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자전거에 AI로봇까지 빌려 쓰는 시대
  • 유재철 시사저널e. 기자 (yjc@sisajournal-e.com)
  • 승인 2018.05.02 11:19
  • 호수 1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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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증가로 렌털시장 전망 밝아…대기업도 앞다퉈 진출해 경쟁 치열

 

#1. 서울시 마포구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김은경씨는 최근 전국을 강타한 극심한 미세먼지 때문에 빨래한 옷을 말리기가 두렵다. 김씨는 유해세균을 제거할 수 있는 건조기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100만원이 넘는 가격 때문에 부담이 크다. 결국 월 2만3000원 정도의 비용으로 렌털 건조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2. 아직 미혼인 직장인 최진영씨는 최근 날씨가 풀리면서 자전거 라이딩 동호회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 최씨는 시중에서 파는 자전거의 성능에 따른 심한 가격 차이 때문에 최신형을 렌털하기로 했다. 최씨는 최신형 자전거를 2년간 월 10만원대 초반에 빌리기로 약정했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필요한 만큼 빌려 쓰길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국내 렌털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자동차와 정수기 등으로 대표됐던 ‘렌털(Rental)’의 개념은 이제 고가의 가전제품과 유아용 제품, 스포츠용품, 의류 등 생활용품 전반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 freepik


 

‘합리적 소비’ 원하는 1인 가구 증가 영향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렌털시장 규모는 2020년 40조1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5조원이 안 되던 렌털시장이 이렇게 커진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합리적 소비를 원하는 1인 가구 증가가 주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KT경제경영연구소 김재필·나현 연구원은 ‘ICT로 진화하는 스마트 렌털시장의 미래’ 보고서에서 “1~2인 가구의 소비성향 추이를 살펴보면 ‘나’를 위한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개인의 만족을 높이는 스마트한 소비로 성향이 변하고 있으며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빌려 쓰는 공유형 렌털이 새로운 소비 트렌드”라고 밝혔다.

 

실제 미혼 1인 가구들은 소유보다 합리적 소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아무개씨는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자제품이나 가구 등은 결혼하고 집을 장만한 다음에 살 생각이다. 다만 공기청정기는 빌트인 옵션에 없어  렌트를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먼저 체험을 한 다음 구매 여부를 따지는 ‘렌털족’도 생겨났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박아무개씨는 “곧 있을 휴가 때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데 반려동물 유모차를 약 2만원에 1주일 빌리기로 했다. 사용 후 만족도가 높으면 구매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렌털 제품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관련 제품의 판매도 매해 꾸준히 늘고 있다. G마켓의 지난해 렌털 제품 매출 증감률을 보면, 공기청정기의 경우 미세먼지 영향으로 전년보다 무려 559% 증가했다. 정수기와 안마의자는 같은 기간 각각 121%, 45% 늘었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올해 미세먼지가 특히 심해 예년보다 공기청정기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기는 했다”면서 “렌털 이용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렌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증가세가 여전히 거세 렌털시장 전망은 상당히 밝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전체 가구 중 27.2%인 1인 가구는 2030년 32.7%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연구원은 이들의 소비지출 규모가 2020년 120조원, 2030년 194조원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30년에는 4인 가구의 소비지출 규모인 178조원을 1인 가구가 추월할 것으로 보여 1인 가구가 향후 10여 년간 소비의 핵심으로 우뚝 설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인 가구를 겨냥해 렌털 품목도 정수기·안마의자 등에서 체험형 소비가 가능한 소형 품목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정수기·공기청정기 등은 이미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됐다고 본다. 다양한 상품으로 차별화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2월17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명품 렌털 서비스 업체를 찾은 한 시민이 빌려 쓸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AI로봇·VR기기 등 렌털 품목 확대

 

해외에서는 일찍이 생활가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로봇까지 대여해 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지난 2015년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제품을 소개하고 추천해 주는 AI로봇 페퍼를 3년간 우리 돈 150만원 정도에 대여하는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드론·VR기기 등 다양한 제품을 렌털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생겨나면서 렌털시장은 변혁기를 맞았다. 한 VR기기 대여업체 관계자는 “이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째에 접어든다. 처음에는 VR기기 자체가 생소해 사업이 쉽지 않았지만 현재는 대기업 워크숍, 대학교·고등학교 축제, 교회 행사 등에서 수요가 많다”며 “VR기기의 경우 체험 자체를 해 본 사람이 많지 않아 만족도가 높다. 현재까지 불만을 표시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렌털시장의 전망은 밝지만 대기업들의 잇단 진출로 향후 업체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 렌털시장은 줄곧 업계 1위룰 수성하고 있는 코웨이의 텃밭에 LG전자·SK매직·현대렌털·롯데렌털 등 대기업이 가세해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코웨이를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에 매각한 웅진그룹이 올해부터 다시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 등 생활가전 8종을 렌털 서비스하면서 경쟁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렌털 서비스 전문업체인 웅진렌탈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렌털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기 때문에 향후 이 시장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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