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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지바에서 이뤘던 ‘작은 통일’ 가능하다 믿는다”

[이영미의 生生토크] 남북 단일팀 주역 ‘탁구 여왕’ 현정화 감독…“판문점 회동 없었다면 단일팀 구성도 성사되지 못했을 것”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8.05.13(Sun) 10:00:00 |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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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코리아》는 1990년대 초반 분단 이후 최초로 구성된 남북 탁구단일팀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야기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한은 현정화와 홍차옥을, 북한은 이분희와 유순복을 내세워 단일팀을 이뤘고 결승전에서 만난 중국을 상대로 감격의 우승을 차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말 그대로 영화 같은 스토리였다. 그런데 지바 세계선수권 이후 27년 만에 스웨덴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다.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여자탁구는 8강 대결이 예정됐던 북한과 깜짝 단일팀을 구성, 4강에서 일본을 상대하면서 27년 만에 남북 단일팀의 감동을 선사했다. 이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이가 있다. 바로 27년 전 이분희와 짝을 이루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현정화 렛츠런 탁구단 감독이다. 스웨덴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한 현 감독을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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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남북 단일팀이 성사됐어요. 처음부터 준비했던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유승민 위원(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의 추진력이 큰 도움이 됐죠. 처음에 전 안 될 줄 알았어요. 남북한이 하고 싶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기간 동안 많은 행사가 열렸어요. 그중 5월2일 밤 국제탁구연맹(ITTF)이 주최한 ‘ITTF 재단’ 창립 기념식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ITTF 재단 1호 홍보대사로 임명된 유승민 위원이 이벤트 형식으로 깜짝 단일팀을 제안했습니다. 남북이 함께하는 게 ‘탁구를 통한 결속’이라는 취지에 잘 들어맞을 것 같다면서요. 결국 그 행사장에서 ‘하나의 한국, 하나의 테이블’(one Korea, one table)이란 문구 아래 한국의 서효원(렛츠런), 양하은(대한항공)과 북한의 최현화, 김남해가 서효원-김남해, 양하은-최현화로 단일팀을 이뤄 퍼포먼스 차원에서 복식 시범경기를 펼쳤어요. 그 후 리셉션에서 유승민 위원과 토마스 바이케르트 ITTF 회장, 북한의 주정철 서기장이 대화를 나눈 끝에 남북 단일팀을 이벤트만이 아니라 실제 경기에서 이뤄내자고 합의했고 중국·루마니아·홍콩·오스트리아·일본·우크라이나가 모두 동의하면서 하루 만에 단일팀이 성사됐어요.”

 

 

즉흥적으로 결정된 거네요.

 

“네 맞아요. 사전에 준비된 게 전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스웨덴에서만 합의를 봤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린 문체부·통일부에도 문의해야 하고, 북한도 관련 부서가 있을 테고. 저녁 6시에 나온 얘기가 8시, 9시까지 이어졌는데 문제는 한국은 새벽이라 관계 부서와 연락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런 상황에서도 합의를 이끌어냈고 실행에 옮겼다는 건 대단한 거예요.”

 

 

현 감독이 스웨덴을 방문한 건 부산시의 2020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를 위한 거라고 알고 있어요.

 

“저랑 유남규 삼성생명 감독, 유승민 위원은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진행된 ITTF 총회에 참석했어요. 부산시가 2020년 세계선수권 개최지 단독 후보로 나섰는데 회원국들의 투표를 독려하기 위해 유치위원회 자격으로 스웨덴을 방문한 겁니다. 그런데 만장일치로 결정이 났어요. 그동안 일본은 7차례, 중국은 5차례나 세계선수권대회를 열었지만 한국은 제1회 런던 대회가 개최된 1926년 이후 단 한 번도 개최를 못 했거든요. 세계선수권대회는 탁구인들의 숙원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에 성사된 것이죠.”

 

 

그런데 왜 부산이었던 건가요.

