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초학문 “방해 않을 테니 열심히 연구만 하세요”
  • 이인자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4 15:19
  • 호수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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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일본 기초학문 기반 다지는 ‘특별연구원’ 제도

 

일본은 4월말부터 5월초까지가 1년 중 가장 계절이 좋은데, 황금연휴도 이 시기에 있습니다. 저는 재해 지역 필드워크(field work)로 이 기간 대학을 떠났는데, 지도 학생 4명이 프로젝트 신청을 위해 합숙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필드워크 중에 제가 사용하고 있는 숙소에서 말입니다. 4월말에 2박3일 합숙을 마쳤고 5월초에 또 한 번 합숙을 했습니다. 3일간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계획서를 쓰고, 서로 읽고, 코멘트 하고, 다시 쓰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필드워크에서 돌아온 저는 저녁마다 이를 체크해 수정할 내용을 전했습니다. 연구계획서를 순조롭게 써가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습니다. 기술해야 하는 양도 양이지만 근본적 질문이 많아 고통스러워합니다.

 

20여 년 전 교토(京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저도 이 서류를 신청하기 위해 큰 홍역을 치렀던 기억이 납니다. 서류 작성은 매일 갱신됩니다. 밤새워 고쳐 써 가져가면 지도교수는 “어제보다 좋아졌는데 더 실증적인 연구라는 걸 알기 쉽게 다시 써봤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하십니다. ‘실증적인 연구’라는 말을 곱씹으며 다시 철야에 가까운 수정작업을 합니다. 그러면 또 “정말 많이 좋아졌어. 그런데 심사하는 사람 누구나가 실현 가능한 연구계획서라고 인정할 수 있도록 보충해서 쓰면 좋을 것 같아”라고 하십니다.

 

도쿄해양과학기술대학에서 한 연구원이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다. © AP연합


 

연구계획서 작성 위해 합숙하는 학생들

 

이렇게까지 박사과정 학생은 물론 지도교수까지 심각하게 만드는 신청서를 제출토록 하는 제도는 일본학술진흥원에서 주재하는 특별연구원 제도입니다.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이거나 학위를 받고 정규직에 취직하지 않은 연구자를 ‘특별연구원’으로 채용하는 제도입니다. 일본의 학문 사회를 짊어지고 갈 젊은 연구자 양성을 위해 1985년에 시작한 대표적인 지원제도입니다. 즉 학생이면서 나라가 채용한 연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박사후기과정(DC·2~3년 지급) 단계의 학생에게는 월 20만 엔(약 200만원), 박사학위 취득 후(PD·3년 지급)의 연구자에게는 월 36만2000엔을 지급합니다. DC의 경우 대졸 초임보다 액수가 적어 좀 더 높일 것을 고려 중이지만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생활비 수준임은 틀림없습니다. PD의 경우 가족을 구성해 생활해야 하는 연령임을 고려해 30대 중반의 직장인 월급 수준입니다. 이외에도 연 150만 엔의 연구 지원비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필드워크, 실험, 문헌 구입 등에 필요한 연구비를 신청해 소속 기관이 관리하는 형식으로 지급되는 연구비입니다. 2006년에는 출산·양육 등으로 연구 활동을 일정 기간 중단했던 연구자에게 PD와 비슷한 수준의 급료를 주는(Restart PD·2년 지급) 제도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할 나이에 연구자가 되기 위해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제도입니다. 이 지원을 받는 학생과 받지 못하는 학생의 연구 생활은 상상 이상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물론 좁은 관문이지요. 문부과학성 발표에 의하면, 대학원 박사과정 전체 학생의 약 10%에 해당하는 채용률이라고 합니다.

 

일본학술진흥원의 특별연구원 제도와 관련한 설명회 안내문 © 이인자 제공


 

연구 지원으로 기초학문 연구자 재생산

 

이 제도에는 자신의 연구를 하기만 하면 된다는 의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1년에 한 번 A4용지 1장 정도의 연구 보고서를 내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체크도 하지 않습니다. 연구 테마나 내용에 관해서도 모든 권한을 개인에게 부여합니다. 어련히 알아서 연구할 거라는 입장에서 “방해하지 않을 테니 열심히 연구만 하세요”라는 태도에 입각해 있습니다. 대학원생이지만 독립적인 연구자로 본다는 것이지요.

 

이 연구지원 제도를 떠올리면 제가 유학 시절에 만난 인상적인 친구 생각이 납니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군요. 현대사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아베 스케(阿部俊介)라는 친구입니다. 그는 휴일이나 방학 때면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보내주는 5만 엔으로는 학비 반액 면제를 받아도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해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과외나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은 자신의 두뇌를 속박하기에 육체노동으로 머리를 보호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던 9월말 즈음이었습니다. 연구실에 도착한 서류봉투를 받아든 아베군이 “와! 이제 해냈다. 내 머리는 내 거야! 그리고 이제 몸도 내 거야! 시간도 내 것이 되었다!”라며 좋아했습니다. 그 뒤로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은 없었고 박사학위를 마치고 지금은 굴지의 국립대학 교수가 되어 있습니다.

 

지도교수와 뜻이 안 맞아 박사과정 진학이 위태로웠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석사과정 2학년 때 특별연구원에 신청해 채용됐습니다. 그러자 받아주지 않겠다고 했던 지도교수도 타협점을 찾아 진학을 인정했습니다. 타협점이란 학적은 지도교수 기관에 두면서 3년간 독일로 유학을 다녀온 것입니다. 돌아와서는 PD 특별연구원으로 3년 연구를 이어가다 지금은 제가 있는 대학 동료가 됐습니다. 일본 신화 연구로 굴지의 입지를 굳힌 연구자라고 인정하는 후배입니다. 이렇듯 혹여 지도교수와 연구에 대한 의견을 달리해도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돼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양성한 특별연구원들이 일본의 아카데미 사회를 채우고 있습니다. 학술진흥원이 성과로 내놓은 사항을 보면, 채용자들은 5년 이내에 90% 이상 정규 연구직에 취직한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제도를 통해 기초학문 연구자가 재생산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공계열이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전공마다 신청자 비율로 채용합니다. 박사학위를 받고도 정규직을 차지하지 못한 PD 부문에 있어서는 인문학과 수학물리학 분야 채용자가 수적으로 가장 많습니다. 전체 330명 중 인문사회계열이 98명, 수학물리학계열이 74명입니다. 사회적으로 지원받기 어려운 인문사회계열과 순수과학계열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튼튼한 동아줄이 됩니다.

 

일본 기초학문의 기반을 부러워하는 얘기를 가끔 듣게 됩니다. 지도 학생들의 절실함이 보이는 합숙 서류 작성을 보고 있자니 그 기초는 이런 곳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가을엔 결과가 나옵니다. ‘연구자’ 입성을 성취한 학생은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뿐 아니라 아카데미 사회를 이어갈 귀한 사회적 존재가 되어 가는 거지요. 

 

※ 시사저널 1488호 ‘유연하고 강력한 못 말리는 아줌마들’ 기사에서 제일 첫 문장 ‘도호쿠(東北大學)대학’은 ‘도호쿠(東北)대학’의 오기이므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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