로 믿으면 단장과 감독 몰래 전력분석팀이 상대 사인을 분석한 것을, 선수가 볼지도 알 수 없는 곳에 부착한 것이 된다. 이것만으로도 단장과 감독의 장악력에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어느 감독 출신 야구인은 “감독에게는 전달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수석코치 정도에게는 전달되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무도 모르게 통로에 부착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점에서는 전력분석팀의 능력에 대한 의심도 생길 수밖에 없다. 전력을 분석한 내용을 제대로 팀에 전달도 못 하는 전력분석팀. 그런데도 돈을 주고 전력분석팀을 꾸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이 건으로 가장 상처받은 쪽은 LG 선수들이다. 상대 사인 내용을 통로 벽에 부착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없다. 선수들이 많지도 않은 사인을 기억할 능력이 없기 때문. 우리 팀 선수들은 머리가 나빠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나올 수 있는 행위였다. 결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인 선수 이미지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팬이 목 놓아 응원하는 선수의 IQ가 금붕어와 같다는 이미지가 생겨서는 스타가 나오기 어렵다. LG 구단이 가장 잘못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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