 

“부산시가 오랫동안 준비했어요. 다른 도시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열 만한 공간이 없거든요. 부산은 벡스코란 컨벤션센터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더욱이 2013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를 유치했던 경험이 유리하게 작용했어요. 서병수 부산시장님이 국제대회 유치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고, 이미 유치 자금도 확보해 둔 상태예요. 유승민 위원도 프레젠테이션을 훌륭히 소화했고, 부산시도 적극적으로 유치 활동에 나섰고, 러시아와 미국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만장일치란 결과를 얻어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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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남북 단일팀 얘기로 돌아갈게요.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 의견이었을 겁니다. 어떻게 설득해 나갔나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동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스웨덴에서 북한 탁구협회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분위기가 예전과 달리 화기애애하더라고요. 만약 판문점 회동이 없었다면 몇 시간 만에 남북 단일팀 구성도 성사되지 못했을 거예요. 선수들은 그 차원에서 받아들인 것 같아요. 남북 화해 무드 속에 선수들도 역할을 하고 싶을 것이고요. 한 가지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일본과의 4강전 당일, 선수 엔트리 문제를 놓고도 머리를 맞댔는데 3명의 선수는 남측 2명(전지희·양하은), 북측 1명(김송이)으로 구성됐거든요. 김송이가 수비 전형인 탓에 같은 전형인 서효원이 출전을 못 하게 된 거죠. 한국 톱랭커인 효원이는 제가 가르치고 있는 제자예요. 분명 효원이도 아쉬움이 컸겠지만 대의적인 차원에서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누구보다 뜨겁게 단일팀을 응원했고요. 덕분에 시상대에는 모든 선수들이 다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4강전을 지켜보는 심정이 어떠했나요. 27년 전 생각도 나고 그랬을 텐데요.

 

“뭉클했죠. 전 그 느낌을 알잖아요. 북한 선수단도 바로 제 옆에서 같이 응원했는데 실감이 안 나더라고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대회에서 마주치면 인사도 안 하고 지나쳤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함께 팀을 이루고, 같은 목표를 위해 응원전을 펼치니 얼마나 감개무량했겠어요.”

 

 

27년 전 일본 지바에서 남북 단일팀이 이뤄졌을 때는 어떤 상황이었나요.

 

“지금과는 온도 차이가 컸었죠. 그때는 KAL기 폭파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됐거든요. 스포츠 교류를 통해 정치적 긴장을 해소하려고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를 구성했습니다. 선수 동의도 없었어요. 위에서 시키니까 무조건 해야만 했죠. 대회가 열리는 일본에서 46일간 합숙훈련을 했고, 여자팀은 한국의 훈련 방식대로, 남자팀은 일주일은 북한 방식, 그다음 일주일은 한국 방식으로 변화를 줬어요. 이분희 선수가 몸이 안 좋았어요. 간염에 걸리는 바람에 1시간 운동하면 1시간을 쉬어야 했어요.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복식에만 나갔어요. 유순복 선수와 제가 단식을 맡았고요.”

 

 

(중국과의 결승전. 코리아팀의 유순복은 탁구 마녀 덩야핑을 2대1로 눌렀고, 현정화는 가오준을 2대0으로 꺾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응원단의 북받친 노래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현정화-이분희 조가 복식에서 덩야핑-가오준 조에 1대2로 역전패하며 경기의 흐름이 넘어갔다. 현정화는 다음 경기에서 덩야핑에게 0대2로 패한다. 단체전 스코어는 2대2. 마지막 남은 유순복과 가오준의 승부에 따라 금메달 향방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유순복은 18대19로 지고 있다가 내리 3점을 따 21대19로 승부를 뒤집었고 3시간40여 분의 접전은 코리아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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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어요.

 

“제가 대회장에서는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펑펑 울었던 것 같아요. 선수들, 감독, 임원 할 것 없이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죠. 마치 통일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시상식에선 태극기도 인공기도 아닌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단일팀 단가인 《아리랑》이 《애국가》 대신 울려 퍼졌죠.”

 

 

이후 이분희는 다시 만나지 못했죠.

 

“네. 두 차례 정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어긋나더라고요. 사실 평창동계패럴림픽에 분희 언니가 올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해 봤지만 참석을 안 했어요. 분희 언니가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이라 올 거라 믿었는데 북한 대표팀의 방남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걸 알고 아쉬움을 곱씹었죠. 남북 체육 교류가 활성화되고, 스포츠에서라도 작은 통일을 이루길 바란 사람으로서 이번 탁구단일팀 성사는 역사에 남을 스토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지바에서의 경험 때문인가요. 이후 통일 전도사가 됐다면서요.

