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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모녀 사망 사건’ 수상한 동생의 행적

언니 시신 목격 후 신고 안 하고, 차량 몰래 팔아 꿀꺽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3(Thu) 14:11:38 | 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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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증평군의 한 아파트에는 정아무개씨(여·41)와 딸(4)이 살고 있었다. 정씨는 1월부터 아파트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아 연체되기 시작했다. 관리실에서 몇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관리실 직원이 정씨의 집으로 찾아가 인터폰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4월6일 오후에도 관리실 직원이 찾아갔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판단한 관리실 직원이 119에 신고했다. 5시18분쯤 119구조대가 출동했고,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119구조대원들은 ‘뭔가 있다’는 직감에 집 안을 수색했다. 안방으로 들어간 후에야 냄새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네 살배기 딸은 침대 위에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었고, 엄마 정씨는 그 옆에 쓰러진 상태로 있었다. 두 사람의 부패 정도로 봤을 때 사망한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딸은 부패가 심해 누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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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지 4개월 만에 발견된 모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혼자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아이도 데려가겠다. 동생을 부탁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것만 보면 생활고에 시달린 정씨가 딸을 살해하고 본인은 자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씨의 목과 가슴, 배 부위 등 6곳에는 흉기로 자해를 시도한 ‘주저흔’이 발견됐다. 침대 위에는 흉기와 수면제 1통, 극약인 쥐약 15봉지(600g)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약물중독’으로 나왔다.

 

아파트 우편함에는 카드 연체료를 비롯해 각종 대금을 독촉하는 고지서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망하기 직전 5만원 상당의 월세와 수도비, 전기요금 등이 수개월 미납된 상태였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수도사용량이 ‘0’인 것으로 봐서 4개월 전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했다. 언론에서는 생활고에 시달린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며,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4년 일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과 판박이다. 언론은 이 사건을 ‘제2의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명명하며 사회의 무관심과 관계 당국을 질타했다.

 

그러나 경찰수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정씨 모녀는 송파 세 모녀와는 달리 생활고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정씨는 한 분양전환형 105㎡(약 32평) 아파트에서 보증금 1억2900만원에 월 임대료 13만원을 내고 살았다. 인근의 보증금 2000만원에 입주가 가능한 임대아파트와 비교하면 상당히 비싼 편에 속했다. 유동자산으로는 중고 시세로 2700만원 상당의 차량 3대(SUV 1대, 트럭 2대)와 상가보증금 1500만원, 통장 잔액 256만7000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것만 합쳐도 1억7000만원이 넘는다. 채무로는 은행 7곳에서 빌린 1억5470만원이 있었다. 이것은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면 모두 갚을 수 있는 금액이다.

 

생활고에 의한 자살로 여겨졌던 모녀의 죽음은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이때부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됐다. 경찰도 모녀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보고 정씨의 금융거래 등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정씨가 중고차 매매상에게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새롭게 부각됐다. 정씨는 생전에 캐피털사에 차량을 담보로 잡히고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몰았다. 그런데 담보를 풀지 않은 상태에서 차량을 중고차 매매업자인 C씨에게 팔았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업자가 사기 혐의로 고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정씨의 SUV를 C씨에게 판 사람은 다름 아닌 여동생 B씨였던 것이다. 그 시점은 정씨가 이미 사망한 뒤인 1월2일이었다. 이날 B씨는 언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C씨를 만나 차를 판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B씨는 언니의 신분증, 인감증명, 주민등록 초본, 위임장 등을 모두 갖고 있었다. 심지어 언니의 휴대전화까지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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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신용카드 등 훔쳐 해외로 출국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경찰도 여동생 B씨의 행적에 주목했다. 통화기록을 확보해 분석해 봤더니 B씨와 C씨는 차량 매매가 이뤄지기 일주일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C씨는 경찰에서 “B씨가 매매대금을 받으면 저당부터 풀어준다고 해서 매매계약이 성사됐다”고 진술했다. 계약이 끝난 뒤 C씨는 언니 정씨의 통장으로 1350만원을 송금했다. C씨는 약속대로 차량의 담보를 풀어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B씨는 약속을 지키는 대신 다음 날 돈을 전액 인출한 후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C씨가 언니 정씨와 동생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게 된 것이다.

