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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이어 축구도 남북 정상회담 해빙 무드

1960~70년대 한·일전보다 더 치열했던 축구 남북전…이젠 단일팀으로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5(Sat) 16:00:00 | 1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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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남과 북은 모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휴전 상황에서 군사적 충돌은 정치·외교적 갈등을 빚었다. 온전하게 대리전을 펼칠 수 있었던 방법은 스포츠였다. 올림픽을 통해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남북의 자존심 대결은 특히 양쪽 모두의 인기를 끄는 ‘국기(國技)’ 축구를 통해 서슬 퍼런 경쟁을 이어갔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축구 남북전은 한·일전 이상의 열기를 띠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북한은 세계를 경악에 몰아넣었다. 엄청난 기동력과 묘기에 가까운 수비를 앞세운 ‘천리마 축구’로 이탈리아를 꺾으며 8강에 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오르기 전까지 아시아 축구 최고의 성과였다.

 

북한 축구의 성공을 보며 충격에 빠진 한국 정부는 축구를 통한 전면전을 선언했다. 당시 최고 권력을 자랑하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나섰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김형욱 중정부장이 내로라하는 축구 스타를 모두 불러 모아 1967년 양지 축구팀을 출범시켰다. 사실상 상시 소집된 국가대표팀이었다. 양지라는 이름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중앙정보부의 구호에서 따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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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 감독이 팀을 맡고 김호·김정남·이회택 등 당대의 스타들이 모두 한 팀에 뭉쳤다. 서울 이문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숙소에 있는 국내 유일의 천연잔디 구장을 훈련장으로 썼다.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해외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105일간 유럽을 누비며 각국 대표팀, 클럽과 연습 경기를 가졌다. 당시 아시아 최고의 위상을 지녔던 메르데카컵 우승에 성공하며 권력자의 관심과 지원에 화답했다. 하지만 이 기형적인 팀은 3년 만에 해체됐다. 권력의 2인자 김형욱의 실각에 즈음해서였다. 타도 북한을 외치며 살인적인 훈련을 이어 왔으나, 허무하게도 양지팀은 단 한 차례의 남북전도 치르지 못했다.

 

탈(脫)아시아급 실력을 자랑하던 북한 축구에 기가 눌렸던 한국이 사상 첫 남북전 승리를 거둔 것은 1978년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현 AFC U-19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6대5로 승리했다. 이라크와 공동 우승을 차지한 청소년 대표팀은 귀국 후 카퍼레이드 행사를 가졌다. 아시아청소년선수권 우승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북한을 눌렀기에 그들은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같은 해 벌어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쾌거(?)가 이어졌다. 공교롭게 남자 축구 결승에서 남북이 맞붙었다. 120분 혈투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 우승으로 결정이 났다. 당시 시상대에는 양국 주장이 올라서는데 그 신경전이 그라운드 위에서의 승부 못지않았다. 한국의 주장인 김호곤 전 축구협회 부회장은 시상대에 오르려다가 북한 선수들에게 저지당했다. 먼저 올라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김호곤은 북한의 주장 김종민에게 “기자들 앞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입시다”라고 귓속말을 했다. 결국 양국 주장은 어색한 어깨동무와 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남북의 경제력이 벌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 들어 축구 남북전의 양상도 바뀌기 시작했다. 80년대 첫 남북전인 쿠웨이트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정해원이 홀로 2골을 터트리며 2대1 대역전승을 거뒀다. 그로부터 축구 남북전 결과는 14전 6승 7무 1패, 한국의 압도적인 우세다.

 

 

북한을 이기며 카퍼레이드 한 청소년 대표팀

 

1990년대 축구 남북전은 목숨을 건 경쟁의 시대를 넘어 화해 분위기를 여는 촉매제가 됐다. 1990년 10월 남과 북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경기를 치르는 ‘남북통일축구대회’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1991년에는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에 이어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현 FIFA U-20 월드컵)에도 남북 단일팀이 출전했다. 공격은 북한, 수비는 남한이 주축을 이루며 아르헨티나를 1대0으로 꺾고 8강에 올라 박수를 받았다.

 

1994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슬픈 남북전도 벌어졌다. 최종전에서 둘이 맞붙게 된 상황에서, 한국은 북한을 상대로 2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고, 일본이 이라크에 이기지 못할 경우에만 본선에 나갈 수 있었다. 북한에 3대0으로 승리한 한국은 경기 종료 후 이라크가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일본과 비겼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했다. 경기 후 북한의 윤병찬 감독은 “그래도 동포가 나가는 게 더 낫지 않겠냐”며 축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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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축구 단일팀 나올까

 

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다시 남북은 한 조에 묶였다. 당시 경색된 남북 분위기로 인해 북한이 한국 선수의 입국을 거부하자, FIFA와 AFC는 제3국인 중립지역에서 경기를 치르게 했다.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전에서 한국은 당시 A매치에 갓 데뷔한 기성용의 동점골로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7개월 후 서울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김치우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승리했고,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그 승리를 발판으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얼었던 양국의 감정이 녹으면서 스포츠는 다시 화해의 메신저가 되고 있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가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 데 이어,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트-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단일팀이 재추진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종목은 축구다. 개인 종목이 아닌 구기 종목에서 남북이 단일팀인 코리아를 구성한다면 파급 효과는 커진다. 1991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이미 시너지 효과를 낸 적이 있어 명분과 실효를 모두 잡을 수 있다. 4년 전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남과 북이 남자 축구 결승에서 격돌해 한국이 금메달을 땄다. 여자 축구는 준결승에서 북한이 한국을 이긴 뒤 금메달을 차지했고, 한국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남자 축구는 유럽에서 활약 중인 한국의 손흥민, 북한의 한광성이 에이스로 나설 수 있다. 여자 축구는 세계적 강호인 북한에, 최근 2회 연속 월드컵 출전으로 경쟁력을 높인 한국이 힘을 더하면 우승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남자 축구는 유럽파들의 합류 시점이 대회에 임박한 때라 선수들끼리 친숙해지고 조직력을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 오히려 여자 축구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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