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상 석권한 성인 동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서영수 영화감독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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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보는 세상] 불안한 시대로부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 제시

 

멕시코 출신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아카데미를 석권한《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를 발표하기 전에는 영화 인생 40여 년 동안 상복이 없는 감독이었다. 제7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셰이프 오브 워터》가 지난해 9월 수상하면서부터, 이어서 제43회 LA비평가협회상 감독상을 거머쥐고 올해 1월7일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음악상을 받으며 상복이 터졌다. 제70회 미국감독조합상 영화부문 감독상과 제71회 영국아카데미시상식 감독상에 이어 지난 3월4일 개최된 제9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감독상·미술상·음악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며 최다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그동안 쌓인 무관의 한을 한껏 푼 셈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제를 ‘사랑’이라고 했다. 연출 의도에 대해 그는 “이 시대에 만연한 냉소주의를 치유하며 인종차별과 사회적 지위, 성차별로 사람들이 빚어내는 증오와 적대국가와 벌이는 신냉전시대를 초월하는 로맨스판타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성인동화로 만들었다는《셰이프 오브 워터》를 향한 오마쥬(hommage)가 전 세계 언론에서 쏟아졌다.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의 영혼을 지닌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평한 타임지를 필두로 할리우드 유명 영화잡지 버라이어트는 “부드럽고 매혹적인 로맨틱 판타지”로 러브콜을 보내고, 경쟁 잡지사인 할리우드 리포터는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같은 영화”라고 극찬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사랑’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한 영화인은 없었다. 《미믹》과《악마의 등뼈》 같은 괴수를 다루는 몬스터영화 전문 감독이 처음으로 사랑 영화를 만들어내자 동료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깜짝 놀랐다. 《셰이프 오브 워터》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며 스페셜땡스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 이름이 첫 번째로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아바타》와《타이타닉》으로 한국에도 친숙한 제임스 카메론은 16년 전 기예르모 델 토로가《헬보이》 구상에 몰두할 때 “자네가 절대 도전 못할 장르가 한 가지가 있어”라며 “소녀도 괴물처럼 만들어버릴 능력은 있어도 진짜 인간의 사랑 이야기는 만들지 못할 거야”라고 악담 섞인 농담을 했다. 그런 제임스 카메론의 예상을 뒤엎고 기예르모 델 토로는 ‘러브 스토리’로 최고의 작품을 만든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셰이프 오브 워터》는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로 몰아붙이던 ‘매카시 열풍’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1962년 미국 볼티모어를 영화적 시공간으로 설정했다. 현실에 기반을 두어야 제대로 된 판타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가 설정한 1962년은 베를린 장벽 건설로 유발된 베를린 위기와 쿠바 미사일 사태가 겹쳐 미국과 러시아로 인한 핵전쟁 공포가 전 세계 화두였던 시기였다. 우주개발영역에서도 러시아를 추격해야하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미국사회는 블루칼라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유색인종차별과 성소수자에 대한 적개감이 팽배했었다. 북한 핵 갈등과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트럼프가 이끄는 지금의 미국사회가 1962년과 닮아간다고 판단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과거로 퇴행하려는 불안한 시대로부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제시를 위해 《셰이프 오브 워터》를 기획했다. 

 

오컴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야간청소부로 일하는 일라이자 에스포지토(샐리 호킨스)는 듣기는 하지만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인이지만, 든든한 흑인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덕분에 ‘왕따’ 당하지 않고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근무한다. 일라이자의 라스트 네임 ‘에스포지토(Esposito)’는 이탈리아어에 온 영어로 고아나 버려진 아이를 뜻한다. 매일 저녁 9시45분에 일어나서 욕조에 물을 채우고 달걀이 삶아지는 동안 샤워와 자위를 즐기는 일라이자는 옆집에 사는 늙은 동성애자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식사를 챙겨주느라 지각을 자주한다. 

 

아마존 원주민에게 신적 존재로 경배 받는 괴생명체 ‘아가미 인간’이 실험대상으로 오컴항공우주연구센터에 반입되며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가 연구책임자로 등장한다. 연구센터의 신임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셰넌)는 ‘아가미 인간’을 생포해온 장본인이다. 부활절을 상징하는 삶은 달걀로 ‘아가미 인간’의 관심을 끌게 된 일라이자는 언어가 필요 없는 교감을 주고받으며 서로 위로한다. 스트릭랜드에게는 ‘한 주가 지나서 쓸모가 없게 된 생선’에 불과한 ‘아가미 인간’이 산 채로 해부당할 위기에 처한다.  

 

바이블에서 영감을 받아 설정한 치유능력을 가진 ‘아가미 인간’이 스트릭랜드에게 전기충격기로 고문당하는 장면은 예수고난의 모습과 오버랩 된다. 스트릭랜드도 손가락 2개를 잃어버리며 그가 멸시하는 루저 대열에 편입된다. 루저로 인정받기 싫은 스트릭랜드는 일라이자를 사무실로 불러 성추행하려 하지만 일라이자는 단호히 거부한다.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 양편에 매달린 죄수를 연상시키는 스트릭랜드는 아마존에서 온 신적 존재를 무시한 결과 사망에 이르고 러시아 스파이로 밝혀지는 호프스테틀러 박사는 인성을 회복해 영적 구원을 받는다. 

 

예수의 부활처럼 총을 맞아도 되살아나는 초능력을 가진 ‘아가미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일라이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라고 우리가 아무 일도 안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다”라며 온몸으로 자일스를 설득시킨다. 러시아 특수요원 10명이 감당해야할 일을 ‘이름도 계급도 없는’ 일라이자와 “똥이나 치우고 오줌이나 닦아낸다”며 멸시 당하던 흑인동료 젤다는 또 다른 루저인 자일스와 함께 ‘아가미 인간’ 구출에 동참한다. 언어로 소통되는 인간도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이는 스트릭랜드의 손아귀에서 ‘아가미 인간’을 구출한 일라이자는 불완전한 자신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아가미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 

 

멕시코 출신으로 미국 사회에 적응해 사는 동안 수많은 차별을 체험했다는 기예르모 델 토로가 암울한 상황을 환상으로 승화시킨 《셰이프 오브 워터》는 여성 중심 영화제작을 필요로 하는 할리우드 트렌드에 어필했다. 교감능력은 있지만 인간이 아닌 이질적인 ‘아가미 인간’과 사랑하는 일라이자를 ‘생선과 교미하는 별종’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가 가리키는 지향점은 ‘상호관용과 편견 없는 사랑’이다. 지난 4월1일 성대한 부활절 행사를 보며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부활’이라는 기적이 우선인지 ‘사랑’이 앞서야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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