 

C씨 고소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해외에 나가 있는 B씨에게 귀국해 출석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경찰과 연락을 유지하며 자진 출석 의사를 수차례 밝혀오던 B씨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그가 귀국을 계속 미루자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당시 B씨는 모로코에 머물고 있었다. 귀국 압박을 받던 B씨는 4월18일 오후 8시45분 인천공항으로 귀국했고,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B씨는 조사 과정에서 경찰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28일 언니의 전화를 받고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랬더니 조카가 숨진 채 침대에 누워 있고, 언니는 넋이 나간 상태였다고 한다. B씨는 “언니가 ‘2시간 후에 자수할 테니 너는 가만히 있으라’고 해 집을 나왔다가 12월4일 다시 찾아가 보니 언니가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B씨는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언니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등을 훔쳐 3일 뒤 마카오로 출국했다. B씨는 경찰에서 “언니가 숨진 것을 알았지만,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는 마카오에 머물면서 언니의 SUV를 매각할 계획을 세웠다. 올해 1월1일 입국한 뒤 다음 날 서울의 한 구청에서 언니의 인감증명서를 대리 발급받았고 언니의 도장, 차량등록증 등 매매서류를 갖춰 중고차 매매상 C씨를 만나 SUV를 팔았다. 차를 팔 때 차 안에 조카의 유모차가 있었으나 “그냥 버려 달라”고 했다. B씨는 이렇게 언니와 조카가 숨진 것을 알고도 방치한 채 치밀하게 차량 처분 사기 행각을 벌인 뒤 매각 대금을 챙겨 출국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정씨 모녀의 사망원인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 만하다. 동생 B씨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경찰은 C씨가 차량 판매 사기 사건 피의자일 뿐 정씨 모녀의 죽음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 이유로 국과수 부검 결과 타살 흔적이 없고, 유서 감정 결과가 고깃집을 운영할 때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사실상 결론지었다.

 

여러 정황을 보면 숨진 정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씨의 남편은 지난해 9월 “사는 게 힘들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다. 남편이 숨지기 전까지 부부는 한국교통대학교 증평 캠퍼스 앞에서 1년3개월 정도 고깃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식당 운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문을 닫았다. 남편이 숨진 후 시댁과는 관계가 끊겼다. 대신 강원도에 살던 정씨의 친정어머니가 증평에 내려와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평소 지병을 앓고 있던 친정어머니도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다. 정씨는 이때부터 심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자살과 의지했던 친정어머니까지 세상을 등지자 정씨는 삶의 희망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경찰도 이런 이유로 정씨가 딸을 살해하고 본인도 극약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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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남는 의문점

 

하지만 동생 B씨의 행적에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B씨에 따르면,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말이다. 언니 전화를 받고 갔을 때 조카는 언니가 살해한 뒤였다. B씨는 경찰에서 ‘언니가 2시간 후 자수한다’는 말을 듣고 가만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B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B씨가 언니 집에 다시 찾아간 것은 약 7일 후다. 이때는 이미 언니가 숨져 있었다고 했다. 조카가 언니한테 살해되고 언니가 경찰서에 자수한다고 했다면 엄청난 일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언니 걱정으로 좌불안석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여러 차례 전화해서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가족 간의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B씨는 달랐다. 그 사이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있다가 일주일 뒤 언니 집으로 가서 죽음을 확인했다. 언니가 죽은 것을 안 뒤 B씨가 한 행동은 더 의아하다. 그가 언니 집을 다시 찾아갔을 때는 경찰에 자수한다던 언니가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있을 때다. 보통사람 같으면 친언니의 주검 앞에서 충격을 받고 정신적 혼란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하지만 B씨는 언니가 죽은 것을 기다렸다는 듯 수상하게 행동했다. 언니의 신용카드와 휴대전화 등을 훔쳐 도망치듯 해외로 출국했다. 무서워서 신고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안 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B씨는 해외에서 언니의 차량을 매각하고 그 돈을 챙길 계획을 세웠다. 실제 국내로 들어와 중고차 매매업자를 속이고 돈을 받아 챙겨 다시 해외로 출국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또 언니와 조카의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119구조대에 발견되기 전까지 약 4개월간 방치했다. 아파트에서 시신이 썩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은폐했던 것이다. 승용차 매매대금 1300여만원 때문에 이런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언니 정씨가 남긴 유서에 ‘동생을 부탁한다’는 것도 뜬금없다. 유서에는 동생을 누구한테 부탁한다는 것인지, 주체가 없다. 또 동생 B씨는 서른을 훌쩍 넘긴 성인이다. 딸을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남긴 언니의 유서로 보기에는 좀 의아하다. 이처럼 ‘증평 모녀’의 죽음은 의문투성이다. 한 경찰 간부는 “내가 봐도 동생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다. 경찰은 작은 의문이라도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여러 가능성을 놓고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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