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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컴퍼니 동원, ‘오너 횡령’에 멍드는 유통업계

적발 쉽지 않은 해외 페이퍼컴퍼니 악용…전문가들 “감시 예산·인력 대폭 늘려야”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ㅣ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8.04.26(Thu) 11:00:00 |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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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가 회삿돈을 횡령하는 오너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유통업의 경우 타 업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제조부터 유통, 판매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오너들의 횡령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최근에는 감시망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등 수법도 더 정교해지면서 오너들의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상품이 제조되고 판매되는 단계 중간에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집어넣으면 된다. 즉 ‘A(제조)-B(유통)-B2(유통)-C(판매)’를 ‘A(제조)-B(유통)-B2(페이퍼컴퍼니)-B3(유통)-C(판매)’ 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상품이 ‘B2’로 이동하지 않았는데 마치 유통단계를 거친 것처럼 꾸미는 게 주요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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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오너 부부, 유령회사 통해 횡령 혐의

 

이때 B2 회사는 정상적인 회사로 보여야 하기 때문에 모든 거래(매입·매출) 세금계산서가 완벽히 존재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B2·B3’ 회사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횡령하는 범인 입장에선 거래 단계를 늘리면 일단 추적도 어렵고 유통마진을 더욱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횡령했다가 사정 당국에 적발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서울북부지검은 4월15일 삼양식품 전인장 회장과 아내 김정수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부부는 삼양식품 A계열사에서 납품받은 포장상자와 식재료 중 일부를 자신들이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서 납품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납품대금을 이곳으로 송금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사장의 경우 이 회사에 직원으로 근무한 것처럼 속여 매월 4000만원의 급여를 타간 의혹도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2008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이들 부부가 횡령한 돈은 총 50억원에 달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식품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도 거래단계를 이용한 장난질이 발생했다. 가맹점주를 상대로 수년간 ‘갑질’을 한 혐의를 받는 미스터피자 창업주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치즈 유통단계에 동생이 운영하는 두 개 업체를 끼워 넣어 소위 ‘치즈 통행세’를 챙기도록 부당지원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비록 부당지원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고 정 전 회장의 횡령 의혹은 지난 1월 무죄로 결론이 났지만 파장은 컸다. 당시 참여연대는 정 전 회장의 치즈 통행세 무죄 판결에 대해 통행세를 합법화한 것이라며 “납득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이런 방식의 오너 횡령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임대아파트를 분양하는 과정에서 1000억원대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도 친인척 명의로 된 페이퍼컴퍼니를 계열사 간 거래 과정에 끼워 넣고 ‘통행세’를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나마 국내 페이퍼컴퍼니를 두고 통행세를 챙기는 식의 수법은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잘 숨겨도 현지조사 등의 과정에서 비리가 밝혀질 개연성이 많기 때문이다. 한 회계사는 “만약 국내에 유령회사를 차렸다면 언젠가는 다 적발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언제 걸리느냐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거나 폐업과 설립을 반복해 거래 증빙 자료를 없애버리면 입증하기 힘들다. 세무 당국도 이 부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국내로 자본을 들여오는 방식으로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세무업계 관계자는 “국내 거래의 경우 세금계산서가 상호검증 작용을 하기 때문에 계열사를 거치는 동안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해외 거래가 중간에 끼면 자금흐름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홍콩·싱가포르 등 해외에 이런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것 자체가 비교적 쉬워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들도 이런 범죄에 가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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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세 적발’ 회피 위해 페이퍼컴퍼니 동원

 

중견 수출업체 A사의 경우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시가보다 낮은 저가로 수출한 다음, 다시 중국으로 정상가격으로 재수출해 수출 차액을 비밀계좌에 은닉해 놨다가 최근 관세 당국에 적발됐다. A사는 중국에 직접 수출할 물품의 차액을 빼내기 위해 홍콩을 일부러 거친 것으로 드러났다. 명품 수입상인 B사의 경우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 명의로 한국 면세점에 수출한 다음 이익금을 국내로 회수하지 않고 홍콩 비밀계좌에 은닉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해외 현지와 거래가 잦은 유통업체의 경우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한 횡령범죄를 입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아예 무죄로 결론 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감사 경험이 많은 한 회계사는 “외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마저도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하면 추적 자체가 어렵다. 감사보고서에 등재된 회사라 해도 나쁜 의도로 만든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되는 회사가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해외 은닉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언더커버 요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전 국세청 직원은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횡령자금을 만들고 그 돈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외국인투자’로 가장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드는 것은 그만큼 적발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해외에 자금을 은닉하는 범죄는 당분간 쉽게 줄지 않을 것이다. 예산과 인력을 늘려 횡령자금을 추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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