 

“아이들에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생각이에요. 전 체육인으로서 남북 체육이 교류하고 단일팀이 구성되면 지바에서 이뤘던 ‘작은 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거든요. 체육에서 교류가 이뤄지면 정치·경제·교육 분야에서도 남북 교류가 성사될 거라고 봅니다. 국회의장, 통일부 관계자를 만날 때마다 남북 단일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었고요. 그래서 더 분희 언니를 만나고 싶었어요. 탁구에 대한 관심을 드높이는 데 가장 좋은 이슈가 될 테니까요. 영화 《코리아》 제작에 적극 도움을 준 것도 스포츠의 ‘작은 통일’을 바라는 행보였습니다.”

 

 

좀 다른 질문입니다. 2014년 음주운전으로 사고가 나면서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직에서 물러났었어요. 이후 1년여 만에 대외적인 활동을 재개했는데 그 사건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당시 ‘현정화는 끝났다’는 얘기도 나왔었는데요.

 

“제 인생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거죠. 사고가 난 상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제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지인들이 당분간 뉴스나 기사의 댓글을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안 봤어요. 회사에서 감봉 3개월로 징계를 주더라고요. 해임시킬 수도 있었는데 또다시 제게 기회를 만들어준 부분이 감사했습니다. 당시 택시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냈어요. 택시 안에 승객이 있었는데 그분과는 이후 합의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친해졌어요. 가끔 식사도 할 정도로요. 제가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자숙하는 동안 사람 관계도 정리되더라고요. 스케줄이 없으니 술도 잘 안 마시게 됐고. 물론 제가 쌓아 놓은 명성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졌지만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대신 건강과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거든요. 제가 잘못 살지는 않았나 봐요.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힘내라’고 격려도 해 주시고, 지인들도 돌아가면서 절 위로해 주고, 선수들도 절 이해해 주려 노력했으니까요.”

 

 

현 감독은 선수 생활부터 은퇴 후 지도자 생활까지 거침없이 내달렸습니다.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고 협회 전무로 행정 분야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펼쳤으니까요.

 

“그래서 잠시 쉬라고, 다 내려놓으라고 그런 일이 벌어졌나 봐요. 그 일 이후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웠어요. 당연한 거죠. 자신도 없었고. 1년 후 어느 강연에 강사로 섰는데 제가 먼저 음주운전 사고를 낸 현정화라고 인사했더니 모든 분들이 박수를 치면서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용기를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지금은 명예욕도, 욕심도 없어요. 감독 자리도 시기가 되면 후배들에게 물려줘야죠. 현장은 열정과 기술적으로 뛰어난 후배들이 맡는 게 맞아요.”

 

 

여자 탁구에서 ‘환상의 복식조’ 하면 양영자-현정화를 떠올립니다. 현정화한테 양영자는 어떤 선수였나요.

 

“최고의 파트너였죠.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영자 언니와 처음으로 복식조를 이뤘는데 아시안게임 복식에서 동메달을 획득했고, 19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대회 복식 우승에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거든요. 당시 전 고1이었고, 언니는 실업 2년 차였어요. 나중에는 언니 눈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했었죠. 복식은 서로 잘하는 게 아닌 상대방이 잘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해요. 저도 ‘독종’이라고 소문났는데 영자 언니는 더 독종이었어요.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 연습벌레처럼 훈련에 몰두했었죠. 전 전진속공형이었고, 언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어요. 최고의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현 감독은 1998년 4월, 동갑내기 탁구선수 김석만씨와 결혼 후 딸 서연(17)과 아들 원준(15) 남매를 두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거주 중이다. 남편 김씨는 어바인에서 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탁구 여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현정화. 하루에 받는 팬레터가 자루에 담겨져 배달됐을 정도였다고. 방송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거론하면 다음 날 바로 선물로 도착했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항상 강단 있어 보이는 외모와 다부진 체구로 전투적인 이미지가 강한 그가 인터뷰 말미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전 남자와의 경쟁보다 여자와의 경쟁이 더 힘들었어요. 시기, 질투, 이런 보이지 않는 감정들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되니까요. 전 남자들 세계에서 ‘꽃’으로 보이기 싫었어요. 그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셔도 대차게 마셨고 좀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술도 당당하게, 일도 씩씩하게, 성격도 털털하게, 동등한 입장에 서고 싶었어요. 이젠 좀 여유 있는 템포로 가고 싶어요. 그렇게 달리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까. ‘그 사고’가 제게 많은 가르침을 안겨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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